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장님 하신 말 무슨 뜻인가요"…지자체 '엉망' 재판 준비에 변호사들 '답답'

2023-06-18 11:42
  • 글자크기 설정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A변호사는 최근 법정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한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공판을 끝내고 나온 뒤 지자체 측 대리인들이 "오늘 재판장이 말한 내용이 정확히 무슨 말인지 설명해 줄 수 있겠냐"고 물어봤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지자체 측에서는 변호사가 아닌 소속 공무원들이 재판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A변호사는 그날 재판 내용과 앞으로 준비해야 할 것들에 대해 시 공무원들에게 하나하나 설명해 주고 나서야 법원을 나설 수 있었다.

시민 의식이 높아지면서 지자체를 상대로 한 소송이 과거에 비해 늘어나고 있지만 지자체가 자문을 받을 만한 변호사가 없어 비전문가인 소속 공무원들에게 재판을 맡기는 등 대응이 '엉망'이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지자체가 '열정 페이'에 가까운 낮은 보수를 주고 변호사에게 자문을 받으려고 하다 보니 아무도 자문변호사를 맡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18일 아주경제 취재에 따르면 지자체가 자문·고문 변호사에게 지급하는 자문료는 한 달에 약 30만원에 불과하다. 1990년대 이후 30년간 거의 변화가 없는 수준이다. 여기에 자문 건수를 '무제한'으로 두면서 20~30개씩 밀려드는 자문에 비명을 지르는 변호사들도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자체가 사실상 변호사들에게 이른바 열정 페이를 강요하는 셈이다. 

보수는 열악한데 업무량은 많다 보니 변호사들이 자문·고문 변호사에 임명됐다가도 사임하는 사례가 많다. 소송을 당한 지자체로서는 자문을 구할 법률 전문가가 없다 보니 외부 법무법인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형 로펌에 사건을 맡기자니 예산이 부담되고 작은 로펌에 사건을 맡겼다가 패소하면 예산만 날리게 될까 봐 결국 재판은 지자체 소속 공무원 몫이 된다.

문제는 비전문가인 공무원이 지자체 소송대리인으로 참여하게 되면 재판 진행이 원활하게 이뤄지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변호사들은 담당공무원이 인사이동으로 자주 바뀌는 데다 기본적인 서면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재판 진행이 더뎌진다고 하소연한다.

A변호사는 "제출하는 서면 자체가 부실하니까 상대 당사자 대리인으로서는 어떻게 법적 대응을 해야 할지 더 막막하다"며 "재판 진행 중에도 지자체 측이 사안을 이해하지 못하니 재판장이 '다음 기일까지 알아 오라'고 할 때가 많다. 재판이 지연되는 건 기본"이라고 토로했다.

법조계에선 지자체가 민사·행정소송 등에 전문적으로 대응하려면 자문·고문 변호사 임금을 정상화하고 양질의 법률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지자체 자문변호사 경험이 있는 B변호사는 "자문 변호사를 할 때 지자체 공무원들이 자잘한 질문까지 쉴 새 없이 보내왔다"며 "아무리 공익 실현을 위해 자문 변호사를 했다지만 본업까지 차질이 생기는데 누가 월 30만원을 받고 이 일을 할 수 있겠냐"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자체가 소속 공무원을 대리인으로 썼다가 재판에서 지면 결국 시민들 혈세만 낭비하게 된다"며 "처음부터 법률전문가에게 정당한 보수를 주고 재판을 맡기는 게 오히려 지자체 예산을 아끼는 길"이라고 말였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