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중처법 下] 정부지원 뒷전...中企 '사법리스크' 가시화

2023-09-12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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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의 한 공사 현장 사진연합뉴스
수도권의 한 공사 현장. [사진=연합뉴스]

5인 이상 50인 미만 기업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시행이 5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안전보건 전문인력 부족으로 상당수 사업장은 대비 조치가 여전히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규모 업체에 대한 중처법 ‘사법 리스크’가 가시화하고 있음에도 정작 정부 지원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확대 시행 앞두고 안전보건 전문인력 ‘태부족’
 
12일 아주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내년 1월 중처법 확대 시행을 앞두고 50인 미만 사업장들이 안전보건 확보의무 이행을 위한 인력 확보에서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달 말 중소기업 892개를 대상으로 한 ‘50인 미만 중대재해처벌법 대응 실태 및 사례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 80%는 중처법 시행에 대비한 준비를 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응답 기업 중 35.4%는 ‘전문인력 부족’을 준비 미비의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현행 중처법에 따르면 경영책임자가 반기에 1회씩 점검·평가해야 하는 안전보건 확보의무만 7가지 이상이다. 이 중에는 △안전보건 관리책임자 등에 대한 권한 예산 부여 △유해·위험 확인과 개선 절차 마련·이행 △유해·위험 작업에 대한 안전교육 실시 등 안전보건 전문인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안전보건 의무가 상당수다.
 
중처법 위반 사건은 관계 법령상 안전보건 확보의무 사전 준수 여부에 따라 유·무죄와 양형이 결정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향후 중소업체도 중처법상 의무는 물론 관계 법령인 산업안전보건법 16조의 관리감독자 지정 의무와 19조의 안전보건 관리담당자 지정 의무 등도 모두 준수해야 한다.
 
안전보건 전문인력 확충에 대한 부담이 가중됐지만 소규모 업체가 전문인력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다. 서정헌 중기중앙회 인력정책실장은 “결국 5개월 안에 안전보건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의미인데 전문인력에 대한 인프라가 없는 상황에서 중소 사업장들이 관련 인력을 확보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강세영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안전보건 의무와 위험성 평가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를 기업이 자체 검토하라는 것인데 검토를 하기 위해서는 일정 전문 역량이 필요하다”며 “안전 관련 컨설팅업체나 전문법인에 자문을 받거나 산업안전기사를 구하는 것이 그나마 현실적인데 영세 업체들이 이를 확보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중처법상 안전보건 의무에 대한 기업들 이해도가 여전히 떨어지는 점도 확대 시행에 걸림돌로 지적된다. 지난해 5월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중처법 적용 기업 중 68%는 시행 법령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고 답했다. 수도권 소재 제조업체 관계자는 “안전공단의 작업계획서 샘플과 다른 기관의 중처법 위반 평가 기준이 달라 법 위반이 된 사례가 있다”며 법 해석에 어려움을 호소했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대기업과 달리 중대재해 발생 시 소규모 업체는 바로 중처법 위반으로 의율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평가 기준은 많은데 이를 모두 이해하고 준수할 수 있는 안전체계 구축이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68만 업체 중 3만 곳만 컨설팅···“현실적인 전문인력·평가가이드 마련해야”

고용노동부는 중처법 확대 시행에 대비해 중소기업 1만6000개를 대상으로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컨설팅을, 또 다른 1만개에 대해선 위험성 평가 컨설팅을 시행 중이다. 그러나 확대 시행 적용 대상 업체가 최대 68만곳으로 추산되는 것에 비해 실제 컨설팅 수혜 기업은 매우 제한적이라고 중소기업계는 평가한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68만곳이라는 전체 대상에 비하면 컨설팅 대상 자체가 상당히 미미한 수치다. 민간 차원에서도 컨설팅이나 설명회를 전국 단위로 순회하며 진행하고 있는데 물리적으로 실효성이 상당히 제한적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중소기업계를 중심으로 확대 시행 유예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8일 50인 미만 중소기업에 대한 중처법 적용 유예를 골자로 한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전문가들 상당수는 제도 확대 시행에 앞서 정부가 기업에 대해 전문인력 확충을 우선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소 사업장 현실에 맞는 단서 조항도 도입해야 할 필요가 있는 지적도 나온다.
 
서 실장은 “지금까지 영세 업체가 활용할 수 있는 안전보건 전문인력 양성에서 정부 대책이 여전히 소홀한 부분이 있었다"며 "업종별로 특화된 안전보건 관리자 양성을 확대하고 중소 업체가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교육과 컨설팅을 선행한 후 확대 시행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변호사는 “협력업체 평가 기준이나 관리감독사 평가 기준 등 통일된 평가 기준을 마련하고 중처법상 반기 1회인 점검 주기를 영세 업체에 한해 연 1회로 완화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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