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전8기 로스쿨 '오탈자 제도' 헌법소원...'임신·출산'으로 물꼬 트이나

2023-10-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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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인 김씨, 5년간 출산·육아로 응시 기회 3번 날려

출산·육아도 '불가항력적 사유'…"불이익 보전해줘야"

오탈자 예외 인정 '첫 사례' 될지 법조계 '이목' 쏠려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심판정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심판정.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졸업 후 임신·출산·육아로 변호사시험법상 응시 기회를 모두 잃은 졸업생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변호사시험 응시 기회를 5년 내 5회로 제한한 이른바 '오탈자 제도'로 직업선택의 자유가 침해당했다는 법학전문대학원 졸업생들의 헌법소원과 헌법재판소(헌재)의 '합헌' 결정이 반복되는 가운데, 새로운 법리로 헌법소원이 제기돼 법조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행법상 오탈자 제도는 병역의무 이행만을 예외 사항으로 두고 있는데 임신·출산·육아도 인정해달라는 게 이번 헌법소원 청구의 골자다. 특히 출산 전후 기간도 변호사시험을 볼 수 없는 '불가항력적 사유'로 인정해야 하고, 현행법이 이로 인한 불이익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마련하지 않아 평등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출산 후 29일 만에 시험...출산휴가처럼 변시도 유예기간 필요"
4일 법조계에 따르면 로스쿨 졸업생인 김누리씨는 현행 변호사시험법 7조2항은 직업선택의 자유, 평등권 등을 침해하는 위헌이라며 지난달 21일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변호사시험법 7조는 로스쿨 졸업생들의 변호사시험 응시 기회를 '졸업 후 5년 내에 5회'로 제한하고 병역의무 이행만을 예외 사유로 두고 있다. 이 응시 기회를 놓친 이들은 소위 '오탈자(五脫者)'로 불리며 변호사가 될 기회를 영영 잃어 버린다.

김씨는 2016년 로스쿨을 졸업한 후 2020년까지 5년간의 응시 기간 동안 두 번밖에 시험을 치르지 못했다. 변호사시험은 매년 1월 치러지는데 둘째 자녀를 출산했을 때는 2018년 12월로, 시험이 불과 29일 남은 시점이었다. 김씨는 "임신 기간 동안 입덧 및 임신성 당뇨 등으로 장기간 책상에 앉아 있을 수 없었고 시험장으로 이동조차 어려웠다"고 말했다.
 
김씨가 오탈자 제도를 규정한 변호사시험법이 위헌이라며 제출한 청구서는 약 94쪽에 달한다. 특히 근로기준법에도 출산 전후 90일간의 의무적 출산휴가를 두는데, 변호사시험법은 청구인(김씨)의 시험 응시 기회가 사실상 박탈되는 데도 이를 보전할 아무런 조치도 마련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청구서에는 출산 후 6~8주인 '산욕기'에 산후병이 발병하기 쉬워 회복에 전념해야 한다는 의학적 소견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김씨 측은 "출산 전후의 최소 90일 동안 그가 소속된 직장에서 벗어나 자신의 건강 관리와 영아 돌봄에 매진할 법상의 권리가 있다"며 "출산한 지 29일째에 치러진 제8회 변호사시험에 대한 시효만이라도 중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헌재는 지난 2월 코로나19 확진자인 응시자에 대해 대안을 마련하지 않은 변호사시험 공고가 '피해의 최소성 원칙'에 위배된다고 판단한 바 있다. 헌재는 "불가항력적 사유인 코로나19 확진으로 시험기회 5분의1을 잃는 것은 중대한 불이익"이라고 판시했다. 김씨 측은 "임신·출산도 불가항력적 사유인데 헌재는 자기모순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위헌 결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호사시험법 제7조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한 김누리씨가 지난달 2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사진김누리씨
변호사시험법 제7조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한 김누리씨가 지난달 2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사진=김씨 대리인 박은선 변호사]
 
'오탈자' 잇단 합헌 결정...'임신·출산' 예외 추가 물꼬 트이나
다만 헌재는 2016년 오탈자 제도를 규정한 변호사시험법 7조에 대해서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첫 합헌 결정을 내린 후 같은 판단을 이어오고 있다. 응시 기회를 무제한으로 부여할 경우 '고시 낭인' 양산과 변호사 전문성 및 신뢰 저하가 우려된다는 게 주요 근거다. 또 누적합격률이 로스쿨 입학자 대비 75% 수준인 점을 고려해 과도한 제한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김씨 측은 앞선 헌재 판단 근거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반박했다. 김씨 측은 "청구인은 임신·출산으로 사회구성원 재생산에 이바지해 '낭인'이 된다는 우려가 타당하지 않다"며 "임신·출산으로 오탈자가 된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 시험합격률은 소수점에서조차 변동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변호사시험법 입법취지가 저출산 해결이라는 공익에 앞설 수 없다고도 했다.
 
병역의무 외에 중증질환자 등 오탈자 예외 사항을 추가해야 한다는 취지의 헌재 재판관 반대의견도 늘고 있다. 헌재는 올해 6월 코로나19, 임신·출산 등을 이유로 오탈자가 된 청구인들의 헌법소원을 기각하면서도 "병역의무 이행 외에도 5년 내에 정상적으로 변호사시험을 준비·응시하기 어려운 사유가 인정될 여지가 있다"고 재판관 2인이 반대의견을 냈다.
 
오탈자 제도의 예외 적용을 확대해야 한다는 법조계 지적이 있어온 가운데, 김씨 사건을 계기로 전환점이 마련될지 이목이 쏠린다. 새로운미래를위한청년변호사모임(새변)은 지난달 지지 성명서를 낸 데 이어 김지연 변호사는 김씨의 기자회견에 참석해 "임신·출산을 예외사유로 허용하지 않아 청년의 직업선택의 자유 등을 침해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도 지난 8월 예외 사유에 임신·출산을 포함하도록 법 개정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김씨의 대리인인 박은선 변호사(법률사무소 이유)는 "출산 29일째 변호사시험에 대해서도 예외를 허용하지 않은 김누리씨 사건에 대해 제기된 변호사시험법 제7조 제1항 관련 헌법소원에 희망이 있다고 본다"며 "명백한 예외사유를 인정받는 것에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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