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이 ‘법화경’을 받아 지녀 읽고 외우거나 해설하고 옮겨 쓰면, 이 공덕으로 눈·귀·코·혀·몸·뜻이 다 청정하리라.”
14세기 후반 불교 문화를 알 수 있는 소중한 고려 사경(寫經)이 국내로 돌아왔다.
‘묘법연화경 권제6’은 감색(紺色) 종이에 경전의 내용을 금 또는 은가루를 아교풀에 개어 만든 안료인 금·은니(金·銀泥)로 필사하여 절첩본(折帖本)으로 만든 고려 사경(寫經)으로, 지난해 6월 소장자가 재단에 매도 의사를 밝히면서 처음 존재가 확인되었다. 이후 문화재청의 행정지원과 수차례에 걸친 재단의 면밀한 조사와 협상을 거쳐 올해 3월 국내로 들여오는 데 성공했다.
접었을 때 세로 27.6cm, 가로 9.5cm인 ‘묘법연화경 권제6’은 펼치면 가로 10m70cm로 길어진다.
'묘법연화경'은 부처가 되는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있음을 기본사상으로 한 경전이다. 총 7권 중 제6권에 해당하는 '묘법연화경 권제6'은 묘법연화경 전파의 중요성과 공양 실천에 대한 강조를 주 내용으로 한다.
사경은 불교 경전을 옮겨 적은 경전을 의미하는데, 본래 불교 교리를 전파하기 위해 제작되었으나 점차 발원(發願)을 통해 공덕(功德)을 쌓는 방편으로 여겨져 널리 제작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고려시대에 사경 제작이 성행하였으며, 국가 기관인 사경원(寫經院)을 통해 국가의 안녕을 빌거나 개인적 차원에서 돌아가신 부모의 극락왕생 등을 바라는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국내·외에는 150여 점의 사경이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학계 전문가들은 이 가운데 60여 점이 일본, 미국 등 해외에 흩어져 있다고 보고 있다.
배영일 마곡사 성보박물관장은 15일 “발원문이 없어 정확한 제작년도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변상도의 구성이나 필력 등을 볼 때 당대 최고 수준의 사경승(사경을 전문으로 한 승려)이 그렸으리라 추정된다”라며 “1377년 제작된 '묘법연화경 권제6', 1385년 제작된 '묘법연화경 권제4' 등 다른 사경 유물과 비교해 보면 전반적인 패턴이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구성을 살펴보면, 표지에는 4개의 금니로 그려진 연꽃이 수직으로 배치되었고, 넝쿨무늬가 은니로 여백 없이 그려졌으며, 그 위로 사각의 칸을 두어 경전의 제목을 적었다.
경전의 내용을 압축하여 묘사한 변상도(變相圖)는 4개의 화면(畫面)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림은 당시 불교 문화를 더욱 직접적으로 알 수 있게 한다.
화면 우측에는 묘법연화경을 설법하는 석가모니불과 그 권속이 그려져 있으며, 좌측에는 사람들이 성내며 돌을 던져도 ‘그대들은 모두 성불하리라’고 말하는 상불경보살품(常不輕菩薩品/제20품)의 장면, 타오르는 화염 속에 자신의 몸을 바쳐 공양하는 약왕보살본사품(藥王菩薩本事品/제23품)의 장면 등 ‘묘법연화경 권제6’의 내용 가운데 가장 극적인 장면들이 담겨있다.
특히 화면 우측의 설법 장면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화면을 선으로 빼곡하게 채운 점 등에서 14세기 후반 고려 사경의 특징이 드러난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70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음에도 보존 상태가 양호해 앞으로 다양한 연구와 전시 등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향후 고려 사경과 관련한 연구가 확장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