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 휴가 때 가족과 베트남 다낭에 가려고 하는데, 숙소는 어느 곳이 좋아? 조금 저렴한 곳이면 좋을 것 같아." 직장인 김모씨가 여행업계에 종사하는 친구 이모씨에게 조언을 구한다. 그러자 이씨는 답한다. "패키지 아니지? FIT로 가는 거? 호텔 예약은 OTA가 가장 저렴한데······."
김씨는 갑자기 어리둥절해진다. 당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한 그는 다시 묻는다. "FIT?가 우리말로 뭐야? OTA는 또 무슨 뜻이야?" 이씨는 오히려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여행을 많이 다닌다고 해서 당연히 알아들을 줄 알았는데, 여행 애호가조차 이 단어를 낯설어한 것에 적잖이 놀랐다. 당황스러운 마음을 애써 감춘 이씨는 차근차근 설명한다. "FIT는 포린 인디펜던트 투어(Foreign Independent Tour)의 줄임말이야. 개별 여행객을 뜻하지. 온라인 트래블 에이전시(Online Travel Agency)를 줄여서 OTA로 불러. 우리말로 풀이하면 온라인 여행사 정도로 바꿔쓸 수 있어."
하지만 문제는 여행이 활발해진 만큼 여행 용어에 외국어와 신조어 역시 활개를 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여행상품에서 주로 쓰이는 여행용어, 또 정부와 업계, 언론이 자주 사용하는 여행용어는 어떤 것이 있을까. 또 이 용어를 우리말로 어떻게 바꾸면 좋을까. 지금부터 알아보기로 한다.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여행 용어는 '패키지 투어(package tour)'다. 여행을 예약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패키지 투어는 여행사가 항공과 숙박, 관광지, 쇼핑을 꾸러미처럼 묶어놓은 여행 상품이다. 패키지 대신 '묶음 여행' 또는 '기획 여행'으로 바꿀 수 있다.
패키지 투어의 반대말은 FIT다. 패키지 투어보다 더 낯설다. 앞서 언급했듯 FIT는 'Foreign Independent Tour'의 앞 글자를 따서 줄였다. 우리말로 '개별여행객' 또는 '자유여행객'으로 바꿀 수 있다.
에어텔(airtel) 역시 많이 쓴다. air와 hotel을 합친 말로, '항공 숙박 묶음 상품'으로 풀이하면 된다.
여행상품 세부내용을 읽다 보면 '픽업 샌딩 서비스 포함'이라는 문구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픽업(pickup)은 공항에서 시내 또는 숙소까지 이동을 돕는 것이고, 샌딩(sanding)은 시내 또는 숙소에서 공항까지 데려다주는 것이다. 단순히 이동 서비스 정도로 해도 무방하다.
동남아 묶음 여행 상품에는 대부분 '호핑투어(hopping tour)'가 포함됐다. hopping은 '한 발로 깡충깡충 뛴다'는 뜻이다. 이 단어가 대체 여행과 어떤 연관을 가질까. 여행지에서 한 발 뛰기라도 한다는 걸까, 그 의미를 쉽사리 짐작하기 어렵다.
풀이하자면 호핑투어는 배를 타고 섬과 섬을 돌다 정박한 후 낚시도 하고, 물속에 들어가서 시간을 보내는 등 다양한 물놀이 체험을 하는 여행 방법이다. 호핑투어는 차라리 '섬 관광'으로 바꿔 부르는 것이 더 친숙할 듯하다.
최근 들어 기사에서 종종 발견하게 되는 단어도 있다. 중국 정부가 한국행 단체 관광을 허용하자, 기사에서 '유커(游客)'라는 단어가 쉴새없이 등장하고 있다. '싼커(散客)'도 덩달아 눈에 띈다.
유커는 중국어로 여행객이나 관광객을 뜻하는 말이다. 한자 '유객'을 중국어 발음에 따라 표기한 것이다.
국내 언론들은 단체 여행객을 '유커'로, 개별여행객을 '싼커'로 구분해 표기하기도 한다. 싼커는 주로 1980~2000년대 초반 출생한 이들을 말한다.
물론 굳이 '유커'와 '싼커'라고 쓸 필요는 없다. 유커나 싼커 대신 '중국인 단체 여행객' 또는 '중국인 개별 여행객'으로 충분히 바꿀 수 있다. 국립국어원 역시 이렇게 바꿔 쓰는 것을 권장한다.
'팸 투어(fam tour)'는 정부와 업계에서 활발하게 사용 중인 용어다. '익숙하게 한다'는 뜻의 '퍼밀리어리제이션(familiarization)'을 줄인 '팸'에 '투어'를 합친 말이다. 정부 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여행업체가 신규 여행지와 여행 상품을 홍보하기 위해 기자와 작가, 협력사 등을 초청해 설명회를 하고 여행과 숙박 등 취재를 지원하는 형태로, 우리나라의 관광 매력을 외국에 알리기 위해 외신기자 등을 초청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 단어 역시 우리말로 충분히 바꿀 수 있다. 국립국어원이 권유하는 쉬운 우리말은 '사전 답사 여행' 또는 '초청 홍보 여행' 정도다.
OTA도 묶음여행에서 개별여행으로 여행 흐름이 변화하면서 새롭게 떠오른 용어다.
개별 여행자가 증가하면서 실제 대리점을 운영 중인 종합 여행사보다는 온라인 예약 대행사나 온라인 여행사를 통한 예약 비중이 껑충 뛰었다. 이처럼 온라인 여행사 이용이 증가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온라인 여행사를 OTA로 줄여 부르기 시작했다.
헷갈리는 여행 용어 중에는 '아웃바운드(outbound)'와 '인바운드(inbound)', 그리고 '인트라바운드(intrabound)'도 있다. 아웃바운드는 밖으로 나간다는 의미를 지니는데, 이 단어는 '내국인의 해외 관광'으로 쉽게 바꿀 수 있다.
인바운드는 외국인의 국내 관광이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방한 관광으로 바꿔쓰기도 한다. 인트라바운드는 '역내 관광'이다. 이 말도 어렵다면 '내국인의 국내 관광'으로 쓰면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과거 정부는 "대규모 인센티브(incentive) 관광객 유치에 성공했다"며 떠들썩하게 홍보한 적이 있었다. 이때 다수가 "도대체 인센티브 관광이 무엇이냐"고 물어왔다. 우리말로 바꾸면 '포상 관광'이다. 기업이 우수한 성과를 낸 임직원들에게 포상의 성격으로 제공하는 관광 형태다.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 수가 폭증하면서 '오버 투어리즘(over tourism)'이 화두가 된 적도 있었다. '오버 투어리즘'은 수용 가능한 범위를 넘어서는 사람들이 관광지에 몰려들면서 관광객이 도시를 점령하고 주민들의 삶을 침범하는 현상이다. '과잉 관광'으로 충분히 고칠 수 있다.
여행업계 한 관계자는 "여행 용어에 외국어, 외국어 줄임말, 신조어 등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잘 느끼지 못했는데 알게 됐다. 새삼 놀랍다"고 전했다.
이미 보편적으로 잘 쓰이는 단어를 굳이 우리말로 바꿀 필요가 있겠냐는 이도 상당수다.
하지만 우리말 전문가들은 "모든 변화는 저항을 받는다. 시나브로 젖어든 외국어와 신조어는 단순히 언어 파괴를 넘어 세대 간 격차를 부추기는 주범이 된다"고 지적하고, "익숙하게 사용 중인 외국어나 신조어를 우리말로 바꿔 부르는 것이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할 수밖에 없지만, 꾸준히 노력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익숙해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