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준의 함께꿈] 경제논리에 묻힌 교육정책 …'비전'이 안 보인다

2023-05-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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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정부 1년 (4)

안상준 교수
[안상준 교수]


  
현 정부가 교육 개혁을 진행 중이다. 그런데 연금 개혁과 노동 개혁에 비해 조용하다. 개혁의 기치는 든 것 같은데 방향과 내용이 국민에게 뚜렷하게 전달되지 않고 공론화 기미도 없고 언론도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 집권당인 국민의힘도 의지가 없기는 별반 다르지 않다. 지금까지 집권당 이름으로 제시된 교육 개혁의 청사진은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교육부로 복귀한 이주호 장관에게 교육 개혁의 전권이 맡겨진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런 추정은 대통령 자신이 교육에 그다지 관심이 많지 않고 교육계에 대한 신뢰 또한 그리 높지 않은 탓도 있다. 또한 연금·노동 개혁처럼 대상을 특정하고 대결적 관점에서 정책 성과를 밀어붙이는 대통령의 스타일을 고려할 때 교육은 너무 포괄적이고 다양한 상대와 마주하는 부담 때문에 장관에게 일임했을 개연성도 다분하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각급 학교는 경쟁체제 강화에 떨고 있고, 대학은 미증유의 정책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여기저기서 국립대학 통폐합이 논의되고, 이제는 사립대학끼리도 통합과 연합의 다양한 형태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하지 않은 듯 뭔가 불안한 변화의 조짐이 느껴진다.
2023년 연초에 교육부 업무 계획이 공개되었을 때 필자는 교육 개혁을 거론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밝힌 바 있다.(아주경제 2023년 1월 26일) 업무 계획은 ‘교육 개혁, 국민 재도약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스스로 부여했지만 교육정책의 내용은 빈약하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교육정책이 철저히 입신양명의 수단이나 국가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보는 도구적 교육관에 기초한다. 교육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성찰이나 미래 사회에 대한 깊은 고민은 보이지 않고 다른 부문과 균형을 맞추고 다른 부문을 위하여 필요한 정책들이 눈에 띈다.
그런 맥락에서 이주호 장관은 자신의 도구주의적 교육관과 소신을 펼치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를 잡은 듯하다. 실제로 장관이 발표한 2023년 교육부 업무 추진계획을 주의 깊게 검토하면 이명박 정부 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으로서 추진했던 정책의 시즌2와 크게 다르지 않다. 추진계획은 크게 대통령 교육 공약에 맞게 학생 맞춤, 가정 맞춤, 지역 맞춤, 산업·사회맞춤으로 짜여 있다.
학생 맞춤은 디지털 교과서 도입, 학습 데이터 분석 및 수업 활용, 에듀테크 활용 방안 등 디지털 기반 교육 혁신을 추진한다. 미래 교육을 위한 외형적 변화의 추진을 막을 이유는 없지만 교육계는 이미 교실혁명을 꿈꾼 적이 있다. 그런데 TV나 프로젝션 TV 및 컴퓨터를 활용하여 과연 교육 문제를 해결하고 교육력 향상을 꾀했는지 냉정히 평가할 필요가 있다. 일부는 획일화 교육과 교육 불평등을 심화했다고 비판한다. 외형적인 변화가 학교 교육력의 제고를 담보하지는 못한다. 입시 경쟁 교육이 격화하고 사교육이 번창하고 오히려 학교 교육이 사교육을 모방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근본적인 해결책 없이 학교 교육력 향상은 기대하기 어렵고, 도리어 공교육에 대한 불신만 키울 우려가 다분하다.
학교 다양화 정책의 재시도는 정책의 퇴행을 확연하게 보여준다. 과거 장관이 도입한 특목고와 자사고는 초·중등 학교마저 서열을 매겼고 일반고를 황폐하게 하는 원인이었다. 이제는 여기에 더해서 ‘교육자유특구’를 조성하고 학교 설립·운영 규제를 풀겠다고 한다. 도구적 교육관에 기초한 경쟁 위주 교육정책은 어쩌면 고교 입시 부활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교사 혁신 지원체제는 장관의 의지가 가장 강한 역점 사업이다. 그는 신자유주의적 경쟁 논리의 신봉자로서 교육전문대학원 도입, 생애주기별 맞춤형 교원 역량 함양 추진, 교원 인사 제도 개선, 새로운 교원 수급 계획 마련 등을 제시한다. 과연 우리 공교육의 교사 수준과 교육력이 그렇게 우려스러운가? 교사 입문도 지옥 같은 경쟁체제를 도입하면 과연 우수한 인재가 교직에 들어올까? 또 교사의 소신 있는 교육 활동이 가능할까? 이런 질문에 대한 객관적이고 냉정한 결론을 내린 후 추진하는 게 합리적이다. 그에 앞서 필자에게는 학급당 학생 수 감축이나 교사의 자율성 확대 방안을 통해서 즐겁고 효과적인 교실을 가꾸는 작업이 시급해 보인다.
