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체의 노화를 밝히기 위한 노화 학설의 전제조건은 다양한 현상들을 포괄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노화는 생명체의 보편적인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근원적이면서 대립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노화의 원인 측면에서 제기되는 필연적인가 우연적인가의 문제, 노화의 다양한 현상이 보여주는 구조적 측면에서 제기되는 부분적인 변화의 누적인가 총체적으로 초래되는 결과인가의 문제, 목적적 측면에서의 번식과 생존의 문제 등 상호 대척적일 수밖에 없는 본질적 문제가 가로 놓여 있다.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분자, 세포, 개체 및 환경 수준에서 다양한 가설이 제기되어 왔지만 대부분은 노화현상의 일부분만을 설명하는 양상설(Aspect Theory of Aging)에 그치고 있다.
노화를 설명하기 위해서 제기되는 구조적인 문제는 부분과 전체의 역할 분담이다. 노화가 세포의 부분적 변화에 기인하는가 또는 생체의 특정부위 노화가 결정하는가 아니면 여러 변화들이 연계되어 세포 전체의 노화로 이어져 나가는가 또는 생체 전체가 동시적으로 늙어져 가는가의 문제도 노화를 설명해야 하는 데 중요한 걸림돌이다. 부분을 주장하는 측은 세포에서는 미토콘드리아, 리소솜, 세포막의 노화가 중요하다고 주장하여 각각 미토콘드리아 노화설, 리소솜 노화설, 막노화설 등을 제창하였다. 그리고 생체조직에서는 뇌의 해마, 뇌내분비선 특히 송과선, 뇌시상부, 뇌하수체 등의 노화가 궁극적으로 노화를 유발한다고 하였다. 반면 생체 전체 노화설을 주장하는 가설은 여러가지 변화가 누적되어 세포가 총체적으로 노화된다는 가설, 생체도 호르몬 또는 면역인자와 같은 생체인자가 전체에 영향을 미쳐 노화가 일어난다는 가설들이 주창되면서 서로간의 융합점을 찾으려 하였지만 아직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노화를 설명하기 위한 목적적 측면에서의 대립은 생식과 생존의 갈등이다. 동물의 진화는 생식으로 계대(繼代)하면서 선택과 적응의 과정을 수천 번 수만 번을 거듭하면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생식이 끝나면 대부분의 동물은 죽게 된다. 이러한 현상에서 생식과 죽음이 교환(trade off)한다는 수명대가설이 등장하였다. 생식을 통한 종의 번식을 위해 생식 후 희생하는 대부분의 동물은 따라서 생식기 이후의 삶이 짧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생식을 하지 않는 경우 수명연장의 사례는 많이 있다. 즉 생식과 생존이 서로 대척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생식 후에도 생존하는 동물에게는 신체적 기능의 퇴화가 초래된다. 따라서 생식기 이후의 기간을 노화시기로 정의하기도 한다.인간의 경우는 생식기 이후의 생애가 점점 길어져 가면서 수명의 길이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그 결과 초래되는 노화는 인간에게 부과된 크나큰 생물학적 업보이다.
이와 같이 노화 학설은 원인적으로는 우연이냐 필연이냐의 갈등, 구조적으로는 부분이냐 전체냐의 논쟁, 목적적으로는 생식이냐 생존이냐의 선택이라는 대립적이며 상호 배제적 모순을 가지고 있는 현상을 설명해 내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가설들을 통합한 범통일노화학설(Unified Theory of Aging)의 등장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필자 박상철 주요 이력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국제백신연구소한국후원회 회장 ▷전남대 연구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