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천의 디지털 산책] 국가 안보 흔드는 행정망 마비사태 …진정한 해법은?

2023-12-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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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행정망, 거의 데이터 쓰레기장 수준' '데이터 지도 없이 엉켜 있어 사고 또 나도 당연해'. 이런 뜨끔한 기사 표제를 우리는 지난 몇 주간 많이 봐 왔다. 왜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 됐을까.
행정안전부가 국가의 주전원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국가 통합데이터지도도 없이 여러 시스템을 운영하다 보니 그랬다. 앞뒤가 맞지 않는 해명을 연달아 내놓아 불신까지 더했다. 여러 군데서 발생한 후속 연쇄 사고도 모두 행정망에 연결돼 있는 것이다. 행정망이 켜지지 않으면 구동조차 안 되는 하위 종속 시스템들이다. 그러나 행안부는 사고 간 연계성을 현재까지 부인하고 있다. 고질적인 부인 강박관념에는 배경이 있다. 행정전산화의 형님 노릇을 총무처가 맡기 시작한 1980년대 초부터 최상위 주무 부처로서 자리매김한 데 있다. 그 당시는 컴퓨터 전문인력이 부족한 시기였고 명칭 자체가 안전’행정’부라 전산화 자문도 주로 행정학과 교수의 영역이었다. 현재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구성을 봐도 별반 바뀐 게 없을 정도니 잘못된 인선 관행이 뿌리 깊게 드리운 탓이다. 전산학과 교수가 그 위원회에 참관인 자격으로 갔다가 마치 외계인 취급받고 나왔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인의 장막이 촘촘하게 쳐진 원인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한국 사회의 보편적인 하드웨어 일변도 사고방식이 원인이다. 지난 30년간 과학기술부 혹은 정보통신부 식으로 불렸던 통칭 과기부에 반도체 혹은 통신 전문가들만  역대 장관에 기용된 걸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IT의 80%는 소프트웨어(SW)고 불과 20%만이 하드웨어(HW)다. HW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HW가 반, SW가 반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여하튼 비중을 따지면 SW 쪽에 조금 더 기우는 편이라는 점은 공인된 사실이다. 예를 들면 F-35 전투기 가격이 무려 1조원에 이르는데 SW 가격만 그중 5000억원을 상회한다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이 빅데이터 인공지능을 필두로 하는 것이고 이들이 HW가 아닌 SW라는 사실을 안다면 지난 30년간은 HW 전문가 위주로 이어져온 구태의연한 장관 인선 패턴이 달라지지 않는 건 희대의 불가사의 중 하나라 할 것이다. 산업구조도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의 글로벌 시장점유율은 HW 대 SW가 20대 1 수준으로 말도 못하게 불균형이 심한 상태다. 절름발이다. 이로 인해 HW 핵인 반도체라도 선방하자는 마지노선 구축 의지가 지난 30년간 발로된 데 있다. 그 와중에 두뇌산업 SW는 안중에도 없었고 아직 첫 삽조차 못 뜬 불편한 과거가 있다. 그사이 세상은 SW 중심에서 데이터 중심으로 변해 데이터는 이제 제2의 석유로 불릴 만큼 선진국에서는 저만치 가 있다. 제2의 반도체 정도가 아닌 것이다. 벌써 우리와 격차가 상당히 벌어져 있는 상황이라 여기서도 막차 인생을 면하기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

이번 행정망 마비 사태 원인이 라우터 쪽에 있는 게 아니라 데이터 쪽에 있다는 결정적 단서가 사태 발발 후 불과 사흘 만에 잡혔다. 정부24에서 민원서류를 신청했더니 그 서류 외에도 다른 서류까지 한꺼번에 출력되는 엉뚱한 결과가 나왔다(전자신문 11월 20일자 1면 보도). 이건 라우터 오류와는 다른 것으로 두 번에 걸친 정부 해명과 달리 데이터 오류가 분명했다는 증거다. 이걸 알고도 정부는 하드웨어 오류였다고 항변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스스로 '컴맹'이라는 사실을 국민 앞에 자랑스럽게 자인하는 꼴 아닌가. 이런데도 정부가 희귀종 HW 오류였다는 결론을 황급하게 발표한 행안부의 자세를 어떻게 봐야 할까. 일단 넘어 가보자는 저의가 깔린 것이 아닐까. 혹시 국제 행사 유치 표결을 며칠 앞둔 상황에서 국격 이미지 훼손 악영향에 신경이 쓰였나. 정부 수준이 충격적이다.

