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부촌인 대치동이나 도곡동 아파트 단지에 가 보면 특이한 그룹의 여성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주로 50대나 60대인데 대개 말쑥한 차림에 작은 배낭을 메고 다닌다. 아침에는 어린아이들을 유치원 버스에 태워 등원시키는데 아이들로부터 곧잘 ‘이모’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물론 이모가 되기에는 좀 나이가 들었고 실제로는 이들 가정의 가사 노동자, 즉 도우미들이다. 조선족 도우미가 상당수이다. 대개 가정에 입주해서 육아를 포함한 가사를 돌보는데 최소 월 350만원을 받는다고 한다. 웬만한 고소득층 가정이 아니면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좀 더 부담이 덜 되는 가사 도우미들을 공급하기 위해 정부는 금년 말 시범적으로 100명의 외국인 가사 노동자들을 도입하는 계획을 최근 발표했다. 현재는 한국인이나 조선족에게만 허용되지만 이를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여성들에게 개방해 가사 도우미의 공급을 확대한다는 복안이다. 일단은 서울에서 시작하고 추후 상황을 봐서 기타 대도시나 지방으로 확산할 계획이다. 외국인 가사 도우미는 최저 임금인 월 210만원 정도를 받게 될 예정이라 일반 가정에서 많은 수요가 생길 것으로 정부는 희망한다. 육아 및 가사 부담 때문에 한국의 많은 여성들이 출산을 포기해서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인 상황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란 얘기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많은 전문가들이 그 실효성을 의심한다. 한국인 평균 월급이 330만원 정도인 상황에서 최소 210만원이 드는 외국인 가사 노동자들을 일반적인 중산층 가정에서 감당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결국 내국인 가사 노동자 경우처럼 고소득층을 위한 제도가 되기 쉽다는 우려다. 홍콩이나 싱가포르처럼 외국인 가사 노동자들을 최저 임금에서 제외시켜야만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당초 외국인 가사 노동자 도입을 주장한 시대전환의 조정훈 의원은 최근 국회 질문에서 이 계획이 “완전히 잘못된 정책 실험”이라고 단언했다. 한국 30대 여성의 중위소득이 월 271만원인 상황에서 월급 거의 모두를 가사 도우미에게 바쳐야 하는 황당한 경우라고 꼬집었다.
외국인 가사 노동자 제도를 최초로 도입한 싱가포르의 경우 이들을 고용하는 것이 가계에 큰 부담이 되지 않기 때문에 현재 무려 27만명의 외국인 가사 노동자가 체류 중이다. 인구의 5%에 달한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인근 말레이시아나 인도, 필리핀 등에서 온 이들은 저임금에도 불구하고 평균 하루에 12.8시간을 일하며 주 81시간을 근무하고 있다. 취업을 위해서는 평균 세 달치 월급에 달하는 비용도 지불해야 한다. 그 때문에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 이들을 착취한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자주 들린다.
한국 정부가 외국인 가사 노동자에게 최저 임금을 보장한다면 이러한 비난에서는 자유로울 수 있다. 그 때문에 일부 시민 단체들은 외국인 노동자 권익 및 인권 보호 차원에서 최저 임금이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재 최저 임금을 보장받는 일반 외국인 노동자들의 경우도 권익 침해 및 착취는 비일비재하다. 임금을 체불하거나 비인간적인 대우를 일삼아 심심찮게 국내외 지탄을 받는다.
사실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임금만큼 중요한 것은 인격을 존중받고 인간다운 대접을 받는 것일 터이다. 이 점에 있어 에릭 테오 (Eric Teo) 주한 싱가포르 대사는 얼마 전 국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의미 있는 발언을 했다. 체류 중인 외국인 가사 노동자들을 학대하거나 착취하는 것을 싱가포르 정부가 철저하게 단속하고 엄벌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외국인 근로자가 “안심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다는 점을 확실히 한다”고 전한다.
외국인 노동자 관련 또 한 가지 과제는 한국인 특유의 외국인에 대한 폐쇄성 및 차별이다. 특히 동남아시아 저개발국 국민을 깔보는 태도는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반면에 싱가포르 같은 나라의 경우 외국인에 대한 포용적인 자세가 장점이 된다. 싱가포르는 중국, 말레이, 인도계로 구성된 다문화 사회를 인종 간 차별이나 갈등 없이 성공적으로 관리해 온 점이 돋보인다. 낮은 임금에도 불구하고 27만명에 달하는 외국인 가사 노동자가 큰 문제 없이 체류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한국에서 외국인 가사 노동자 제도가 성공하려면 잊지 말아야 할 사항이다.
이병종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언론정보학 박사 ▷AP통신 특파원 ▷뉴스위크 한국지국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