지난해 3분기까지 충당금을 늘려왔던 증권사들이 지난해 4분기는 물론 올해까지 충당금 추가 적립에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꽤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태영건설 사태가 확산하며 예상보다 손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어 추가로 충당금을 늘려야 한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10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의 3분기 누적 충당금은 1조5387억원이다. 전년 동기 대비 73% 증가했다. 자기자본 규모 상위 10개 증권사 기준 총 9640억원가량을 쌓았다. 지난해 3분기 6170억원에서 56% 늘었다.
지난해 지속된 고금리 여파로 해외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대체투자 손실 위험이 커졌다. 증권사들은 그동안 해외 부동산 투자를 활발히 진행해왔다. 4분기는 해외 대체투자자산에 대한 평가손실, 손상차손 등 재평가도 예정돼 있어 충당금을 인식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최근 태영건설 워크아웃 사태 등으로 부동산 PF에 대한 부실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증권사들은 1금융권과 달리 주로 중순위 이하로 참여하기 때문이다.
국내 신용평가사에 따르면 태영건설 관련 증권사들의 관련 PF 익스포저(위험노출액) 규모는 최대 1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한국신용평가는 1조1422억원, NICE신용평가는 9229억원으로 보고 있다.
금융당국은 금융권의 태영건설 PF 익스포저 규모가 자산 대비 크지 않지만 PF 사업장별 사업성 등을 감안해 보다 충분한 충당금을 적립하도록 할 계획임을 밝혔다. 태영건설 워크아웃 추진 상황에 따라 부동산 PF 시장 및 금융권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한국신용평가는 "태영건설 익스포저에 대해 건전성을 재분류할 경우 충당금 적립 부담은 최근 3개년 평균 당기순이익 규모 대비 약 11% 수준"이라고 밝혔다. 다만 일부 회사는 30%를 상회하기도 해 회사별 이익 창출력에 따라서는 수익성 저하 부담이 클 수 있다고 봤다.
충당금에 발목 잡혀 일부 증권사는 연일 부진한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3분기까지 하나증권은 충당금을 비교적 많이 쌓은 결과 영업적자와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증권사들은 지난해 3분기까지 충당금 규모를 늘리면서 동시에 이익잉여금도 늘려 왔다. 업황 악화에 대비해 곳간 채우기에 나선 것이다. 지난해 3분기 자기자본 상위 10개 증권사의 이익잉여금 합계는 2조752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 커졌다.
4분기 실적도 부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강승건 KB증권 연구원은 "증권업종은 컨센서스(시장 전망치)를 크게 하회하는 4분기 실적이 예상되고, 실적 부진의 원인인 부동산 PF 충당금 부담과 해외 부동산펀드 손실 완화 시점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