교육계는 미래에 필요한 필수 역량 함양도 강조하면서 기초학력 보장을 위해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제도를 도입하려는 모순을 성토한다. 한편에서는 디지털 교육 확대, 기초학력 보장 및 에듀테크를 활용한 개별 학습 지원을 추진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일제고사를 도입하여 학생을 입시지옥으로 몰아넣는 구시대적 발상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지역 맞춤은 고등교육 분야에 거대한 변화를 초래할 조짐을 보인다. ‘규제 없는 과감한 지원으로 지역을 살리는 교육’을 표방하며 과감한 규제 혁신 권한 이양 및 대학 구조 개혁을 추진한다. 그에 따라 대학 정원·학사·재정 운영의 규제 제거, 사학법인의 재산 처분 유연화, 경제자유구역 내 교육기관 설립 승인 등 권한 지방 이양, 사립대학 구조 개선 지원 등 다양한 정책이 제시되었다. 겉으로는 자율과 경쟁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대학의 구조조정 정책과 다름없다.
문제는 실효성과 방법이다. 교육정책에 대한 우리 국민의 관심은 대학 입시에서 멈춘다. 내 자식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그만이고, 좋은 대학이 무엇이고 자식이 대학에서 어떤 교육을 받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대학 서열이 존재하고 학벌이 자식의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서 구조조정 정책은 대학 서열화 의식을 강화하고, 초·중등 교육은 입시 경쟁체제에 질식하고, 출세를 보장하는 학문과 소위 기초학문 분야의 양극화는 심화한다.
방법론의 오류는 사학재단 관련 부문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요체는 과감한 규제 혁신·권한 이양 및 대학 구조 개혁이다. 이를 위하여 사립대학의 설립과 운영에 관한 4대 요건, 즉 교사(校舍), 교지(校地), 교원(敎員), 교육용 기본재산에 관한 각종 기준이 완화되었다. 자율화라는 외피를 쓰고 있지만 이제 대학법인들은 아마도 사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규제 완화 조항들을 이용해도 무방하다. 이런 정책들이 사립대 재정 개선에 도움을 줄지도 의문이지만 교육 환경의 질 저하는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예를 들어 겸임교수나 초빙교수 등 비정년트랙 교수 비중이 전체 교원 가운데 5분의 1에서 3분의 1로 확대되면 대학의 정년트랙 교원 비중은 그만큼 줄어들고 그에 비례해 대학교육의 질적 저하가 예상된다.
나아가 사학법인 재산 처분 유연화로 경쟁력 없는 대학이나 재단도 구조조정 시 잔여 재산을 보전하는 법률적 근거가 최근에 제시되었다. 부실 운영에 대한 책임을 묻는 대신 장려금을 챙겨주는 조치여서 ‘먹튀 재단’ 속출이 예상된다. ‘좋은 대학’을 육성할 의지보다는 ‘나쁜 대학’을 망신 주는 정책이 전체 고등교육 향상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알 길이 없다. 이런 정책도 개혁으로 치부하는 교육부의 작태가 한심하고 부끄럽다.
지역 혁신 중심의 대학지원체제(RISE)는 성공할 수 있을까? 그것은 지자체로 대학 관리 권한을 이양하고, 지역 특성화 대학 육성 지원에 초점이 맞춰진다. 그런데 정치권력, 경제권력 및 문화권력 모두가 중앙에 집중되고 이에 조응하여 수도권 상위 대학 중심의 서열 체제가 성립한 상태에서 실효적인 개선책과 대응책은 보이지 않는다. 국립대 관리·권한 이양의 법적 근거와 이양 권한의 범위, 지방정부와 대학의 협력 관계를 설정하는 법적 근거, 지방정부가 대학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 및 고등교육 재정의 확보 등 모두 대학의 생존과 향후 정체성에 결부되는 문제들이다.
