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신년의 시작을 알리는 카운트다운 소리를 들으며, 보신각 주변에서 환희와 기대감에 가득 찬 모습을 보이고 있을 것이다. 아마 카운트다운이 끝나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새해인사를 하고 올 한해에 대한 다짐과 기도를 하고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였다. 본인 역시 지난 시절에는 그러한 장소에 함께 있었던 것 같은데, 올해 갑진년의 시작은 시계 없이는 현재의 상태를 전혀 알 수 없는 곳에서 맞이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많은 일들 속에 스스로 몸을 망가뜨리다 연말에 무작정 여행을 떠났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다는 생각에 숙소의 불도 켜지 않았다. 이불 속 깜깜한 어둠은 어제와 오늘의 시간 속 길을 잃은 갈림길 앞에서와 같이 스스로를 덤덤해지게 만들었다. 새해라는 감각이 없는 상태에서는 굳이 시간을 알아야 할 필요가 없다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때 문득 든 이상한 생각에 우리는 언제부터 1년의 시작을 정하게 되었을까? 지금껏 살아오면서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요상한 질문에 나는 다시 스스로 만들었던 깜깜한 어둠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1년의 시작은 그레고리력에 따라 1월 1일로 정의되어 있으며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1월 1일을 새해의 첫날로 채택하여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율리우스력이나 그레고리력이나 사는 데 큰 불편이 없었다. 러시아는 1918년까지 율리우스력을 사용했다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1752년 의회에서 그레고리력에 따라 9월 2일 다음날을 9월 14일로 의결하기로 하면서 큰 문제가 발생하였다. 당시 지주들이 줄어든 날을 감안하지 않고 9월 한달치 임대료를 요구하면서 농민들 입장에서는 자고나니 사용하지도 않은 약 2주분의 임대료를 납부하게 되는 날벼락을 맞은 것이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시간과 날짜 역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였다. 사실 시간의 측정은 공간의 측정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과거 바다를 항해하는 동안 배가 정확한 항로로 가기 위해서는 시간의 정확성이 요구되게 되었다. 이후 지금까지도 기업 입장에서 안정적인 수송망의 유지는 중요한 경쟁의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그동안 관심이 없던 정확한 시간에 대한 관심의 시작은 사회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 실제 18세기 철도가 나오기 전까지 영국에서는 각 도시나 지역 내에서만 태양시에 따른 자신의 시간을 공유하면 되었다. 예전부터 태양이 가장 높게 떠오른 시간을 중심으로 지역의 기준시간으로 삼았다. 물론 이동하는 도시마다 매번 시계의 시간을 맞춰야 했지만 이동수단의 제약 등으로 큰 불편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19세기 초, 철도와 전신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지역 간의 시간적 차이는 큰 문제를 유발할 수 있었다. 전통적 태양시는 농경사회에 적합했다. 농경의 특징상 이동거리가 짧은 농민들은 해가 뜨기 전 일을 시작해서 해가 지면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되었다. 주거지 이외의 여행 및 이동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기에 시차는 큰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철도의 출현으로 인한 여행과 장거리 이동이 나타나면서 각 도시마다 열차 출발 및 도착시간에 대한 각기 다른 표시는 혼란을 유발하기 충분하였다.
시간의 통일은 영국의 그레이트웨스턴 철도회사가 1840년 처음으로 그리니치 천문대의 표준시간(GMT, Greenwich Mean Time)을 철도 시간 운영시간으로 채택하면서부터이다. 그 전까지는 역에는 철도회사의 시간이 적힌 시계가 있어야 했다. 시간을 통일하는 것이 철도 운영은 물론 변화된 사회에 적합하다는 것이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1855년에 들어서면서 영국의 도시와 마을의 95%가 그리니치 천문대의 표준시간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 사이 영국보다 국토가 넓어 시간의 차이가 컸던 미국에서는 1853년 8월 단선철도에서 열차사고가 발생하여 1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태양시에서는 열차가 서쪽으로 이동할 때 18㎞마다 시간이 달라진다. 복선철도에서는 충돌의 위험이 없지만, 단선철도에서 시간 계산을 잘못한 기관사들로 인해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였다. 이에 미국 철도회사들은 1869년 수도 워싱턴을 기점으로 4개 권역으로 나눠 표준시(standard time)를 만들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하지만, 당시 미국 언론에서는 “사람들이 철도 시간에 맞춰 먹고 자고 일하고, 결혼해야 하느냐”며 빈정거렸다. 이러한 상황에 미국의 의회는 표준시 도입을 머뭇거렸다. 결국 철도회사들은 자기들 스스로 1883년 미국 철도경영인들의 회의를 통해 미국 표준시를 합의하였다. 이듬해 국제자오선회의에서 영국 그리니치가 경도 0도로, 국제 표준시로 합의되면서 전 세계 표준시의 시작은 철도의 보급이 단초가 되었음을 무시할 수 없다.
후일담으로 영국이 본초자오선의 기준이 되는 부분에 있어 반대하는 세력이 적지 않았다. 특히 당시 프랑스는 영국과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고 있던 때라 각국의 19개국 대표들은 외교전쟁 속에 어느 한쪽의 편을 들어야 하는 힘든 상황이었다. 결국 국제표준시 합의 과정에 대영제국의 힘이 반영되었다. 미국 역시 표준시 합의에 이르지 못해 미의회는 여전히 이런저런 사유로 의결을 미루다 1918년에서야 연방법으로 철도경영자들이 정한 표준시를 입법화 하면서 지금의 미국 표준시가 생성되었다.
초기에는 약간의 혼선이 있었지만, 우려와 달리 국제 표준시는 전 세계 사람들의 생활에 빠르게 정착되었다. 철도라는 사회적 변화의 시작은 국제 표준시를 통해 국제 통신, 국제 무역, 항공 운항 등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이처럼 사회적 변화 속에 표준은 사회구성원들 간의 이해상충이 발생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필요성이 높아지고 그 효용을 높인다.
전 세계가 인공지능(AI)을 통한 변화를 예견하고 있는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다시 재정의되고 변화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과거 우리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서울과 일본 동경의 경도가 약 12° 차이가 있음에도 그들의 편의상 같은 시간대를 사용하도록 결정되었다. 최근 일본여행이 많아지며 편하다 생각할 수 있지만 일본과 우리의 일출 및 일몰시간에 상당한 차이가 난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변화를 싫어한다. 익숙해졌으니 당연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표준이 갖는 사회적 환경적 이점을 생각해 보면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어서는 안된다.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힘과 목소리를 더 키워야 한다.
갑진년(甲辰年)의 시작, 보다 넓은 세상을 생각하며 당당히 그 중심에 설 수 있는 대한민국을 기대해 본다.
김재영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표준·지식학과 교수 ▷고려대 경영학 박사 ▷한국정보시스템학회 이사 ▷4단계 BK21 융합표준전문인력 교육연구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