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렬의 제왕학] 우크라이나 32세 비밀병기가 이끄는 하이브리드 전쟁

2023-07-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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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렬 논설고문]




디지털미디어에 의한 하이브리드 전쟁(Hybrid Warfare)


“당신이 화성을 정복, 식민지화하려는 동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식민지로 점령하려 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우주로 보낸 로켓들이
성공적으로 지구로 귀환할 때, 러시아 로켓들은 우크라이나 민간인을 공격합니다. 스타링크 서비스를 지원해 러시아에 맞설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러시아군이 크루즈 미사일 등으로 우크라이나의 인터넷 서비스 폐쇄와 소셜미디어 차단을 노려 통신 등 기반시설을 정밀 타격해
통신네트워크부터 마비시키자 침공 이틀뒤인 지난해 2월26일, 우크라이나 디지털혁신부 장관 미하일로 페도로프가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페도로프는 우주 개발 기업 ‘스페이스X’의 위성 인터넷망인 ‘스타링크’(Starlink) CEO 일론 머스크에게 우크라이나에 스타링크 서비스 개시를 요청한 것이다. 머스크가 10시간 만에 요청을 승인, 서비스가 개시됨으로써 통신네트워크는 원상복구되었다. 지구라는 행성에서 우주여행 등 ‘인류의 화성 이주’라는 비현실적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도전하고 있는 머스크는 ‘골리앗 러시아에 맞선 다윗’이라는 우크라이나의 지원 요청에 즉각 화답한 것이다.

테슬러 전기자동차로 세계 최고 부자가 된 머스크는 트위터(twitter:트윗은 영어로 새가 지저귀는 소리 뜻하는 의성어)팔러워
1억4천여명을 거느린 세계적 인플루언서로 440억달러(약 63조원)에 “새가 자유를 얻었다(the bird is freed)”며 지난해 10월 트위터를 인수했다. 푸틴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를 걸고 한판 붙자”고 결투신청을 하는가하면 중국에서 셀럽으로 환대 받는 등 세계적 영향력을 가진 그는 ‘스타링크’로 우크라이나의 구세주가 되었다. 스타링크 서비스는 무게 227kg 소형 군집위성 4만여 개를 2027년까지 차례로 지구 500㎞ 상공 저궤도에 띄워 전 세계를 ‘초고속 인터넷’으로 촘촘히 연결해 빠른 인터넷 서비스망을 구축하는 프로젝트. 현재 약 4,000여개의 위성을 쏘아 2020년부터 서비스를 시작, 스타링크 덕분에 우크라이나군은 안정적인 통신 외에도 드론 등 전술 무기 전투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인터넷 디지털 시대에 벌어진 이번 전쟁에서 두 나라 모두 드론과 위성통신, AI 등을 통한 전술 전략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치열한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다. 첨단 과학기술 전환기를 맞아 전쟁개념과 전투방식 자체가 과거에 없었던 전혀 새로운 방식과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즉, ‘군사력 중심의 전쟁’에서 ‘미디어 중심의 하이브리드 전쟁(Hybrid Warfare)’으로, ‘보이는 전쟁’에서 ‘보이지 않는 전쟁’으로, ‘근거리 전투’에서 ‘원거리 전투’로 전쟁 패러다임이 바뀐 것이다.