오히려 교육부는 대학의 경쟁체제를 부추기며 폐교의 위기로 몰린 대학을 옥죈다. 글로컬 대학30 육성사업은 광역 시도의 대학 선별화 작업과 다름없다. 지역 내 한두 개 특정 대학에 5년간 1000억원씩 지원한다고 한다. 지역 내 어느 대학이 선정될지 보나마나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여기서 소외되는 대학은 도 산하의 도립대로 편입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데 대학의 주인인 사립대 법인이 소유권을 쉽게 놓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학생 충원과 대학 등록금 인상이 충족되지 않는 한 사립대학은 몹시 곤혹스러운 처지로 몰리면서 좀비 대학으로 남게 될 개연성이 높다. 한편 중소 도시의 국립대학은 어쩔 수 없이 도립화를 수용하면서 국립대 지위를 잃게 될 우려가 크다. 또한 사회 모든 부문의 동시적인 개혁 없이 권력의 지역 분산이나 지역의 자율성 확대를 추진하면 지역의 전체적인 성장보다 지역 간 불평등 심화를 초래할 우려가 크다.
오늘 대한민국은 다시 리부팅의 시간을 맞고 있다. 교육 분야에서 대통령은 자율과 창의로 만드는 담대한 미래’를 열겠다고 공언했다. 대통령 자신은 자율과 창의를 바탕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자율을 극도로 혐오하고, 창의를 상상할 수 없는 대통령의 언행은 교육정책에서도 억지와 퇴행을 반복한다.
기본적으로 대통령의 교육철학은 빈약하고 도구적 사고에 갇혀 있다. 반도체학과가 필요하면 설치하면 되고, 인문학 분야의 취직이 어려우면 폐지하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교육부는 과학기술 인재를 공급하는 역할을 할 때만 의미가 있다.” 그의 발언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교육은 개인적으로는 입신양명의 도구이고 국가적으로는 경제 발전의 수단이다. 디지털이나 정보 과학기술의 교육 현장 도입, 자율화 정책의 확산, 그리고 첨단산업 인재 양성 등 기능적인 정책이 있을 뿐 교육의 주체들이 정책에서 사라지고 근본적인 교육체제의 변화를 꾀하는 비전이 보이지 않는 이유다.
2022년 교육과정 개정 작업은 교육당국의 무모함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곳에는 절차상 하자가 난무했고, 내용상 퇴행이 현저했다. 교육과정 정책연구진의 최종 보고서가 교육부에 의해서 자의적으로 수정되고, 공청회는 의견 수렴은커녕 극단적인 대결과 파행의 현장으로 변질되었다. 더욱이 교육과정 총론에 생태전환교육과 노동교육을 명시하라는 학계와 노동계 요구는 이번에도 무시되었고, 보수 정부의 고질병처럼 역사과 교육과정에서 ‘민주주의’ 개념을 둘러싼 논쟁이 재연되었다.
다시 교육이 바로 서야 한다.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끌어올린 에너지는 교육열이었다. 이제는 그 열기가 너무 뜨거워 학생을 태우고 사회 전체를 고통으로 몰아넣을 지경이다. 시대는 변하고 사회는 진화한다. 인구 감소, 지구적 저성장 경제기조, 기술혁명과 노동 위기, 불평등의 극대화, 지역사회의 소멸, 기후 정의, 환경 오염, 새로운 에너지원, 국제적 평화연대의 약화 등 우리 앞에는 전대미문의 도전 과제들이 놓여 있다.
누가 이 위기를 극복할 것인가? 아니, 이 위기를 극복할 인재를 어떻게 양성할 것인가? 정부는 유·초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미래 세대가 맞이하는 사회에 맞는 인재를 배출하는 선진국형 교육체제를 수립할 시대적 사명을 실천해야 한다. 여전히 경제논리에 종속된 교육철학과 그에 기반한 교육정책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각자도생을 추구하는 개인의 무한한 교육투자를 당연시하는 분위기를 타파하고, 국가의 미래를 개척하는 대승적 차원에서 교육의 공공성을 제고하고 국가의 투자를 아끼지 않는 전향적인 자세가 절실하게 요구된다. 




△연세대 사학과 졸업 △독일 보쿰 루르대학(Ruhr Univ. Bochum)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학위 취득 △컬럼비아대 해리먼 연구소 방문교수 △2021년 5월부터 한국 대학체제의 개혁 방안을 모색하는 ‘삼각지연구팀’에 참여, <대학법체제정비>(2021)와 <고등교육 패러다임 대전환을 위한 대학정책>(근간) 공저 △교수신문 기획연재 '대학법과 대학의 미래'의 책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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