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가계대출이 8개월 연속 증가하며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금융당국은 정부의 대출 규제에 힘입어 가계부채가 축소될 것으로 내다봤으나 아직 뚜렷한 성과가 나오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당장 다음 달부터 시행되는 수십조 원 규모 특례대출이 가계부채를 추가로 자극할 우려도 커지고 있다.
13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3년 11월 중 가계대출 동향(잠정)'에 따르면 지난달 금융권 전체 가계대출은 2조6000억원 증가했다. 올해 가계대출은 지난 4월(1000억원) 오름세로 전환된 뒤 △5월 2조6000억원 △6월 3조2000억원 △7월 5조2000억원 △8월 6조1000억원 △9월 2조4000억원 △10월 6조2000억원 등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금융당국은 "은행권 주담대는 3분기 오름 폭(6조~7조원)보다 증가세가 둔화했다"면서 "늘어난 대출 대부분은 무주택자 대상 정책성 대출, 집단 대출 등 실수요자 위주"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은행들은 금융당국의 대출 억제 기조에 발맞춰 대출 기준을 조이고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달부터 주거용 오피스텔 등 모기지신용보험·보증 가입과 주담대 다주택자 생활안정자금 한도를 제한했다. 신한은행도 이달 1일부터 다주택자 생활안정자금이 목적인 주담대에 최대 2억원 한도를 적용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내년 초부터 △신생아특례대출 약 27조원 △청년주택드림대출 20조~30조원 △보금자리론·적격대출 약 20조원 등 67조~77조원에 이르는 정책금융상품이 줄줄이 출시된다.
다음 달 시행되는 신생아특례대출은 조건에 따라 최대 5억원을 연 1.6~3.3% 금리로 빌려주는 상품이다. 청년주택드림대출은 만 19~34세 무주택 청년에게 최저 연 2.2% 금리로 대출을 내준다. 연 5% 넘는 시중은행 금리와 비교하면 절반 이하다. 대출 수요를 추가로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정책모기지 상품 특성상 출시 초반 신청이 몰리는 데다 내년 상반기 금리 인하 시작과 맞물리면 당국으로서는 가계부채 관리가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올해 40조원 규모로 공급된 특례보금자리론은 이미 가계부채 급증을 이끈 주원인으로 지목됐다. 11월 가계대출 중 35%에 해당하는 9000억원도 무주택 실수요자에게 공급하는 디딤돌, 버팀목 전세대출 등 정책성 대출이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는 가계대출 총량과 별개로 청년·취약계층에 대한 정책금융 지원을 해야 한다"면서도 "수십조 원 규모에 달하는 정책대출 공급을 추진하다 자칫 가계부채 확대를 억제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무색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세훈 금융위 사무처장은 "가계부채 증가 속도의 안정된 흐름이 지속되려면 긴 호흡을 가지고 체계적인 관리 노력을 지속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대출 현장의 세세한 부분에서 관리상 미흡한 부분이 없는지 챙겨보고, 추가적인 제도 개선 과제도 꾸준히 발굴·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