2022년 기준, 미국 다음의 2위 군사 강국인 러시아의 하이브리드 전쟁위협과  회색지대 전략(Gray Zone Strategy:전략을 구사하는 국가가 자신의 의도를 드러내지 않고 점진적인 방식으로 안보 목표를 성취하려는 대부분의 전략적 행위)에 맞선 22위 수준의 우크라이나가 500여 일째 AI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분전(奮戰), 전황이 교착국면에 빠지면서 국제정치 구도도 지정학적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하이브리드(hybrid)’는 사전적으로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두 가지 이상의 요소를 뒤섞는 것’이란 의미로 ‘하이브리드전쟁’은 기존의 재래식 무기 등 군사적 수단과 더불어 다양한 비군사적 수단이 결합한 형태의 전쟁을 뜻한다. AI, 드론, 인공위성, 3D 등 다양한 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한 미래형 무기 등 다양한 무기가 혼재된 형태로, 군사력과 기술력, 정치력, 경제력을 총망라한 개념의 전쟁이다. 러시아는 냉전 시대 이후 미국의 독보적인 경제력과 군사력을 따라잡을 수 없어 테러행위, 범죄행위, 그리고 범죄적인 사이버 공격까지 포함하는 다양한 형태의 작전들이 동시에 복합적으로 전개되는 첨단 과학기술이 총동원된 하이테크 전쟁개념을 하이브리드전쟁으로 발전시켰다. 이후 하이브리드전 최강국 러시아는 2008년 조지아 침공과 2014년 크림반도 합병 때도 군사작전과 심리전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전술을 구사, 목적을 이뤘다.

디지털 시대의 하이브리드전쟁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번 전쟁의 패러다임을 바꾼 주인공은 페도로프 우크라이나 부총리 겸 디지털 혁신부장관. 올해 32세인 그는 우크라이나 남부 드네프르강 근처의 작은 마을 바시리브카 출신. 정계 입문 전 온라인 광고 캠페인 전문 디지털마케팅 회사를 창업한 그는 디지털 전문가로 2018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 당시 젤렌스키 선거캠프에서 디지털 분야 감독을 맡았다. 당시 41세인 코미디언 출신 배우 젤렌스키는 ‘인민의 종(Servant of the people)’이라는 시트콤에서 주연을 맡아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개혁정치를 펼치는 청렴한 대통령’의 모습을 연기하다가 2000만여명이 시청하는 선풍적 인기를 끌어 단숨에 대권후보가 되었다. 드라마 이름을 따 ‘인민의 종 당’을 창당하여 정치에 입문, 대통령선거에 출마, 신선하고 깨끗한 ‘변화하는 젊음의 상징’으로 포지셔닝된 젤린스키는 2019년 4월 결선투표에서 73.2%의 득표율로 현직 대통령 프로셴코를 50%이상 따돌리며 역대 우크라이나 대통령 가운데 가장 높은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부패한 정권을 비판한 고교 교사의 영상이 소셜미디어에서 급속하게 퍼지면서 우연히 대통령에 당선된다는 젤린스키가 주연 겸 제작한 ‘인민의 종’ 드라마가 현실이 된 것이다.

젤린스키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28세로 최연소 우크라이나 디지털혁신부 장관에 취임한 그는 사회 서비스의 디지털화를 추진하면서 정부 앱을 만들어 세금관리 등을 디지털화했다. 2021년에는 미국 실리콘 밸리를 방문해 팀 쿡(Tim Cook) 애플 CEO 등을 만나 친분을 쌓기도 했다.



하이브리드전쟁 시대 네트워크 전장 첨단무기 된 디지털 미디어



페도로프가 국제적 인물로 부상하게 된 것은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 침공 직후인 2월26일 트위터에 “우리는 IT 군대를 만들고 있다. 디지털 인재가 필요하다”라는 글을 올리면서부터. 개전 초 인터넷 서비스와 휴대전화 통신망 파괴로 사이버 시스템과 커뮤니케이션이 마비되자 페도로프가 주도하는 디지털혁신부는 30만 명에 가까운 해커 등 IT 전문 자원봉사자들을 ‘우크라이나 IT 군대(IT ARMY of Ukraine)’라는 텔레그램 채널의 해커 그룹에 참여시켜 정예 사이버전 전담부대를 창설했다. 이들은 러시아 중요기관 웹사이트와 온라인 서비스를 파괴하는 등 보복에 나섰다. 2003년 온라인 커뮤니티 포챈(4chan)에서 ‘익명(匿名:Anonymous)’이란 이름으로 시작, 3,000명 정도로 추정되는 국제 해커 조직인 어나니머스와도 연계, 22년 2월 25일 러시아 국방부 데이터베이스를 해킹했고, 러시아 정부의 웹사이트와 관영 언론에 대한 디도스 공격도 감행했다.

