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에너지업계에서 쓰는 용어 중에 'Dunkelflauten'이라는 게 있다. ‘Dunkel’은 어둡다는 뜻으로 이 뜻에서 파생하여 흑맥주를 지칭하기도 한다. ‘Flauten’은 ‘Flaute’의 복수로 무풍 상태를 의미한다. /둥켈플라우텐(Dunkelflauten)'은 태양이나 바람이 충분하지 못하여 태양광이나 풍력발전이 미미한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필요 에너지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쓰겠다는 국제적 흐름인 RE100과 관련하여 둥켈플라우텐이란 용어가 자주 사용된다.
화석연료로 만든 전기를 이용함으로써 재생에너지 100% 사용 약속을 저버린 이 공장이 RE100을 달성할 기회는 영영 사라진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공장의 해태가 아니라 풍력발전소가 제때 전기를 공급하지 못해서 빚어진 사태인 만큼 화석연료를 쓴 만큼 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Renewable Energy Certificate)를 구매하면 RE100에 머문 것으로 인정된다. 실제로 RE100 기업 가운데 소요 에너지 전량을 재생에너지로 쓰는 곳은 드물다. 대부분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를 부분적으로 사용하면서 화석연료 사용량만큼을 REC로 상쇄하여 RE100을 달성한다. REC 활용 비율이 국제적으로는 사용 에너지의 40%를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뱅크오브아메리카처럼 거의 REC 구매만으로 RE100 달성 기업에 이름을 올리는 곳도 있다.
▲RE100=RE100(Renewable Energy 100%)은 국제적으로 추진되는 민간 차원의 자발적 이니셔티브다. 국가 단위에서 수립되는 재생에너지 확산 정책과 별개로 기업 등 개별 조직 차원에서 진행한다. 비영리 단체인 ‘더 클라이밋 그룹’과 CDP(Carbon Disclose Project)의 파트너십으로 2014년 9월 유엔 기후정상회의에서 출범했다.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는 주지하듯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연속적인 공급(생산)이 가능하고 사용 과정에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적은 에너지원을 뜻한다. RE100에서 용인하는 친환경 발전원으로는 바이오매스(바이오가스 포함), 지열, 태양광, 태양열, 수력, 풍력 에너지 등이 있으며 태양광과 풍력이 경쟁력 우위를 확보하면서 두 곳에 투자가 집중되고 있다.
동시에 역으로 태양광과 풍력을 중심으로 투자가 확대하고 발전원가가 하락하며 태양광과 풍력발전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양의 피드백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2021 세계 에너지 투자 현황’에 따르면 2020년 재생에너지 발전 투자 금액은 전년 대비 6.9% 늘어난 3588억 달러로, 세계 전력부문 투자의 46.1%를 기록했다.
2020년 신규 풍력설비는 2019년의 두 배인 114GW였으며, 같은 해 신규 태양광설비 또한 전년보다 25% 늘어난 135GW였다. 에너지 연구기관인 BNEF는 2040년까지 전 세계 신규 발전설비 투자액(10조2000억 달러)의 72%인 7조4000억 달러가 재생에너지에 몰릴 것으로 예측했다.
전 세계에서 RE100에 참여한 기업은 400곳을 넘어섰다. RE100 2021 연례 보고에 따르면 2021년 연간 보고에 참여한 315개 RE100 회원사는 2020년 전력 소비량(340TWh)의 평균 45%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했다. 앞서 살펴본 둥켈플라우텐이 RE100 천명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재생에너지 조달비율을 사용 에너지의 절반 미만에 머물게 한다.
▲24/7 CFE=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재생에너지 공급량은 3372GW로 전년(3077GW) 대비 8.9% 증가했다. IRENA는 21세기 말까지 지구표면 평균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로 막으려면 연간 재생에너지 공급량을 2030년까지 현재 수준의 3배로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전략은 타당한 것이지만 다른 보완책이 병행되어야 한다. 살펴본 대로 둥켈플라우텐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RE100은 완벽한 온실가스 저감 대책이 될 수 없다. 대중은 흔히 RE100을 선언한 기업이 연중무휴 24시간(24/7/365) 재생에너지를 쓴다고 착각하지만 RE100 2021 연례 보고에서 나타났듯 재생에너지 조달 비율이 45%에 그쳤다.
핵심 재생에너지인 풍력과 태양광 전력 공급에 변동성이 존재하기에, 둥켈플라우텐에 발생한 수급 불일치를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해소하는 것이 관건이다.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해법은 저장장치다. 인용한 그래프에서 재생에너지 공급량이 소요량을 상회하는 첫째 주에 잉여 전력을 저장했다가 다음 주 둥켈플라우텐에 사용하면 깔끔해 보인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재 저장장치의 한계는 몇 시간에 불과하다. 며칠이나 몇 주가 되어야 둥켈플라우텐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데 저장 기간이 턱없이 짧다. 시급히 기술혁신이 이루어져야 할 부문이고 이제 막 가능성을 타진하는 중이다.
