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가 5‧18 기념일을 맞아 SNS에 올린 사진 한 장이 43번째 맞은 기념일을 뜨겁게 달구었다. 보훈처는 지난 18일 ‘5·18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주제로 1980년 당시 광주 금남로와 전남도청 모습이 담긴 사진 여러 장을 공식 SNS 계정에 게재했다. 이 가운데 한 사진에 무장한 계엄군과 경찰 쪽에서 광주 시민들을 바라보는 시선의 장면이 담겨있었다. 버스에 올라탄 광주 시민들은 멀리 보이고, 계엄군과 전경이 이들을 가득 포위한 모습이 사진의 3분의 2 가량을 차지했다.
이 사진이 알려지자 논란이 불거졌다. 광주 시민이 아니라 계엄군의 시선에서 바라본 사진이라는 비판이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계엄군이 주인공인 이런 사진을 굳이 2023년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국가보훈처의 5·18 기념 이미지로 우리가 봐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이동학 전 민주당 청년 최고위원도 "국가보훈처 공식 계정에 올라온 사진의 시선, 사진의 앞뒤가 바뀌어야 맞는다"며 "누구 입장에서 바라봐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온라인상에서도 "진압군이 민주화운동을 하는 줄 알았다", "자유민주주의를 군인이 지켰느냐"는 야유와 비판이 현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층을 중심으로 급속히 쏟아져 나왔다.
논란이 확산되자 화들짝 놀란 보훈처는 사진이 들어간 게시물을 삭제하고 해명 자료를 냈다. “5·18 민주화운동의 의미를 재조명하려 했으나 관련 첫 사진 이미지가 계엄군 시각에서 바라보는 사진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 있었다"며 "5·18민주화 운동 유가족이나 한 분의 시민이라도 불편한 마음이 드신다면 결코 좋은 의미를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보훈처는 "시민들의 뜻을 충분히 존중하는데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겠다"며 자신들의 세심하지 못했음을 인정하기도 했다.
보훈처는 문제의 사진을 내렸지만 SNS에서의 비난은 계속되었고 여당인 국민의힘에서는 야당을 향한 반격에 나섰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해당 사진은 지난 2019년 문재인 정부 청와대가 ‘오늘의 한 장’이라는 주제로 올린 배경 사진과 똑같은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당 안병길 의원은 "민주당 말대로라면 문재인 (전) 대통령이 계엄군의 편에서 계엄군을 주인공으로 삼았단 말입니까"라며 "마치 5·18 민주화운동을 자신들의 정치적 향유물로 여기며 정치적 선전·선동의 도구로 삼는 행위야말로 오월 정신을 오염시키는 구태"라고 반박했다. 이철규 사무총장은 문재인 정부 청와대 트위터 계정에서 사용된 이미지를 페이스북에 올리며 "민주당의 내로남불 DNA는 고질병"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를 갖고 "보수정부는 학살의 후예”(이재명 민주당 대표)라거나 현 집권세력이 5·18 정신을 부정한다는 비난까지 하는 일각의 흐름은 과도해 보인다. 물론 보수정당 세력 안팎에서 5·18 정신을 훼손하는 망언들이 그동안 거듭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부적절한 발언을 해온 당사자들이 보수정치 쪽을 대표하는 사람들도 아니고, 지금은 보수정당 내에서도 그런 망언들에 대한 경각심을 갖는 모습이다. 2020년 김종인 비대위원장 시절에는 광주 5·18 민주묘지에 가서 무릎꿇고 참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번 5·18 기념일을 맞아 윤석열 대통령은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기념식에 2년 연속 참석하여 기념사를 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번 기념사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윤 대통령의 경우 대선 후보 시절부터 5·18에 대해서는 분명한 입장을 보여온 것이 사실이다. 국민의힘도 이번 5·18을 맞아 광주에서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열기도 하고, 소속 의원들의 기념식 참석율이 민주당 보다도 높은 83%에 달했던 것으로 파악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5·18 정신을 함께 계승하겠다는 보수정부 세력의 입장은 그 자체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옳은 일이다. 과거의 부적절한 언행들을 반성하고 “5·18 정신이 훼손 및 퇴색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진정성 있게 호남에 울림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고 다짐하는데도 굳이 ‘학살세력의 후예’라며 이들을 배척할 이유는 없다. 정치적으로 편을 갈라 상대 편은 5·18 정신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게 하고 ‘우리들만의 전유물’로 여기는 모습이 5·18 정신의 계승은 아닐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대학원 사회학 박사 ▷전 경희대 사이버대학교 NGO학과 외래교수 ▷전 한림대 사회학과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