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선 칼럼] 느닷없는 '친일 횟집' 논란…선동에 의해 이성이 뒷전인 사회

2023-04-11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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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 시사평론가]

최근 느닷없는 ‘친일 횟집’ 논란이 불거졌다. 지난 6일 윤석열 대통령이 부산에서 가진 ‘부산 엑스포 만찬’을 둘러싼 것이다. 이날 부산 벡스코 컨벤션센터에서 중앙지방협력회의를 주재한 윤 대통령은 국제박람회기구 실사단 환송 만찬에 잠시 들른 후 광역단체장, 일부 국무위원 및 국회의원들과 함께 해운대구에 있는 한 횟집에서 만찬을 가졌다. 논란 거리는 이 횟집의 상호가 ‘일광수산횟집’이라는 점에서 생겨났다. ‘더 탐사’라는 유튜브 매체가 ‘친일’ 의혹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이 매체가 제기한 의혹은 이런 것들이었다. “1. 부산시 기장군 일광면(2022년 일광읍으로 승격)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행정구역 2. 건진법사의 소속 종단은 '일광조계종' 3. 윤의 40년 지기 측근인 동해시 황 사장의 건물명은 '일광' 4. 그 황 사장이 갖고 있는 절 중 하나는 '일본 조동종' 5. 일광은 영어로 선라이즈, 욱일기의 상징.” 그리고 이 매체 소속 강모 기자에게 욕을 퍼부은 서울경찰청장 외삼촌의 하동 암자의 현판도 일광이라는 주장까지 덧붙였다. 이런 의혹을 제기한 매체가 겨냥한 것이 무엇인지는 충분히 알 수 있다. 만찬 자리가 있은 식당은 상호로 미루어보아 ‘친일’ 횟집인데, 굳이 그곳을 선택한 배경을 추궁하는 것이다.

굳이 이 음식점 사장님에게서 ‘일광’이라는 이름을 넣은 이유를 직접 듣지 않더라도 그런 주장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가는 충분히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이런 해괴한 주장은 온라인을 통해 대대적으로 유포되고 이번에도 온라인과 SNS 세상이 떠들썩한 광경을 보였다. 급기야는 이 횟집을 겨냥해 근거없는 비방의 후기를 남기는가 하면 별점을 떨어뜨리는 ‘별점테러’까지 빚어졌다. "사장이 석열이하고 친한 듯", "굥 묻은 곳", "여기가 그 유명한 용산파가 회식한 곳이냐", "일광? 일본의 빛이냐" 같이 입에 담기도 민망한 비방들이 후기를 빙자해서 올라왔다. 이 업소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단지 ‘일광’이라는 이름이 상호에 들어가 있다는 이유, 그리고 대통령이 참석한 만찬 예약을 잡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공격을 당하고 피해를 입은 것이다.

‘더 탐사’라는 매체의 주장이 사실 무근임은 여러 반박들을 접하면 쉽게 판단이 된다. 이 횟집이 위치한 부산 해운대갑을 지역구로 둔 하태경 의원은 “뚱딴지같이 친일몰이”라며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친일파이니 이 식당에서 먹었다고. 정말 황당하고 역겹다”고 그런 의혹을 제기한 사람들을 비난했다. “게다가 건진법사가 속해 있다는 ‘일광조계종’은 기장군 일광과는 상관없다”며 “일광조계종의 본사인 충주 일광사에서 따온 이름”이라는 반박도 했다.

여당인 국민의힘 김예령 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명백한 가짜 뉴스”라며 “일광식당이란 상호는 부산 기장군에 위치한 ‘일광읍’에서 유래했다. 일광읍은 일광해수욕장이 있는 푸른 바닷가 마을”이라고 설명했다. “‘일광읍’이라는 이름은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행정구역이라는 더 탐사의 엉터리 해석과 달리,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일광산’에서 유래됐다”는 것이 김 대변인의 설명이었다. 온라인에서의 논란이 불거지자 대통령실 또한 "본질을 외면하고 식당 이름을 문제 삼아 반일 선동까지 하려는 움직임”이라고 비판했다.

굳이 이런 구구한 설명과 반박이 없어도 ‘더 탐사’ 같은 매체가 제기하는 그런 의혹들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가는 이미 겪을 만큼 겪은 일이다. 대선정국 때 뜨거웠던 ‘쥴리’나 ‘동거설’ 마타도어도 이 매체의 전신인 ‘서울의소리’가 했던 것이고, 역시 허위로 판명된 ‘청담동 바’ 의혹도 이들이 주장해서 더불어민주당의 김의겸 의원이 넘겨받았던 것이다. 문제는 그런 상황을 반복해서 겪었으면서도 이런 마타도어와 선동이 제기될 때마다 동조하고 확산시키는 팬덤층들이 변함없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나치의 괴벨스가 “나에게 딱 한 문장만 달라.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고 했듯이, 조작해낸 내용을 갖고 반대세력을 흔들려는 공격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민주당은 이 횟집의 이름에 관한 논란에는 가세하지 않고 거리를 두었던 점이다. 대신 민주당은 “술자리 논란은 윤석열 정부가 권력놀이에 취해 있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게 한다"면서 이 만찬에 대한 비판은 신랄하게 했다. 그날 자리에서 술이 건배주만 오갔는지, 그 이상이었는지를 대통령실과 민주당 양측의 얘기를 들으며 따지다 보면 ‘이거 뭐하는 건가’ 하는 자괴감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으니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부산 엑스포 유치’라는 과제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고, 가십성 논란들만 이어지는 광경들이 정상적이지는 않아 보인다.

이 얘기는 윤석열 정부가 추구하는 대일 외교와 한·일관계의 방향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것과는 별개의 것이다. 정부가 강제징용 해법을 발표하고 윤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해서 한·일정상회담을 가졌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일방적인 양보에 비해 일본 정부는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했다. 한·일관계의 개선은 필요하지만, 이런 방식의 관계개선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여론이 우세하다. 앞으로 한·일관계의 추이에 대해서는 우리가 계속 지켜보면서 힘을 실어줄 것은 실어주고 비판할 것은 비판할 일이다.

그러나 비판을 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이번에 등장한 ‘일광’ 논란처럼 어처구니 없는 마타도어를 등에 업는 방식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비판은 정책의 내용에 대해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이루어져야지, 국민감정을 선동하는 식의 비이성적인 방식을 앞세워서는 안 된다. 문재인 정부 시절 ‘죽창가’가 상징했듯이, 국민을 ‘친일과 반일’의 이분법으로 가르는 일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심각한 분열과 갈등을 낳았는지는 이미 경험한 일이다.

패트리샤 로버츠-밀러 교수는 <선동은 쉽고 민주주의는 어렵다>는 책에서 “정치 문화에서 선동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것은 우리의 문제고, 문제의 해결 역시 우리에게 달려있다”고 말한다. 저급한 선동이 번번이 위세를 떨치는 현실은 우리의 문제이다. 몇 줄 짜리 선동에 의해 이성이 뒷전으로 밀려나는 사회에서는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 이성의 힘으로 선동을 다스리고 제압하는 일은 공동체를 살아가는 우리 시민들의 몫이다.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대학원 사회학 박사 ▷전 경희대 사이버대학교 NGO학과 외래교수 ▷전 한림대 사회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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