페도로프의 디지털혁신부는 ‘E-에너미(E-Enemy)’로 알려진 텔레그렘 채팅봇을 개발, 국민 누구나 주변 러시아군의 동태를 보고할 수 있도록 했다. 에너미에 접속하면, 채팅봇이 사용자에게 러시아 군대 유형과 규모, 목격 장소, 접촉 시간 등 자세한 정보를 요구한다. 현재 30만 명 이상이 서비스에 가입, E-에너미로 우크라이나 전국에서 사진, 비디오로 촬영된 러시아군의 움직임과 위치의 다양한 정보가 수집된다. 이렇게 취득한 정보를 각종 군사작전에 활용하고 있으며, 수도 키이우를 놓고 격전을 벌일 당시 많은 정보가 수집돼 러시아군을 패퇴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디지털혁신부가 운영하는 전자정부 플랫폼은 개전 초 정부의 전자지갑을 만들어 6,000만 달러 상당의 암호화폐도 기부받았다. 러시아는 이번 전쟁에 20여만 명에 달하는 IT 전문가, 지식인들이 러시아를 탈출했지만, 우크라이나는 ‘30만여명의 IT 군대’를 창설하는 등, MZ세대인 페도로프가 국방의 한 축을 담당해 우크라이나가 버티고 있다는 평가다. “우크라이나의 최연소 장관인 미하일로 페도로프는 기술과 암호화폐, 그리고 소셜미디어를 현대판 전쟁 무기로 탈바꿈시켰다.”(, 2022.3.12.)라는 보도가 빈말이 아닌 셈이다.

페도로프는 또 전 세계 빅테크 기업 50여 곳의 CEO들을 상대로 이메일과 트위터 등으로 세계 경제에서 러시아를 분리하고 글로벌 인터넷에서 러시아를 차단하기 위한 반(反)러 제재 동참 캠페인을 전개했다.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빅 포’로 일컬어지는 구글과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의 머리글자를 딴 GAFA 등 미국 정보기술(IT) 공룡 업체와 넷플릭스, 인텔, 페이팔 등 빅테크 기업들에게 러시아에서 사업 중단을 촉구한 것이다. 그의 요청을 수용한 전 세계 빅테크 들도 우크라이나 편에 섰다. 애플은 러시아에서 제품 판매를 중단했고, 메타(옛 페이스북)와 트위터, 넷플릭스·유튜브가 러시아 국영 매체를 통한 정치적 선전 차단에 나서는가 하면 스페이스X·에어비앤비는 통신망이나 피란민 숙소 제공 등 우크라이나를 적극 지원하고 나섰다. 구글은 우크라이나인의 안전을 위해 구글 지도 일부 기능을 비활성화시켰다.

미국 빅테크 기업과 천문학적 비용의 무기지원 등으로 버티고 있는 젤린스키 대통령에게 “끝까지 간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다짐대로 이 전쟁을 통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갈등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얽히고설킨 강대국들의 힘겨루기도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 네오콘이 추진한 30년 프로젝트의 정점이다.”는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학 교수 지적대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미국 대리전쟁으로 평가되고 있다. 브레진스키가 책 <거대한 체스판>에서 주장했듯이 이들 네오콘에게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핵심이익이 걸린 사활적 지역이다.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은 미국의 글로벌 패권유지의 핵심 요소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진보 네오콘의 대리전이라는 진보학자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전쟁사에서 변곡점 가져온 딥 페이크가 사용된 최초 전쟁

페도로프는 해커(Hacker)와 행동주의자(Activist)의 합성어로 인터넷을 통한 컴퓨터 해킹을 투쟁 수단으로 사용하는 새로운 형태의 행동주의자, 즉, 불의(不義)에 저항하는 정치 사회적 신념을 알리기 위해 해킹하는 사회 활동가인 ‘핵티비스트’를 통해 지난해 2월26일에는 러시아 국영방송을 해킹, 우크라이나 국기가 휘날리고 국가가 울려 퍼지게 했다. 3월 2일에는 러시아 군사위성을 해킹해 러시아 전쟁지도부와 전선사령부와의 실시간 소통을 봉쇄했다.

