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막의 연속이다. 다 올라온 줄 알았는데 또 오르막이다. 2023년에도 녹록지 않은 경제였는데 2024년에는 ’지칠 대로 지치는 경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고물가·고금리·저성장은 기업 투자도, 가계 소비도 억누르는 악조건이고, 악조건이 2023년에 이어 장기화하다 보니 지칠 대로 지치게 된다. 필자는 <스태그플레이션 2024년 경제 전망>을 통해 올해보다 내년이 더 어려울 수 있음을 강조했다. 2024년 경제를 들여다보고 대응책을 고민해 볼 시점이다.
시대를 결정짓는 변수가 있다. 2020년의 변수가 코로나19였고, 2021년의 변수는 백신 보급이었다. 2022년의 변수는 전쟁이었다. 전쟁의 지속 혹은 확전 여부에 따라 경제가 결정되는 듯했다. 실제 2022년 국내외 경제는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는 국면이었는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경제 흐름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았다. 2023~2024년의 변수는 인플레이션이다. 인플레이션의 정도에 따라 각국의 통화정책 기조가 달라진다. 즉, 인플레이션 위협이 해소될 것인지에 따라 각국 중앙은행은 기준금리 인상·동결·인하 속도와 정도를 결정할 것이고, 이에 따라 2024년 경제 시나리오가 짜일 것으로 전망된다.
2024년 한국 경제 전망에 대한 전제
첫째, 시나리오1은 가장 낙관적인 상황을 전제한다. 물가 상승률이 빠르게 둔화하여 2024년 상반기 안에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이 기준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하는 것으로 가정하겠다. 글로벌 물가가 빠른 속도로 안정되면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벌여왔던 세계 주요국의 통화정책 기조가 급격히 전환될 것이다. 물가 안정이 과제였던 경제에서 경기 부양이라는 과제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억눌렸던 경기를 부양시키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움직임 등이 일 것이다. 공격적 투자 성향이 집중되면서 주식과 부동산 시장으로 돈이 이동함에 따라 자산가치가 급격히 상승하게 될 수 있다. 기업의 신규 투자와 가계의 소비가 증가하고, 대외 경제가 빠른 속도로 안정되면서 수출 경기도 호조세로 전환될 것이다. 2024년 한국 경제는 2.1% 성장하며, 잠재성장률 수준을 지켜낼 것으로 전망한다.
시나리오2는 중립적인 가정을 전제로 한다. 2024년 물가 상승률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횡보하는 흐름이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즉, 끈적끈적한 고물가(sticky inflation)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한번 오른 가격이 내려가기는 쉽지 않은 성격이 있고, 임금과 공공요금도 지속해서 오르면서 물가 상승률이 목표 물가 2%까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국제 유가 상승이나 기후문제에 따른 식료품 가격 상승세가 물가를 자극한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지속됨에 따라 세계 주요국들은 상당 기간 긴축적 통화정책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2024년 하반기에나 한두 차례 기준금리 인하가 가능할 것이고, 여전히 제약적인 금리가 될 것이다. 고물가와 고금리의 압박은 한국 경제를 저성장 고착화로 몰아넣을 것으로 판단된다. 2024년 한국 경제는 1.7%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2023년 극심한 경기 침체에 따른 기저효과(High Base Effect)가 작용해 ’숫자상으로‘ 반등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 뿐이며 체감경기는 전년보다도 못하다.
시나리오3은 가장 비관적인 상황을 전제로 한다. 인플레이션이 다시 고조되는 일을 상정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 리오프닝 효과가 상당한 수준으로 나타나거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후 재건사업이 활발히 일어나게 되면 원자재 수요가 급증할 수 있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확대됨에 따라 국제 유가가 급등할 수 있고, 슈퍼 엘니뇨에 따라 식료품 가격도 덩달아 급등할 수 있다. 미국을 시작으로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파업이 세계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게 되면 높은 임금 상승률이 반영되어 근원물가가 다시 상승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 위협이 다시 고조됨에 따라 주요국들이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하게 된다. 미국 금융시장 불안과 중국발 부동산 사태가 재점화하면 자본시장은 상당한 혼란에 휩싸일 것이다. 기업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며 투자를 두려워하고, 가계의 소비심리는 더 얼어붙는다. 2024년 한국 경제는 2023년 상황보다 더 악화하고, 경기 침체가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경제는 1.3% 수준으로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2024년 경제가 경제위기 수준은 아니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팬데믹 경제위기 상황을 제외하면 가장 안 좋은 경제가 될 것이다.
