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자금줄 역할을 하는 금융투자업계에서도 불안감이 감지되고 있다. 국내 증권사들이 한때 유행처럼 추진한 해외 부동산 투자가 이제는 '빚' 부담으로 변질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해외에서 달러 빚을 내 해외 부동산에 투자한 경우가 많아 부실 위험률이 가중될수록 해외 부동산 손실에 더해 달러 부채로 인한 손실까지 늘어나는 구조라 우려를 더하고 있다.
11일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외화 거래가 발생한 국내 26개 증권사들의 지난해 누적 손실액은 19조8280억원이다. 2021년 9조1915억원으로 집계됐는데 1년 새 2배 이상 급증했다.
해외 부동산 투자 비중이 큰 대형 증권사들의 외화 부채 비율이 전반적으로 컸다. 한국투자증권, 메리츠증권, 미래에셋증권 등 10개사의 달러 빚이 작년 전체 규모 가운데 90% 이상을 차지했다.
지난해 기준 누적 손실 규모가 가장 큰 증권사는 한국투자증권이다. 2022년 한 해 동안 5조원 넘는 손실액이 쌓였다. 자기자본(2022년 기준 6조5528억원) 대비 76.3%에 해당한다.
메리츠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이 2조6174억원, 2조161억원으로 그 뒤를 쫓았다. 두 증권사 모두 자기자본에 48.7%, 22.2%만큼 외환거래손실액을 기록했다.
이들 증권사의 외환거래손실액은 올해 상반기에도 크게 제어되지 않는 모습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이번 반기 동안 2조9465억원 규모의 손실을 보고 있다고 금융감독원에 보고했고 메리츠증권과 미래에셋증권도 각각 1조원에 달하는 손실이 누적돼 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한때 들불처럼 번진 해외 부동산 투자 손실이 늘어날수록 증권사들의 외환 건전성이 악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고금리 여파에 따른 시장 침체로 국내 증권사들이 주로 투자한 미국과 유럽 상업용 부동산 가격 하락세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태현 한국기업평가 금융1실 실장은 지난 8월 열린 웨비나를 통해 "보험, 증권 전반으로 가격 하락세가 가파른 미국 유럽 오피스에 투자비중이 높아 부실화 가능성을 높인다"고 진단했다.
한기평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국내 23개 증권사(대형사 8, 일반 15)의 해외 대체자산(부동산 및 사회기반시설·SOC) 투자 규모는 14조1000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SOC를 제외한 부동산 투자액은 대형사 9조2000억원, 일반 증권사 1조6000억원으로 총 10조8000억원이다. 대형사의 경우 자기자본의 19.6%, 중소형사는 9.6%에 해당한다.
이 중 오피스 투자가 전체 42%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주거용 22%, 기타 상업용 18%, 호텔 9%의 구성 비율을 나타내고 있다. 지역별로는 북미 63%, 유럽 12% 순이다.
여기에 자금 회수 순서를 결정하는 담보권도 문제가 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오피스가 국내 증권사들의 해외 부동산 투자잔액의 45%인 4조8000억원에 달하는데, 이에 대한 최종 투자는 지분 또는 중순위 대출(메자닌 채권)인 것으로 파악된다. 선순위보다 자금 회수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구조로 투자가 단행된 것이다.
이미 손실을 확정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지난 7월 미래에셋증권의 2800억원 규모 홍콩 오피스빌딩 펀드가 투자 자산의 90%를 상각 처리하기도 했다.
이 펀드는 멀티에셋자산운용이 2019년 골딘파이낸셜글로벌센터 빌딩에 투자하기 위해 조성했는데 미래에셋증권을 비롯한 국내 투자자들은 2019년 6월 중순위(메자닌)로 해당 빌딩에 당시 환율 기준 2800억원(2억4300만 달러)을 대출해줬지만 부동산 가치 하락으로 자금 상환에 실패하며 손실을 확정했다.
위지원 한신평 금융·구조화평가본부 금융1실장도 '증권 및 보험사의 해외부동산 리스크 점검' 보고서를 통해 "코로나 이후 공실률이 예상 수준을 벗어나 크게 높아지고 금리가 급격히 상승해 자금 재조달 시점에 리파이낸싱(차환) 위험 수준이 높아졌다"며 "해외 부동산 익스포저 부실 위험이 표면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