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벌써 9개월이 지났다. 그러나 이를 둘러싼 책임 소재 공방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며, 그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를 계기로 이태원 참사를 둘러싼 갈등이 정리 국면으로 들어설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법적 책임과 관련해서는 조금씩 가닥이 잡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태원 참사는 흔히 세월호 사고와 비교되지만 유사점보다 차이점이 더 크다.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다는 점에서는 유사점이 있지만 사고의 원인과 수습 과정, 그리고 그와 관련한 책임에서는 차이점이 더 큰 것이다.
물론 길거리 사고에도 정부의 부실한 준비나 대응에 대한 책임론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고에 대해, 나아가 사기나 절도 등 모든 범죄행위에 대해 정부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정치적⋅도의적 책임과는 달리 법적 책임은 예견 가능성과 회피 가능성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법은 불가능한 것을 행하도록 요구할 수 없다. 그런데 참사 발생을 예견할 수 없었을 때 혹은 예견했더라도 이를 막을 수 없는 상황에서 관련자들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것이다. 여기서 예견 가능성은 막연하게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추측이 아니라 시간과 장소를 특정해서 사고 발생 가능성이 매우 높음을 알 수 있는 것이며, 회피 가능성은 이를 전제로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인력과 장비 등이 동원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에도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지하철 화재 등 대형 참사는 적지 않았지만 그에 대해 장관이나 대통령의 책임을 다툰 사례는 찾기 어렵다. 그런데 왜 이 장관에 대해서는 국회의 탄핵소추가 있었을까? 이태원 참사에 이 장관이 직접 관여한 점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다른 참사의 소관 부처 장관과 다른 점이 무엇일까?
그것은 참사 이후 이 장관의 부적절한 발언들이 큰 원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국회의 탄핵소추 사유에서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은 이 장관의 발언이었고, 일부 헌법재판관들은 이러한 발언이 국가공무원법상 품위유지의무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모든 헌법재판관들은 이러한 발언이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중대한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그러면 국회의원들은 이러한 점을 몰랐기 때문에 탄핵소추를 강행한 것일까? 아니면 그전부터 경찰국 신설 등 여러 사안에서 야당과 대립각을 세웠던 이 장관에 대한 유감이 야당 주도의 탄핵소추로 이어진 것일까? 정확한 것은 확인하기 어렵지만, 많은 국민들이 이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당시 민주당 조순형 대표가 “사과했더라면 탄핵소추까지 가지 않을 수 있었다”고 말했던 것을 연상하게 된다.
국회의 이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 당시 법조계에서는 기각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했다. 기존 헌법재판소 판례에서 제시된 탄핵 결정의 기준에 비추어 볼 때 이 장관에 대해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의 중대한 불법을 확인하기 어렵고 다른 대형 참사와도 형평성이 맞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야당 주도의 탄핵소추가 강행된 것은 윤석열 정부와 기싸움을 벌이는 성격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기각 결정이 내려진 이후 민주당의 입지는 오히려 위축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결과가 예견된 탄핵소추를 정치적 공세를 위해 무리하게 추진했다는 비판이 나오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결과도 예견하지 못할 정도로 민주당의 법적 판단이 무딘 것이냐는 비아냥도 나온다.
이재명 대표가 이 장관에 대해 탄핵 기각이 면죄부가 아니라고 한 것은 맞는 말이다. 단지 법적 책임이 없음을 확인한 것이지 정치적⋅도의적 책임까지 면제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말이 민주당 주도로 무리한 탄핵소추를 강행했고 그 결과가 헌법재판소의 기각 결정인 상황에서 나왔을 때 국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중장기적으로 볼 때 이 장관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에 대해 헌법재판관 전원일치로 기각 결정이 내려진 것은 탄핵소추를 주도한 민주당에는 뼈아픈 것이 될 수 있다. 임성근 전 판사에 대한 탄핵소추가 각하된 이후 이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가 또다시 기각된 것은 거야에 의한 탄핵소추의 오남용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비록 2004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처럼 후폭풍이 거세지는 않지만 이는 이 장관의 비중이 대통령에 비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였다면 또 어떻게 되었을까? 주목할 점은 2004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 지지율은 30%를 밑돌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당시 탄핵 후폭풍이 거셌던 것은 국회에 대한 불신이 그보다 훨씬 심각했기 때문이다.
이번 기각 결정으로 정치권에서도 분명히 깨달아야 할 점이 몇 가지 확인되었다. 탄핵심판은 법적 판단이므로 법적 기준에 따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결정에서도 그러헸듯이 재판관들의 성향과 무관하게- 만장일치 결정이 나올 수 있다. 그리고 탄핵 여부의 판단 기준은 대통령이나 장관이나 다르지 않다. 장관이라고 완화된 기준이 적용되지는 않는 것이다.
또한 무리한 탄핵소추에 대해서는 역풍의 우려가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의 후폭풍처럼은 아니더라도 임성근 전 판사와 이상민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의 역풍이 내년 총선에 변수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비상임위원 △ 경찰청 인권위원회 위원장 △전 국회 개헌특위·정개특위 등 자문위원 △전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