2024년 한국 경제 전망
2024년 ’플린 턴‘이 필요하다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어려운 경제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까?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할까? 경제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움직이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다.
수영의 역사 속에 1분이라는 마의 장벽이 있었다. 어떤 노력을 해도 배영 100야드(91.44m) 종목에서 1분이라는 기록을 깰 수 없었다. 당시 수영선수들은 턴을 할 때 손으로 벽을 짚던 시절이다. 움직이지 않으면 그 기록이 깨지지 않는다.
하나의 움직임이 일어났고 그것은 수영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그 움직임은 바로 플립 턴은(flip turn)이었다. 1930년대 수영선수들은 턴을 할 때 손으로 벽을 짚었다. 당시 수영 코치였던 텍스 로버트슨(Tex Robertson)은 기존 방식에 의문을 품었고 손이 아닌 발로 턴하는 방법을 도입했다. 텍스 로버트슨의 제자인 아돌프 키에퍼(Adolph Gustav Kiefer)는 59.8초의 기록으로 배영 100야드 종목에서 1분 기록을 깨뜨린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당시 16세였고 1935년 일리노이 고등학교 선수권 대회에서 세상을 바꾸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는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획득했고 같은 해 일리노이주 선수권 대회에서는 58.5초를, 1940년에는 57.9초로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아돌프 키에퍼의 플립 턴(flip turn)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한 말이다. 강물은 계속 흐르고 있으니 같은 강물에 들어갈 수 없는 일이고, 설사 강물이 흐르지 않을지라도 다시 들어간 '나'도 이미 변화했기 때문에 같은 강물에는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판타 레이(Panta Rhei)'는 변화한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세상 모든 것이 변화함을 강조한 그의 대표적인 사상이다.
경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고물가·고금리·저성장이 짓누르는 2024년에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해야 한다. 앞서 2024년 경제를 전망했다면 어떻게 대응할지를 모색해 2024년의 플립 턴을 시도해 보자.
변화하지 않는 것은 실패를 연습하는 것이다. 기업은 경제 환경에 둘러싸여 있고 그 환경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물가, 금리, 환율, 국제 유가, 원자재 가격 등과 같은 거시경제 변수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관찰하고 적절한 구매전략과 판매전략을 짜야만 한다. 대외 환경 변화와 지정학적 리스크를 주목하며 수출 전략과 신시장 진출 전략을 꾀해야 한다. 산업 트렌드를 주시하며 유망 산업으로 진출하는 등 사업전략과 관련 인재를 확보하는 인사 전략을 펼쳐야 할 것이다.
정부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좌시하면 안 된다. 고물가와 저성장을 같이 만나는 상황에서는 이렇다 할 대응책도 마땅히 없기에 고민이 깊어진다. 2024년 물가 안정을 최우선하는 정책을 지속해야 한다. 상반기 내에 물가 안정을 이루어 통화정책이 그 외 다른 과제(금융 불안 해소, 경기 부양 등)에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정부는 내일을 살펴야 한다. 가계와 기업이 비록 어제오늘을 놓고 고심이 깊을지라도 정부는 내일을 놓고 고민해야 한다. 어제의 주력 산업이 내일의 유망 산업이 아닐 수 있다. 장기적인 R&D 로드맵을 짜고, 경제주체가 흔들림 없이 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야 한다. 기업들이 유망 기술에 투자하고 신상품 개발에 전념할 수 있도록, 가계가 그 유망 기술을 확보하는 인재가 될 수 있도록 정부는 큰 나무가 되어 품어야 한다. 낡은 규제로 인해 수년간 공들인 노력이 헛되지 않게 되도록, 기업이 잘못된 제도에 ’지쳐 쓰러짐‘ 없도록 정교한 산업기술정책을 구축해야 한다.
김광석 필자 주요 이력
△한양대 겸임교수 △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