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 이후 미국의 가계부문 초과저축 규모가 감소한 반면 한국에선 초과저축 규모가 꾸준히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등과 달리 국내에서는 가계 초과저축 관련 현금·예금 비중이 확대된 데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 역시 팬데믹 이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가계에서 불어난 초과저축이 자칫 주택시장 등으로 유입될 경우 부동산가격 상승과 디레버리징 지연 등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국은행이 24일 발표한 '팬데믹 이후 가계 초과저축 분석 및 평가' 보고서를 통해 "(미국 등)주요국 소비가 지난해 이후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양호한 가운데 주택가격 조정폭도 과거 위기 당시보다 크지 않다"며 "초과저축 등에 따른 양호한 가계 재무상황이 그 원인 중 하나"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번 보고서에서 한은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방식으로 국내 가계에 축적된 초과저축액을 추정한 결과 총 101~129조원 안팎으로 분석됐다. 최소 추정치로 집계된 101조원의 경우 작년 말 기준 국내계정 저축액 추세치를, 최대치인 129조원은 가계동향조사 흑자율을 기반으로 산출한 것이다. 지난 2015년 이전까지 2~3%대를 유지하다 팬데믹 이전인 19년까지 평균 7.1%를 기록했던 국내 가계 저축률은 팬데믹이 본격화된 2020년 이후 들어 평균 10.7%로 크게 늘었다.
특히 국내 가계가 보유 중인 '초과저축' 상당부분은 예금과 주식, 펀드 등 유동성이 높은 형태로 보유 중인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 2020~2022년 중 국내 가계의 금융자산 증가폭은 1006조원으로 직전 3년여 간 증가폭(591조원)의 2배에 육박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처럼 현금과 예금 비중이 꾸준히 늘어난 가계 초과저축 움직임은 미국과 유럽 등 여타 주요국들과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조주연 한은 조사국 동향분석팀 과장은 "팬데믹 3년 간 국내 가계의 금융자산과 부채가 동시에 늘었는데 이는 가계가 초과저축을 부채상환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보다는 금융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국내 초과저축액이 해외 주요국과 같이 부채 상환에 활용되지 않은 배경에 대해 조 과장은 "대외수출여건이 악화되고 실물경제와 금융상황 등 불확실성이 높다보니 타 주요국 대비 추이를 관망하는 자세를 갖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이같은 가계 초과저축 확대 추세가 국내 금융시장에 긍정적인 영향과 부정적 영향으로 모두 작용할 여지가 높다고 봤다. 우선 초과저축이 유동성 높은 금융자산 형태로 보유되고 있는 만큼 향후 소비 충격 시 완충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주택 등 자산시장으로 유입될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조 과장은 "최근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는 가운데 대출과 함께 주택시장에 재접근하는 기회를 제공해 집값 상승과 가계 디레버리징(부채 축소) 지연 등 금융안정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향후 국내 가계 초과저축 규모 추이와 관련해서는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다며 구체적인 방향성 예측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조 과장은 "가계 저축률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어 초과저축 누증이 지속되진 않을 수 있다"면서도 "아직 불확실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