이에 따라 100% 재생에너지에 이어 100% 무탄소 에너지 사용이 에너지 분야의 핵심적 관심사로 떠오르게 된다. 100% 무탄소 에너지 사용을 세계적 의제로 제안한 곳은 구글이다. 구글은 2018년 ‘24/7 CFE(Carbon-Free Energy·연중무휴 무탄소 에너지)’ 정책을 발표했다. 이에 앞서 2017년에 구글은 처음으로 자사 연간 에너지 소비량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했다. 구글이 RE100을 달성하자마자 24/7CFE란 의제를 제기한 까닭은 재생에너지 수급불일치에 따라 RE100 달성에도 불구하고 화석연료와 완벽하게 결별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7년 이후 매해 RE100을 달성하고 있지만, 2021년을 예로 들면 그해 사용한 에너지의 67%만 무탄소로 조달했다. 명목상 RE100 달성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3분의 1은 여전히 탄소를 배출하는 화석연료를 쓰고 있다는 뜻이다. 구글은 2030년 ‘24/7 CFE’ 달성을 목표로 둥켈플라우텐 문제 해결에 노력하고 있다.
‘24/7 CFE’는 재생에너지 공급 효율을 높이면서 저장장치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과 결부된다. 100% 재생에너지 충당이 어려울 때 그만큼 REC 구입을 인정한 RE100보다 ‘24/7 CFE’는 훨씬 까다롭고 근본적인 개념이다.
‘24/7 CFE’와 RE100은 시간 기준이 다르다. 연간 기준인 RE100과 달리 ‘24/7 CFE’는 시간(hour) 단위로 재생에너지 공급 계획을 수립한다. 필요 전력을 상시적으로 무탄소로 공급하는 데 중요한 원칙은 ‘시간 일치’와 ‘현지 조달’이다. 무탄소전력 수급을 시간별로 계획해 구매한 재생에너지가 전력소비로 연결하도록 하고, 소비 지역에서 청정 전력을 구매해 전력 소비자가 자기 책임하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0’으로 만들 수 있다. 풍력과 태양광 전력을 주요하게 활용하되 지열이나 수력과 같은 대체 재생 에너지원을 함께 활용하여 둥켈플라우텐을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에너지 저장 솔루션과 혼합 재생에너지원 개발이 중요해진다.
에너지를 소비하는 기업이 중심인 RE100과 달리 ‘24/7 CFE’가 에너지 구매자, 공급업체, 정부, 비정부기구, 학술기관 등 에너지 생태계 전반의 이해관계자를 포괄하는 이유가 이러한 배경에서 해명된다. 2021년 9월 미국 뉴욕시에서 주요 에너지 구매자, 공급업체, 솔루션 제공업체, 정부 등은 ‘모두를 위한 지속 가능한 에너지(SEforALL)’ 및 유엔에너지(UN-Energy)와 협력하여 ‘연중무휴 무탄소 에너지 협약(24/7 Carbon-Free Energy Compact)’을 출범했다.
여기서 핵심은 ‘24/7 CFE’에 동원된 많은 에너지 기술이 태양광과 풍력발전을 더 잘 이용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24/7 CFE’은 재생에너지에 초점을 맞춘 에너지 활용 지침이라는 사실이 잊혀서는 곤란하다.
베를린공과대학이 최근 시뮬레이션한 바에 따르면 아일랜드에서 2025년 ‘24/7 CFE’을 적용한 결과 RE100에 비해 이 나라 발전 분야에서 탄소를 약 15%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대학 연구팀은 ‘24/7 CFE’의 90~95%를 달성하는 데 추가로 아주 많은 비용이 소요되지 않았으나 마지막 5%p에서 탄소를 없애는 데는 약 3배의 비용이 들었다고 분석했다.
RE100에 이어 등장한 24/7 CFE’는 미래 에너지 분야의 확고한 흐름이 될 공산이 크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1년 12월 미국의 모든 연방 기관에 ‘24/7 CFE’ 조건의 전력 구매를 요구하는 행정명령 14057호에 서명했다. 2030년까지 100%의 CFE를 달성하고 이 중 50% 이상을 연중무휴 대응할 수 있는 현지의 재생에너지로 제공한다는 게 목표다. 한국 정부는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에서 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목표(21.6%)를 2021년 전 정부에서 확정한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상 비중(30.2%)보다 크게 줄였다.
<성장의 한계> 50주년을 기념하여 로마클럽에서 ‘인류 생존을 위한 가이드’ 성격으로 발간하여 최근 국내에 번역된 <모두를 위한 지구>는 총 에너지 비용과 관련하여 당분한 급격한 상승을 감수해야만 지속 가능한 미래를 담보하는, 이 책에서 ‘거대한 도약’이라 명명한 전환을 이룰 수 있다고 밝혔다. 고통과 비용을 얼마나 감수할 수 있느냐가 지구와 국가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뜻이다. 8월 22일은 20회 에너지의 날이었다.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에 관해 고민이 더 깊어진 기념일이었다.
안치용 필자 주요 이력
△ESG연구소 소장 겸 (사)ESG코리아 철학대표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전 경향신문 사회책임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