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면 이달 내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보조금 제외 대상인 '해외우려단체'(FEOC) 세부지침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면서 국내 배터리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중국계 원소재 업체 다수가 FEOC로 선정되면 대중 의존도가 높은 국내 배터리 기업들에 큰 악재가 될 수 있다. 이에 최근 한·일 배터리 동맹이 부상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4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일 동맹이 급부상하고 있다. 일본 분리막 기업 도레이는 지난 1일 한국 생산법인을 한국 자회사 산하로 변경한다고 밝혔다. 도레이의 한국 자회사에 힘을 실어주면서 한국 배터리 기업들과의 협력을 본격화하려는 시도다.
도레이 한국 자회사 '도레이첨단소재'는 도레이의 생산법인인 도레이배터리세퍼레이터필름한국(도레이BSF한국)의 지분 70%를 인수한다. 도레이BSF한국은 기존에 도레이가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었다. 인수 계약이 체결되면 나머지 30%는 도레이 본사 지분으로 유지한다.
분리막은 배터리의 4가지 핵심 물질 중 하나로 배터리의 화재를 방지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전 세계 분리막 시장은 중국이 휩쓸고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분리막 시장(공급액 기준)은 중국 점유율이 56%로 과반을 넘는다. 한국과 일본은 각각 23%, 19%씩이었다. 중국 공급망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경제 관계에서 벗어나야 하는 등 어려움에 직면한 한·일이 공동 대응에 나선 이유다.
배터리 산업에선 일본과 중국이 강력한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있었다. 2011년 출범한 중국 CATL이 갖고 있는 원천 기술이 일본 전자 회사 TDK에서 나왔을 만큼 양국의 협업 역사는 길다. 이는 토요타, 혼다 등 굵직한 완성차 업체가 CATL과 오랜 파트너십을 맺어온 배경이기도 하다. 닛산 역시 과거 자회사이기도 한 중국 배터리 업체 엔비전AESC와 깊은 배터리 협업 관계를 갖고 있다.
양국의 밀월 관계에 한국이 끼기 시작한 건 IRA가 중국 업계를 사정권 안으로 들이게 되면서다. 지난달 포스코그룹과 일본 혼다는 포괄적인 전기차 동맹을 맺기로 했다. 양사는 배터리 양극재, 음극재와 같은 주요 배터리 재료를 조달하는 데 힘을 합친 것이다.
올해 1월 발표된 LG에너지솔루션과 일본 혼다의 미국 배터리 합작법인 'L-H 배터리 컴퍼니(가칭)' 설립도 같은 맥락이다. 업계에서는 한국에 배타적인 일본 업체가 LG에너지솔루션 등 한국 업체에 먼저 러브콜을 보낸 것을 두고 '이례적인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IRA를 통한 미국의 견제에도 단기간에 배터리 산업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것은 쉽지 않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나온다. 중국이 세계 최대 핵심 광물 보유국인 데다, 핵심 광물의 처리·가공 공정이 중국에서 대부분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코발트 채굴량의 45%, 리튬 채굴량의 28%, 니켈 채굴량의 6%, 망간 채굴량의 5%를 각각 중국이 통제하고 있다고 추정되고 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해 최근에도 중국과의 배터리 협업도 이어지고 있다. 실제 포스코퓨처엠은 세계 최대의 코발트 생산 기업인 중국 화유코발트와 합작사를 설립하고 1조2000억원을 투자해 2027년까지 포항에 배터리용 양극재 중간소재인 전구체와 고순도 니켈 원료 생산라인을 추진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중국 리튬화합물 제조 선두업체 야화와 아프리카 모로코 지역에서의 수산화리튬 생산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중국 의존도 줄이기가 쉽지 않지만 최근 일본과의 동맹이 부상하고 있다"며 "당장은 큰 성과를 내기 어렵겠지만 장기적으로 탈중국 공급망을 재편하기 위한 과정 중 하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