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정책 백년대계'를 그려야 할 금융당국이 정치적 입김에 휘둘리며 한국 금융산업 발전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특히 용산발(發) 비판이 시작되면 정부가 부랴부랴 시장을 압박하고 나서는 모습이 그려져 당국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크게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20일 금융당국과 금융지주 회장단 간담회를 앞두고 지난주 상생금융과 관련한 구체적 방안을 당국에 제출했다. 정부가 회장단 회동에 앞서 상생금융안을 미리 취합하고 검토한 것은 미리 강도 높은 대책을 준비하라는 뉘앙스로 풀이된다. 은행들이 제출한 방안에는 가계부채와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금리 인하를 포함해 취약계층 금융 지원 등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권을 향한 상생금융 압력은 '이자장사'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 비판 발언으로 시작됐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서민들이 '은행 종노릇 하는 것 같다'며 한숨을 쉬고 있다"고 하자 금융당국도 은행 압박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간 규제 완화 기조를 유지해온 현 정권에서 이를 180도 선회한 데는 용산 쪽 입김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란 관측이다. 앞서 지난해 우리은행에서 700억원대 횡령이 발생한 이후 금융당국은 내부통제를 수없이 강조했다. 하지만 올해도 BNK경남은행 3000억원대 횡령, 롯데카드 직원 100억원대 배임 등 금융 사고가 끊이지 않으면서 이를 괘씸하게 본 대통령실에서 규제 방향을 완전히 뒤집었다는 것이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표심 잡기' 움직임이 과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 5일 '시장 신뢰 회복'을 명분으로 '공매도 한시적 전면 금지'를 전격 발표했다. 이는 한국 증시가 외국인·기관의 '공매도 놀이터'가 됐다는 개인투자자들 지적에도 공매도는 '글로벌 스탠더드'며 충분한 제도 개선도 이뤄졌다는 기존 주장과 정반대되는 행보다.
지난 14일에는 윤 대통령이 "더 이상 피해를 막기 위해 근본적인 개선 방안이 만들어질 때까지 공매도를 금지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정부는 지난 6일부터 국내 모든 종목에 대해 공매도를 내년 6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금지하기로 했는데 이번에 연장 가능성까지 시사한 것이다. 정부의 공매도 금지에 대해 '개미투자자' 1400만명을 잡기 위한 '총선용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금융위는 막판까지 공매도 금지에 대해 신중론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여당이 총선용 의제로 '공매도 한시적 금지'를 밀어붙이면서 결국 백기를 든 모양새가 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정치권에서 재점화된 금융권 횡재세 도입에 대해서도 정작 주무 부처인 금융당국은 정확한 스탠스를 보이지 않고 있다"며 "정부가 정치권에 휘둘려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으면 금융산업은 근시안적 대책 마련에 급급하게 되고 시장에선 '규제 약발'도 먹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