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2명과 외교관 2명이 참석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필자는 한국이 언제 통일될지 내기를 했다. 그때가 1990년이다. 그 이전 한국에 통일은 판타지였다. 통일을 생각할 상황이 아니었다. 통일에 대한 준비는 차치하더라도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에 에너지를 쏟고 있었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되면서 공산주의가 도미노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한반도에 통일이 갑자기 올 것처럼 보였다.
한 외교관은 "내년 4월 15일"이라고 말했다. 그가 날짜를 김일성 생일인 4월 15일로 제시한 것은 조크였지만 내년이라고 한 것은 진지했다. "1994년 4월 15일." 한 언론인이 4월 15일에 대한 조크를 이어받으면서 1994년을 제시했다. 그는 이날 모임에서 유일한 한국인 참석자였다. 우리 외국인들은 그가 너무 보수적이라고 생각했다. 4년이나 더 있어야 한다고? 아마도 제 정신이 아닌가 봐.
그 자리에서 필자는 "1992년 4월 15일"이라고 말했지만 나 자신도 너무 보수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앞에서 제시한 날짜에는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고 지나갔다. 우린 아직도 언제 통일이 될까 추측만 하고 있다. 통일의 타이밍과 더불어 우리가 아직도 던지는 질문이 있다. 통일된 이후 북한은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북한은 통일된 국가에 어떤 식으로 공헌을 하나. 분명히 북한은 땅과 사람을 제공할 것이다. 한국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국토는 두 배나 되고 인구도 5000만명 정도에서 7500만명으로 늘어날 것이다. 유럽 스탠더드로는 독일 처럼 큰 나라가 된다. 그렇다면 또 다른 무엇이 있을까? 정치 제도, 정부 서비스, 경제력, 기술적 노하우나 문화적인 측면에서 통일된 국가에 사는 한국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대부분 사람들은 북한이 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아니면 민감한 이슈지만 일부는 개성을 새로운 수도로 정하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몇 해 필자는 통일된 국가가 현재의 한국보다 좋은 세상으로 만들 수 있도록 도움이 될 만한 두 가지 요소를 북한이 제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매우 심오한 것인데 독자들은 이에 동의할 것으로 생각한다. 다른 하나는 매우 민감한 문제인데 그 아이디어 자체가 국가안보법 위반이 될 수도 있다. 사실 필자는 한국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유일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첫 번째 요소는 인생의 의미에 대한 국가의 지배적 세계관에 관한 것이다. 이는 협상이나 정리작업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통일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출산율은 세계에서 최저로 지난주 통계청은 올해 2분기에는 더욱 하락해 0.7%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까지 고려한다면 한국은 분명 정부의 정책이나 복지로 해결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삶의 목적과 관련된 것이다. 왜 내가 존재하나? 나에게 가치 있는 인생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개인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인생을 영위할 의지에 관한 이러한 자연스러운 질문들에 대한 답은 집단적으로 나온다. 우린 부모들이나 사회의 패턴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매우 광범위하게 이야기해 본다면 현대 한국인들의 증조부모들에게 삶의 목표는 혈통을 잇는 것이었다. 또 조부모에겐 살아남는 것이, 그리고 부모들에겐 건강하고 부자가 되는 것이 목표였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우리에겐 확신이 없다. 불교나 기독교가 신도들에게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면에선 그들도 사회의 트렌드에 종속되곤 한다. 예를 들자면 자신들이 믿는 신에게 이웃을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기도한다기보다는 좋은 대학에 가거나 부자가 되는 것을 도와 달라고 기도하며 이는 흔한 일이다.
만약 북한 주민들이 합류한 새로운 국가는 어떤 모습으로 달라질까? 현대 역사상 최악의 정권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은 사람들의 에너지와 기쁨 그리고 사랑이 가득찬 국가로 변모할까? 자신들의 아이들을 위해 좀 더 나은 세계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북한 사람들. 우리는 북한인들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자유를 누리게끔 도움을 주게 되면서 동반 상승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두 번째 요소는 마치 군주제와 같은 북한의 통치제도다. 당신들이 전화로 113을 누르기 전에 김정은은 단연코 베제하겠다. 필자는 김일성 가문의 통치하고 이에 남한인과 자유를 얻은 북한 주민들이 동의하는 시나리오는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메원야 하는 갭은 있다. 지난 수십 년간 민주적으로 선출된 한국 대통령들은 은퇴 이후 대부분 불행했고 국민들을 좌절감에 빠뜨렸다. 이러한 좌절감의 원천은 실제로는 부정부패 때문이지만 국민들은 대통령을 군주로 생각하는 데 기인한다. 제도적으로 대통령은 군주와 같은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는데 국민들은 지도자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제도는 모든 분야에서 끝없는 정치적 논쟁이나 싸움이 이어지게 만들 뿐이다. 아마도 이러한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방법으로 총리와 대통령이 권력을 분담하는 의원내각제 도입은 어떨까? 아니면 군주가 국가원수 역할을 하는 제도는? 군주제 아이디어는 마땅한 후보도 없고 또 권력세습 제도에 대한 절대적 반감 때문에 우린 상상할 수도 없다. 그러나 어떻게든 미래 통일된 국가를 염두에 두고 한국인들은 국내 정치의 안정과 새로운 세대의 의미 있는 삶을 고민을 할 필요는 있다. [필자 약력]
마이클 브린은 현재 글로벌 PR 컨설팅 회사인 인사이트 커뮤니케이션스 CEO다. '가디언' '더 타임스' 한국 주재 특파원, 북한 기업에 자문을 제공하는 컨설턴트, 주한 외신기자클럽 대표를 역임했다. 가장 최근에 출간한 <한국인을 말한다>를 포함해 한국 관련 저서 네 권을 집필했다. 1982년 처음 한국에 왔으며 서울에서 40년 가까이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