이번 사태가 데이터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된다면 불행 중 다행이다. 전국 도로교통 지도도 없이 차 사고 지점을 찾아내야 하는 상황을 한번 연상해 보라. 무슨 이유로 도로가 막혀도 우회할 방법도 몰라 사고 지점 찾다가 허송세월하는 꼴에 해당한다. 현재 행정망은 실·국별로 각개전투식으로 산발 발주돼 다른 업체가 서로 다른 시기에 만든 1440개 시스템이 통합데이터지도 없이 각자 돌아다니는 꼴이라고 보면 된다. 마치 간선 도로가 유실됐다 해도 그걸 모른 채 어디선가 한없이 헤매는 형국과 같다. 행안부에서 다루는 업무 전체를 보면 성명, 주소 등 데이터 항목 수가 전체적으로 기껏해야 2만개 이내 정도면 충분하고도 남는데 실상은 놀랍게도 현재 행정망 전체에 900만종 이상 잡동사니 수준 데이터로 엉켜 있어 심한 몸살을 앓고 있는 중환자 상태다. 말하자면 쓸데없는 잡동사니가 898만개씩이나 누더기로 군데군데 끼어 있단 뜻이다. 행정망 내부 데이터가 거의 쓰레기장 수준이라 코딩 프로그램이 데이터를 찾아가다 오류가 발생해 잘못된 답변 혹은 지연을 유발하고 있다. 언제 다시 사고가 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끔찍한 상태다. 현행 1000여 개 시스템을 단 1개 시스템으로 통합형으로 합치면 깨끗하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이다. 단 4개월 내에 합치는 기술도 이미 나와 있다.

통합된 지도가 없다 보니 문제가 터질 때마다 졸속 해결책을 찾기 위해 벌어지는 진풍경은 이렇다. 컴퓨터 프로그램에서 접근하는 데이터가 어느 데이터인지 역추적해내는 후진적 방법이다. 기술적으로는 이를 역공학이라고 부른다. 데이터가 컴퓨터 코딩 프로그램의 먹이가 되는 게 정상 순리거늘 앞뒤가 완전히 거꾸로 돌아가는 진풍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이는 현업에서는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불편한 진실이지만 아무 문제 없을 때는 통상적으로 그냥 묵과되고 넘어가곤 한다. 그러나 상황이 돌변하여 대형 사고가 터졌을 때에는 반드시 역공학적 방법을 써서라도 기어이 데이터를 찾아내 그들 데이터 간 연관성을 파악해 파편 부위 데이터 경로를 응급으로 파악해내야 한다. 부위를 찾아내는 데는 빨라야 2~3일 소요된다. 작업 투입 인력은 부위 크기에 따라 달라지지만 이번 사태에 현업 인력 100여 명이 투입됐다는 사실을 토대로 역산해보면 행안부 1440개 전체 업무 중 아마도 수십 종 업무에 관련된 영역에서 데이터 꼬임 현상이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 부위를 찾았다 해도 근본적으로 고치는 게 아니라 임시 응급 땜질 처방인 까닭에 잠복한 시한폭탄이 언제 다른 부위에서 돌연 또 터져 나올지 모르는 상황으로 전개될 수 있다. 정부는 공공 소프트웨어사업에 대한 대기업 참여 제한 제거를 해결책인 양 제시하고 있으나 그건 해법이 못 된다.  행정망 운용 기관들이 각 시스템 개발의 주요 내용도 모른 채 유지보수 업체를 1년 단위로 선정해 프로그램이 잘 돌아가게만 맡아 달라고 하는 게 현 제도인데 이런 구조에서 대기업이 참여한다고 한들 달라지는 건 없는 게 당연하다.

