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에 힘입어 성장세를 보이던 일본 경제가 3분기 만에 다시 고꾸라졌다. 소비와 투자, 수출이 모두 부진했다. 장기금리를 수정하며 엔저 탈출을 시도하려던 일본은행(BOJ)의 계획은 물거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15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일본 내각부는 이날 오전 3분기(회계연도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 분기 대비 0.5% 감소했다고 속보치를 발표했다. 연율로 환산하면 -2.1%로 시장 전망치(-0.5%)를 크게 하회했다. 지난 1분기와 2분기에 성장을 기록했던 일본 경제가 3분기 만에 역성장을 보인 것이다.
소비 위축과 투자 감소가 GDP를 끌어내린 원인으로 풀이된다. GDP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민간소비가 상승할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지난 분기와 동일한 수준을 보였다. 기업 설비투자도 0.6% 줄었다. 민간 소비와 기업 모두 돈을 쓰지 않은 것이다. 닛케이는 "자동차 소비가 줄었고 반도체 제조와 건설 분야에 투자가 줄었다"고 짚었다.
GDP 발표 후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약세를 보였다. 일본 10년물 국채 금리는 하락 후 낙폭을 반납하고 있다.
이날 발표는 일본 경제가 안정적인 회복세에 진입하지 못함을 보여주었다는 진단이다. 블룸버그는 "일본의 경제는 여전히 취약하며 정부와 중앙은행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인플레이션의 장기화, 과도한 엔화 약세, 해외 시장의 불안정성 등 경제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상황에도 BOJ가 엔화 정상화를 연기한 이유를 보여준다"고 전했다.
이에 BOJ의 엔저 탈출 계획이 물거품이 됐다는 것이 시장의 평가다. 앞서 우에다 가즈오 BOJ 총재가 지난 10월 수익률곡선제어(YCC)를 통한 장기금리 상한선을 1% 이상까지 허용하기로 한 가운데 시장에서는 통화정책 조기 전환 가능성이 제기됐다.
그러나 일본 경제가 역성장을 기록하자, 조기 전환은 이르다는 의견이 우위를 점하게 됐다. 기무라 타로 블룸버그이코노믹스(BI) 이코노미스트는 "4분기 GDP도 위축돼 BOJ가 한동안 YCC와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게 만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엔저 장기화가 유력해지면서 일본 시민들의 부담은 커질 전망이다. 엔저는 수입 가격을 올리고 인플레이션을 가속화시키기 때문이다. 일본 물가는 3%대 상승률을 기록하면서 40년 만의 최고치를 찍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최근 경기 부양을 위해 감세를 골자로 하는 17조엔 규모의 종합 경제 대책을 내놓았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국민들의 부담을 줄이고 소비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취지다. 하지만 정부 부채 부담만 늘리고 실질적인 효과는 적을 것이라는 지적이 이어진다.
이를 방증하듯 최근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은 20%대로 떨어지며 2021년 10월 내각 출범 이후 최저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