“2022년에는 현대 IT 기술이 탱크와 다연장 로켓, 미사일에 최고의 대응책이 될 것”이라던 페도로프의 전략은 적중,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여준 ‘디지털 봉쇄(digital blockade)’ 전략은 ”현대전쟁은 핵전쟁(Nuclear War)일 것”이라는 그동안의 생각도 바꿨다. 즉 현대전쟁은 디지털미디어에 의한 하이브리드전쟁’이라는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전쟁 초 젤린스키 대통령이 화면에 등장, “무기를 내려놓아라!”고 말하는, 마치 러시아에 항복 선언을 하는 듯한 가짜영상이 나돌았다. AI 즉 인공지능의 영상합성조작용 ‘딥 페이크(deep fake)’ 기술이 동원된 것이다.

적군 병사를 인식하는 안면인식 소프트웨어에서부터 군수지원 효과를 높이기 위한 머신러닝(machine learning)도 적극 활용되고 있다. 인간의 눈으로 안면인식을 할 때 발생하는 오류 가능성은 6%지만,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가 개발한 안면인식 소프트웨어 오류 발생률은 1%에 불과하다. 특히 저궤도 위성 스타링크는 데이터를 원격에서 공유, 스타링크 터미널을 이용하여 적군의 위치를 손바닥 보듯 손쉽게 확인하고 공격해 지상 정보 기반 작전의 미래를 통째로 변화시킨 네트워크전의 진수(眞髓)를 보여줬다.

지난해 3월 27일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우크라이나에 파병된 러시아군이 전쟁터에서 놀라울 정도의 빈도로 스마트폰이나 PTT 단말기(Push To Talk Radio) 무전기를 사용해 교신하고 있다”며, 감청이나 도청에 쉽게 노출되는 통신을 사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개전 이후 러시아군 장성 7명이 우크라이나군에 사살된 것도 스마트폰 위치 정보 노출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경적필패(輕敵必敗)라는 병법의 기본을 무시하고, 속전속결로 수도 키이우를 점령해 우크라이나의 항복을 받아낼 것으로 예상했던 러시아군이 통신보안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아 자충수(自充手)를 둔 셈이다.

병력이나 인구 등 현저한 열세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침공에 결사 항전하는 동귀어진(同歸於盡)으로 죽기를 결심하면 살 것이라는
필사즉생(必死則生)의 각오로 싸우는 디지털로 무장한 우크라이나의 저항 의지는 러시아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하이브리드전의
원조(元祖)인 러시아가 마치 컴퓨터에서 워게임 하듯 진행하는 우크라이나의 고도화된 하이브리드전에 고전하고 있는 현실은
상징적이다. 이번 전쟁은 70대의 ‘아날로그 세대’ 푸틴(1952년생)과 ‘디지털 세대’인 40대 젤린스키(1978년 생), 30대 페도로프(1991년생) 대결로 국가지도자 리더십과 국민의 디지털미디어 역량이 곧 국력이자 국방력인 시대를 경험하는 인류 전쟁사의 변곡점(inflection points)으로 기록될 것이다. 국방안보전략, 금융시스템, 에너지, 테러행위, 식량산업, 과학기술 등 국정의 모든 분야가 상호 연결 융합된 하이브리드 전쟁시대에 6800여 명의 해커를 보유, 내밀한 국방 기밀까지 탈취하는 하이브리드전쟁 실행 능력이 막강한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도 적절하고 효과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겠다

 ​박종렬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철학과 ▷중앙대 정치학 박사 ▷동아방송·신동아 기자 ▷EBS 이사 ▷연합통신 이사 ▷언론중재위원 ▷가천대 신방과 명예교수 ▷가천대 CEO아카데미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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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날로그 세대’ vs ‘디지털 세대’의 대결
    “국가지도자 리더십”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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