정부가 1440개 시스템을 차제에 일원화하여 단 1개 시스템으로 물리적 대통합을 하려는 진정한 해법은 강구하지 않은 채 태스크포스 구성을 여전히 HW 혹은 해킹 같은 이상한 방향으로 가져가고 있어 걱정이다. 그렇다면 문제를 어느 방향으로 풀어 나가야 할까. 우리는 민원서류 홍수에 갇혀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세상에 살고 있다. 행정망은 사실상 민원서류망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주민번호가 없기에 서류를 국민 개개인이 직접 뗄 일도 없는 해외에서 보면 한국은 단연 기이한 별종 나라다. 그들은 공직사회에서 필요하면 서류를 그때그때 직접 만들어 쓴다. 국민에게 손품 발품 파는 번거로운 일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래서 민원서류란 말 자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첫째, 주민번호 주무 부처로서 행안부가 K-디지털을 과시하는 대신 해외처럼 민원서류 제거에 앞장설 생각은 없는지 묻고 싶다. 둘째, 데이터 시대에는 서류가 단순 문서에 그치지 않고 데이터가 살아 움직이는 터전이 돼야 한다. 행정 데이터라고 해서 데이터가 갖는 성격이 갑자기 달라질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행정 데이터 관리 혁신을 위해서라도 행정학 전문가에게 맡길 게 아니라 시대에 걸맞게 데이터 전문가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방향으로 체질을 개선하는 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지 않을까. 국가 예산이 전반적으로 쪼그라드는 가운데서도 유독 디지털정부 해외 홍보만은 예외적으로 증액됐다고 한다. 민원서류 없는 해외에 나가 자랑할 만한 소재가 과연 있을지 의문이다. 외관보다 내실에 치중하여 국민 서비스와 안전의 질을 높이는 쪽으로 가야 한다. 데이터 부실은 공공 부문에 만연한 현상이다. 국방도 위태로워질 수 있다. 국방 데이터 품질 역시 매우 부실하다는 국방부 감사 결과도 있기 때문이다. 현대전은 데이터전이다. 따라서 정교한 데이터 기반 전술 없이는 전쟁에서도 승산이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문송천 교수는
1970년대 대학 진학 때부터 컴퓨터를 전공했다. 카이스트와 케임브리지대 교수(전산학과·경영대학원)를 지냈으며 Y2K 한국 대표를 역임했다. 슈퍼컴퓨터를 최초 개발한 미국 일리노이대학에서 전산학 박사를 1980년대 초 취득함으로써 국가 전산학 박사 1호가 됐다. 박사과정 때부터 클라우드와 블록체인 분야를 세계 최초로 개척한 소프트웨어 제1세대 학자로서 클라우드라는 용어 자체도 그가 1982년에 세계 최초로 창안한 3인 중 한 명이다(클라우드란 용어의 유래는 데이터 관리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데이터라는 뜻과 동격인 CLass/Object/Ubiquity/Distributed - 이 네 단어 이니셜 다섯 글자로 1982년에 만든 것). 만 24세에 대학교수 생활을 시작하여 데이터베이스, 빅데이터, 블록체인, 정보 보안 연구를 통해 저서 22권, 논문 199편을 쓰고 박사 제자 30명을 배출하였다. <컴퓨터개론>이라는 한글 교과서(1975년) 최초로 저술하고 ‘DB엔진’ 아시아 최초 개발(1990년), 블록체인 SW엔진 세계 5번째 개발(1992년)을 비롯해 기업 데이터베이스를 효율적으로 설계·개발·운영하기 위한 ‘데이터 비만도’ 개념을 창시하는 등 세계를 놀라게 하는 공적을 남겼다. 국가정보시스템 구축에 기여하여 ‘금융FBI’ 역할을 하는 FIU 시스템을 설계하고 특허청, 한국방송 등에서 데이터 설계를 총괄 기술 지도했다. IT 후학 양성을 비롯하여 UNDP·UNHCR·Red Cross 재난 현장 전문가로서 아프리카·중남미·동남아·동유럽·팔레스타인 등 개발도상국 30여 개국 현지 봉사활동을 통해 IT 한국의 위상을 세계 만방에 알린 공로로 대통령에게 국가녹조훈장을 서훈한 바 있다. 현재는 대한적십자사 친선대사와 유럽IT학회 아시아 대표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문송천 필자 이력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미국 일리노이대(어바나 샴페인) 전산학 박사 ▷유럽IT학회 아시아 대표이사 ▷대한적십자사 친선홍보대사 ▷카이스트·케임브리지대·에든버러대 전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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