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순 칼럼] 미.중 지정학적 대결의 미묘한 변화… '천하 이분지계'?

2023-10-25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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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
[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이 상호 필요에 의해 최근 표면적으로는 관리모드로 들어갈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물밑에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물밑에서 벌어지는 경쟁 중 가장 치열한 것은 지정학적 지배력, 즉 자국의 세력권 확대 경쟁이다, 역사는 자기 세력권을 가장 넓힌 나라가 패권국으로 등극하고 세계를 지배해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난 80년간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미국 패권) 시대에 미국의 지배력은 세계 전역에 미쳤다. 그러나 미국의 지정학적 지배력은 점차 쇠하고 있고 이런 지배력 공백이 중동에서 발생하여 이번 이-팔 전쟁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중동에서 미국 지배력의 공백이 생긴 틈을 중국이 파고들고 있으며 사우디와 이란이 중국의 중재로 화해를 도모하는 것은 이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미국과 중국이 이제 전 세계적으로 자국의 세력권 확장을 위해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중국이 세력권을 확대하려고 시도하고 있고 미국은 중국의 이런 노력을 차단하려 한다는 것이 사실에 더 가깝다. 지난 5월 중국을 방문한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세계는 넓어 충분히 미·중 양국이 공존 가능하다고 하였다. 이는 전 지구를 양대 세력권으로 양분하여 관리하자는 ’천하 이분지계‘ 구상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전에는 미국 고위층이 이런 구상을 아예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에 비하면 큰 변화이다.
 
지난주 베이징에서는 제3차 일대일로 정상포럼이 개최되었다. 중국은 미국이 누리는 세계적 지배력을 바로 자국이 대체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자국의 고유 세력권, 즉 유라시아 대륙 일원에서 지정학적 지배권을 확립하려는 의도는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10년 전 시진핑 주석은 ’일대일로 구상‘을 발표하였고 올해가 사업추진 10주년이다. 미국은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이 각국으로 퍼져나가자 이에 대응하기 위하여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IMEC)’을 건설하겠다는 구상을 지난 9월 발표하였다. 이는 바둑으로 치면 중국의 선수에 미국이 후수를 두며 일대일로 확대 차단에 주목적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미국의 IMEC에 속한 지역을 보면 유라시아 대륙의 맨 남부에 짧은 치마를 걸친 모양을 하고 있고 또 해양 접경지 국가를 잇는 회랑이어서 중국의 해양 진출에 대한 방어선을 구축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번 제3차 일대일로 정상회의에는 전 세계 140개국, 30개 국제기구 대표 총 4000명이 참석하여 그 규모는 커졌는데 정상 참석은 23명에 그쳐 2차 때보다 줄어든 양상을 보여주었다. 이는 중국의 영향력, 즉 회의 소집력(convening power)은 점차 증대하고 있으나 미·중 간 갈등 격화로 일대일로에 대한 각국의 정치적 민감성이 커졌음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 규모 자체는 대단하다. 중국은 지난 10년간 개도국에 총 약 1조 달러를 투입하여 64개국을 프로젝트에 포함시키고 약 200건의 협력 문서를 체결하였다고 한다. 천여 개의 프로젝트가 각국에서 수행되고 있으며 각 프로젝트별 평균 계약액이 5.5억 달러에 달한다. 사업대상 지역은 주로 유라시아 대륙, 동·서남아 그리고 아프리카에 집중되어 있지만 면적으로는 전 세계의 절반을 넘고 있다.
 
중국은 10년간 일대일로 프로젝트로 개도국 항구 확장공사를 하였고 유라시아 대륙을 누비는 고속철도와 도로를 건설하였으며 또한 ‘시베리아 힘 2’를 비롯하여 대륙 곳곳을 잇는 가스관을 건설하였다.
 
