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림축산식품부가 최근 치솟는 물가상승을 잡기 위해 빵·우유·과자·커피·라면·아이스크림·설탕·식용유·밀가루 등 가공식품 9개 품목 담당자를 새로 지정해 관리하기로 하면서 생겨난 직책이다.
2012년 이명박 정부 때 물가 안정을 위해 품목별 담당 공무원을 지정했던 ‘물가관리책임실명제’가 11년 만에 부활한 것이다.
농식품부는 이례적으로 각 품목 담당자의 이름·과·직급 등도 보도자료에 공했다.
가격은 그대로 두면서 제품 용량을 줄여 사실상 가격을 올리는 ‘꼼수’를 막겠다는 취지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양을 줄인다는 뜻의 슈링크(shrink)와 물가 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가격과 용량은 그대로 두되 값싼 재료로 대체해 품질을 떨어뜨리는 ‘스킴플레이션’도 늘어나고 있다. 이 역시 ‘인색하게 군다’는 뜻의 ‘스킴프(skimp)’와 물가 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기업이 제품 가격과 용량은 그대로 두면서 값싼 원료로 대체해 실질적으로는 가격 인상 효과를 보는 걸 가리킨다.
A식품회사는 지난 3월 핫도그 제품 가격을 그대로 두고, 한 봉당 개수를 5개(500g)에서 4개(400g)로 줄였다가 비판을 받았다. 참치캔 100g을 90g으로 축소했는데 같은 가격에 판매하는 사례도 적발됐다.
일련의 현상은 정부의 상반기 가격 인하 권고에 따른 풍선효과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정부는 라면, 유제품 등에 대한 가격 인하를 강제하자, 꼼수 인상으로 대처한 셈이다.
이번 물가관리 역시 억눌린 가격이 한꺼번에 뛰는 현상도 나올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한국 물가 상승률을 3.6%로, 내년은 2.4%로 제시하며 종전 전망보다 각각 0.2%포인트, 0.1%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물가 안정을 위해 고금리 기조를 상당 기간 유지하고, 섣부른 통화정책 완화를 지양해야 한다고 권고한 상태다.
과일과 채소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식재료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다. 한동안 상승이 억제되던 우유 가격도 14.3% 올랐다. 외식 물가도 천정부지로 치솟는 중이다.
비양심적인 기업들을 감시하고 처벌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가격 인상을 둘러싼 이 같은 악순환의 반복에 대해서도 한 번쯤 생각해볼 문제다.
정부의 거시적인 경제정책으로 물가를 바로 잡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자유시장 경제체제에서 특정 기업과 품목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 맞지 않다.
정부 당국도 기업들의 가격 인상을 찍어 누르려고 하기 보다는 왜 기업들이 가격 인상에 나섰는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기업들의 가격 인상은 지난해부터 고물가의 장기화로 인한 소비 위축과 원자재 가격이 폭등한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먹거리 물가 상승 압력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밀을 비롯한 일부 원재료 가격은 떨어졌지만 설탕과 원유 가격은 여전히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어서다.
정부의 대응이 미비했고, 이는 기업들의 가격 인상으로 이어졌다. 정부는 이 문제는 언급하지 않고 기업들의 가격 인상 억제에만 신경을 써왔다. 장기적으로 불합리한 유통 방식을 개선해 비용 인상 요인을 걷어내는 등 구조적인 대책도 없어 보인다.
정부 주도의 물가 통제 방식에 대한 우려감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그만큼 부작용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의 규제가 강하다고, 꼼수 인상으로 위기를 모면하는 기업들이 잘했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물가가 오르더라도 기업들은 스스로 뼈를 깎는 원가 절감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당연하다. 가격 인상 이유를 소비자들에게 합리적으로 설명해야하는 행위도 기업들의 의무라고 할 수 있다.
고물가의 장기화는 국민들을 위해 정부가 꼭 마침표를 찍어줘야 할 시급한 과제다. 다만 좀 더 효율적이면서도 장기적인 대책이면 좋겠다. 그것이 슈링크플레이션, 스킴플레이션 등 각종 부작용을 막는 최선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