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승 칼럼] PB제품 활성화 …물가도 내리고 일자리도 늘리고

2023-12-18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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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승
[정연승 단국대 경영경제대학 교수, 서비스마케팅학회장]
 

최근 식료품 등 서민물가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식료품 업체들에 가격 인상 자제를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한편, 품목별로 물가 관리 담당 공무원을 지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대증요법으로 과연 지속 가능할지가 의문이다. 또한 이러한 조치가 시장경제 원리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논란도 계속 커지고 있다.

전 세계적인 곡물 파동으로 인한 원재료 값 상승이 계속되고 있어 시기의 차이만 있을 뿐 식료품 완제품의 가격 상승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요인으로는 시장구조적 측면도 있다. 이는 해당 업계가 소수의 대기업 제조업체 중심의 과점 체제를 형성하고 있는 데 기인한다. 라면, 제과, 빙과, 음료, 주류 업종은 3~5개 기업들이 높은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으며, 빙과 업종은 최근 담합으로 공정위에서 과징금 부과 처분을 받고 검찰에 기소되기도 하였다.
해외의 경우도 식료품 업계는 펩시, 코카콜라, Kraft Heinz, General Mills, Kellogg’s, Conagra Brands,Campbell Soup 등 유명 다국적 기업들이 해당 업종에서 과점 체계를 구축하여 소비자 물가 인상의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해외에선 유통업체의 PB 제품들이 이를 상쇄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PB(자체 브랜드) 제품 존재 자체가 제품 간 경쟁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또한 PB 제품들은 소비자들의 선택 폭을 늘려 소비자 후생 증진에도 기여한다. 실제 해외에서는 물가 상승 시기에 PB 제품을 더욱 적극적으로 판매하고 소비자들도 대형 브랜드 대비 저렴한 가격에 품질도 유사한 PB 제품 구매를 늘렸다.

하지만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는 PB 제품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견지하고 있는 것 같다. 공정위 산하 공정거래조정원이 2018년 발간한 보고서에서 유통사의 PB 상품은 일반 제조사들의 상품들과 경쟁하므로 제조사들이 피해를 볼 수 있고, 각 유통사들이 차별적인 PB를 출시하면 유통사 간 경쟁이 심화되어 유통사들도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유통사들이 PB 상품 제조를 위탁하는 과정에서 제조를 담당하는 회사들이 유통사들에 갑질을 당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PB에 대한 이러한 우려는 과연 적정한 것인지? 그리고 공정위는 제품 간 경쟁을 촉진하여 소비자 물가를 낮추려는 의지는 있는지 의문이 든다. 공정거래법은 경쟁을 보호하는 것이지 경쟁사들을 경쟁에서 보호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제조사들도 유통사들도 질 높은 제품을 적정한 가격에 내놓고 시장에서 선의의 경쟁을 펼쳐야 하며, 유통사의 제조사에 대한 갑질은 기존의 공정경쟁에 관한 법으로 처벌하면 된다. 특히 제조사 고유의 제품들인 NB는 유통사 PB 제품들과 차별화된 품질과 가치를 바탕으로 프리미엄 브랜드를 창출하는 역량을 가져야만 글로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상기와 같은 공정위의 우려 속에는 공정위의 소비자 후생 증진에 대한 고민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소비자들은 값싸고 질 높은 다양한 제품을 구매할 권리가 있으며, 이는 국민으로서 소비자가 누려야 할 가장 기본적인 권리다. 제조사와 유통사의 경쟁 때문에 소비자후생을 마냥 뒷전에만 둘 순 없다.
현재 공정위의 PB 제품에 대한 규제는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로 공정위는 중소 하도급업체들을 보호하기 위한 하도급법을 PB 제품 납품에 적용하여 규제하고 있다. 하도급법은 주로 건설업에서 중소 하도급업체를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납품 단가의 산정 및 할인 등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그러나 PB 제품은 소비자의 수요가 수시로 변하므로 필요시 그에 맞춰 가격도 할인을 해야 하며, 판매가 장기간 부진하면 손해를 보면서라도 판매하여 재고를 처분해야 한다. 그러나 하도급법을 적용하게 되면 탄력적으로 납품 가격을 운용하기 어려우므로 중소기업이 제조한 PB 제품의 취급을 꺼리게 된다.

둘째로 공정위와 더불어 중기부도 PB 제품에 납품단가 물가연동제를 적용하여 PB 제품 가격을 규제한다. 납품단가 물가연동제가 소비재에 적용되면 원재료 가격 상승 시 PB 제품 가격도 상승하여 소비자 물가도 함께 오르는 효과가 있다. 납품단가 물가연동제가 건설업이나 조선업 같은 B2B에 적용되는 것은 나름 타당성이 인정될 수 있으나 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PB 제품과 같은 소비재에 적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셋째로 공정위는 온라인 플랫폼 운영사가 판매하는 자체 PB에 대한 우대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중국 등 대다수 국가에서는 이러한 플랫폼의 자사 PB 우대가 소비자 후생에 긍정적일 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는 문제가 없는 것을 온라인에서만 규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경계가 없어지고 무한경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쪽만 규제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맞지 않다.

PB 제품 활성화의 가장 큰 수혜자는 소비자다. 일반 제조사 제품과 동일한 품질의 제품을 더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으니 소비자에게 좋을 뿐만 아니라 물가 안정에도 기여한다. 일부 제조사들은 PB 제품과 경쟁하는 것이 달갑지 않을 수 있으나 우리나라 NB는 대부분이 대기업 제품들이어서 이러한 대기업들을 보호하기 위해 PB에 대한 규제를 하는 것은 소비자 후생을 희생하여 제조 대기업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과 같다. 또한 PB 제품의 제조는 대부분 중소기업이 맡고 있다.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동등한 경쟁을 하기는 쉽지 않다. PB가 활성화하면 이러한 중소기업들의 초기 시장 진입이 확대되어 일감이 늘어나고 일자리 또한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물가 상승의 주 원인인 원자재 값 상승과 과점체제 시장구조는 각각 정책으로 통제가 불가능한 외생변수와 내생변수다. 하지만 PB 제품 활성화를 통한 제품 다양성 확보는 물가를 근본적으로 안정시킬 수 있는 합리적 대안이 될 수 있다. 물론 PB 전략이 기존 제조업체나 일부 유통업체들에는 위협이 될 수도 있으며, 유통업체의 갑질 횡포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하지만 이는 기업의 혁신 노력과 제도적 장치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다. 선진국에서 이미 거쳐갔고 정착된 방식이라면 우리도 과감히 도입하고 개선하면서 한국적 상황에 맞는 방식으로 승화시켜 나가야 한다. 

글로벌 완전경쟁 시대에 한국만 PB를 활용하지 못한다면 그만큼 글로벌 경쟁력도 갖추기 어렵다. 물가 안정에 근본적 대책인 PB 처방을 이번엔 놓치지 않기를 기대한다.

정연승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영학과 △연세대 경영학과 박사 △단국대 경영경제대학 교수 △서비스마케팅학회 회장 △ 한국경영학회 산업정책위원장 △전 한국유통학회회장 △전 서울대 경영대학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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