일대일로 사업의 공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일대일로 사업으로 인해 적잖은 개도국들이 부채의 함정에 빠져 원리금 상환 대신 자국 기간시설을 중국에 대신 내어주는 일이 벌어져 비판을 받고 있다. 중국의 무모할 정도의 대규모 자본투입과 비효율적인 운영으로 인해 이런 부작용은 예견된 바 있다. 그러나 인프라 사업은 처음에는 적자가 나더라도 건설 이후 경제적 유발효과는 천천히 나타나는 경향이 있으므로 그 최종결과는 더 두고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반면 긍정적인 측면을 보자면 현대판 실크로드인 일대일로 사업으로 인해 유라시아 대륙의 연결성이 획기적으로 증대되고 있다. 지금도 중국-유럽 화물열차 노선의 연결이 늘어나면서 중국의 84개 도시가 유럽 25개 도시와 철도로 바로 연결된다. 이 철도의 수송 물동량은 3년 전부터 매년 20% 정도 증가하는 중이다. 중국은 일대일로 사업을 통해 경제적 이익 이외에도 지전략학적 이득도 도모하고 있다. 우선 일대일로 64개 대상국이 중국 경제권으로 편입되는 중이다. 이들 국가간 교역액이 3조 달러에 달하며 대상국들과 중국 간 무역 증가율은 6.4%에 달하여 세계 여타 지역의 무역증가량을 뛰어넘고 있다. 무역결제 대금으로 위안화를 사용하는 국가 수가 17개국으로 늘어나 위안화의 국제위상 제고에 기여하고 있다.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맞서 지난 9월 G-20회의에서 발표된 IMEC 구상은 인도 등 서남아 지역과 중동을 연결하는 동부 회랑과 중동과 유럽을 연결하는 북부 회랑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프로젝트는 이 회랑 위 국가들의 철도-항구-도로 연결망을 구축하여 물류가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이다. 이 회랑은 30여 개국을 연결하나 이 회랑 통과지역에 지정학적 리스크가 존재한다. 이를 증명하듯 최근 발생한 이-팔 전쟁으로 회랑 위의 주요 참여국인 이스라엘-사우디 간 반목이 예상되어 이 구상을 정상적으로 추진하는 데 벌써 난관이 생겼다. 게다가 주도국인 미국, 유럽국가들의 실제적인 투자규모도 아직 확정되지 않고 있어 향후 본격 추진되더라도 일대일로와 격차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 두 프로젝트의 경쟁으로 인류 역사상 전 지구적 규모에서 두 나라가 지정학적 지배권 다툼을 벌이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현재 자유진영과 권위진영의 맹주로 간주되는 양국의 세력권 경쟁은 결국 그 세력권에 속한 국가들의 정치체제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세력권 내에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 중국 세력권에서는 권위주의 체제가 더 융성할 가능성이 있다. 어느 세력권이 더 확대되느냐에 따라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의 향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 교통 인프라 건설은 결국 패권국의 공공재 제공과 같은 역할을 하므로 이 경쟁의 승리자가 결국 패권을 유지하거나 혹은 신흥 패권국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의 뒷마당이라 할 수 있는 유라시아 대륙의 일대(一帶)에는 미국이 관여할 여지가 희박하고 미국은 중국의 일로(一路), 즉 중국이 해양 수송로, 수송 요충지 확보를 저지하는 노력을 경주하는 데 국한될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예상 가능한 미래에 중국이 미국 해군력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압도할 가능성은 희박하니 결국 중국은 대륙패권 국가, 미국은 해양패권 국가로 공존할 가능성이 있다. 15세기 이후 해양세력이 세계를 지배하던 시기가 저물고 대륙세력이 세계의 중심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증대하고 있다. 일대일로 사업이 계속되면 지정학 태두인 매킨더가 말한 ‘세계의 심장대륙, 즉 유라시아를 지배하는 세력이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는 예언이 실현될지도 모른다. 미·중 양국의 지정학적 경쟁은 향후 몇 십년을 거치며 계속 전개될 것이다.
 
한국은 현재 지정학적으로 도서국가이므로, 지금은 해양 패권국인 미국과 연대하는 것이 유리해 보인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한반도는 지정학상 반도국가이므로 통일될 경우에는 대륙 패권국인 중국과 연대하는 것이 우리의 경제적 이익에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가 유라시아 대륙의 연계성을 충분히 활용할 때 우리 시장이 확대되고 우리 경제권역이 넓어질 것이다. 그래서 미·중의 지정학 경쟁의 진전은 한반도 운명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백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 대사 △국회의장 외교 특임대사 △주호주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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