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한번만 터지면 된다."
주식시장에서 '테마'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연초부터 이어진 이차전지 주도주들이 동력을 잃자 투자심리가 각종 테마주로 분산되고 있다. 스마트폰을 손가락으로 몇 번 두드리는 것만으로 몇 배의 수익을 낼 수 있다며 유혹하는 텔레그램 리딩방이 이를 부추긴다. 연일 급등하는 테마주를 놓친 것이 아쉬워 빚내서 투자(빚투)도 망설이지 않는 이들이 늘고 있다.
30일 시큐센 주가는 전 거래일 상한가에 이어 10%가량 급등하며 5000원대를 넘어섰다. 1주일 전 주가는 3090원, 6거래일 만에 2000원이 올랐다. 이 회사는 양자내성 암호화 솔루션 기반의 보안 업체다.
이보다 앞서 지난 17일 국내 연구진이 상온에서도 실용화할 수 있는 양자컴퓨터 소자를 찾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자 이 종목들은 양자컴퓨터 테마주로 형성됐다. 강세를 보이다 급락하고 다시 급등하고 있다. 문제는 과학계 연구 결과가 실제 상용화 되려면 최소 몇 년은 걸린다는 점이다.
최근 시장을 떠들썩하게 했던 테마주들도 테마가 지나간 뒤에는 폭락이 이어지고 있다. 육계주인 마니커에프앤지는 지난 25일 장중 6260원까지 오르며 52주 신고가를 기록했는데 현재 4700원대까지 내려갔다. 마니커도 같은 날 52주 신고가를 썼다. 현재 종가는 20%가량 떨어졌다.
후쿠시마 오염수가 방류되면서 수산물 외에 닭고기 등의 수요가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테마 형성의 이유였다. 방류 전까지는 소금, 수산물 업체의 주가가 뛰었다. 지난 6월 14~16일 죽염 생산‧유통 업체 인산가, 소금 제품 유통기업 보라티알, 샘표, 대상홀딩스, CJ씨푸드 등이 줄줄이 연고점을 기록했다.
초전도체 테마는 '3주 천하'에 그쳤고, 맥신 테마는 '3일 천하'로 끝났다. 초전도체 테마주인 서남, 덕성, 신성델타테크, 파워로직스, 모비스 등에 이어 맥신 테마주인 휴비스, 태경산업, 경동인베스트, 아모센스, 나인테크, 코닉오토메이션 등이 연고점 대비 20~66% 떨어졌다.
일부 기업은 주가 변동성이 커지자 연관성이 없다며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덕성은 초전도 기술과 관련한 사업을 영위하고 있지 않다고 공시했다. 휴비스 역시 해명 공시를 통해 자사의 맥신 관련 특허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연구와 관련성이 없다고 밝혔다.
관련 기업들의 단기, 장기 실적에도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실제로 연관도 별로 없는 종목들이 '테마'로 묶이며 묻지마 투자에 나서는 이들도 늘고 있다. 마음이 급한데 돈은 없으니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빚투 뿐이다.
올해 초 16조원대였던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지난 28일 20조1240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지난 17일에는 20조5573억원으로 지난해 6월 16일(20조6863억원) 이후 1년 2개월 만에 20조5000억원을 돌파했다.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투자자가 주식 투자를 위해 증권사로부터 자금을 빌린 뒤 변제를 마치지 않은 금액이다. 잔고가 늘었다는 건 레버리지(차입) 투자가 증가했다는 의미다.
초단기 외상인 미수거래도 늘었다. 미수거래는 개인 투자자가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사고 사흘 후 대금을 갚는 초단기 외상이다. 위탁매매 미수금은 지난달 28일 7734억원을 기록했다. 미수금은 미수거래 대금을 갚지 못해 생긴 일종의 외상값이다.
증권사는 투자자가 미수거래에 대해 2거래일 이내에 결제 대금을 내지 못하면 강제로 주식을 처분한다. 미수금 대비 실제 반대매매 금액은 지난 7월 4일 21.0%에 달하기도 했다. 이는 집계 이래 2008년 10월 27일(23%), 2009년 7월 14일(21.8%)에 이어 셋째로 큰 비중이다.
증권업계는 빚투 관리에 나섰다. 주요 테마주들을 대상으로 신용융자 보증금율 차등 확대, 위탁증거금률 상향 등의 조치를 시행 중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상승장에선 빚투가 활발하지만 증시가 조정되는 상황에서 빚투가 늘어나는 건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다"라면서 "순환매도 빠르고 테마주 투자자가 늘면서 증권사들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