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 유례없는 美中 기술패권 경쟁 …尹대통령이 풀 '워싱턴 방정식'

2023-04-26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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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논설위원장]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는 한반도의 복잡해진 안보 정세가 만들어 내는 ‘부담의 연립방정식’을 풀기 위한 고난도 행보다. 우리의 안보 정세를 가장 크게 흔드는 미·중 대결 구도는 훨씬 세련된 격돌로 진화하면서 서로를 난적(難敵) 으로 만들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발표한 새 국가안보전략에서 안보정책의 요체로 외교·정보·군사·경제의 약자를 나열한 DIME(다임)을 강조하며 ‘국력의 모든 요소를 망라해 전략적 경쟁자를 물리치겠다’고 적시했다. 미국 대통령의 평일 집무는 ‘인텔리전스 브리핑’이라고 부르는 정보분석 보고로 시작된다. 중앙정보국(CIA) 등이 국제 정세를 설명한다.
윤 대통령은 방미 기간 중 미국의 반중국 정서와 대중(對中) 전략을 강화하고 있는 ‘워싱턴 컨센서스’를 제대로 파악하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성공했다고 평가받을 것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현장 점검에서 미·중 대결의 근원이 ‘테크노 헤게모니 경쟁’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이는 대통령뿐 아니라 정치인, 관료, 기업인들 모두가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DIME을 하나로 엮는 끈은 바로 기술이다. 반도체에서 양자컴퓨팅, AI(인공지능)의 한 영역인 챗GPT 등에 이르기까지 기술의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기술패권 경쟁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미·중 양국이 내놓고 있는 기술 중심의 산업정책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미국, 신산업정책 위한 R&D 정책 강화
기술 경쟁력과 상업화, 공급망 강화를 통한 제조업 부활 겨냥

 
바이든 행정부는 경제 안보 관점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반도체와 배터리 등 공급망을 강화하고, 국내 제조업을 부활시키기 위한 신산업정책을 뒷받침하는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2024회계연도 백악관 과학기술정책국(OSTP)의 R&D 우선 항목과 연방정부 연구개발 예산안, 미국의 신산업정책을 추진하는 핵심 기관인 국립표준연구소(NIST)의 예산안에서 잘 나타난다. 미국은 R&D 정책에 경제 안보, 중요 기술, 기술 경쟁력과 상업화는 물론 기후변화와 청정 에너지를 포함시켜 R&D를 산업정책 실현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이는 기초연구와 응용연구를 중시한 종래의 관행에서 벗어나 중요 기술의 개발과 상업화를 가속화함으로써 미래 산업과 제조업에서 미국의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3개 반도체·과학법 수행기관에 많은 연구자금 배분
NIST, 제조업 공급망 강화를 위한 제조 프로그램 예산 증액

 
구체적으로 연방정부는 2024회계연도 예산안에 과학·기술·혁신 관련 연구개발 투자로는 사상 최대 규모인 2100억 달러를 편성했다. 이 예산안은 특히 국립과학재단(NSF), 에너지부 과학국, NIST 등 3개 반도체·과학법 수행기관에 많은 연구 자금을 배분하고, 첨단 제조업, AI, 생명공학, 반도체, 양자과학 등 중요·신흥 기술에 대한 R&D 투자를 확대함으로써 바이든 대통령의 신산업정책을 뒷받침하고 있다.

NIST 예산 규모는 전년보다 35억8500만 달러(29%) 늘어났다. NIST는 제조업 공급망 강화를 위한 제조 프로그램과 중요 노동력 개발 프로그램 예산을 많이 늘렸다. 중요·신흥 기술 연구(2000만 달러)와 국내 공급망 강화(800만 달러)를 비롯해 미국 전역의 16개 첨단 제조연구소를 지원하기 위한 민관 협력 제조 네트워크 프로그램인 ‘매뉴팩처링 USA’ 예산은 6030만 달러, 중소 제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제조 확장 파트너십(MEP)’ 예산은 1억90만 달러 늘어났다.
 

 



중국, 과학기술 행정체제 개편 단행
미국과 기술패권 대처···과학기술 자립 가속화 겨냥

 
중국은 미국과 벌이고 있는 기술패권 경쟁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과학기술 행정체제를 개편했다. 그 골자는 과학기술부의 기능을 축소하고, 당 중앙위에 중앙과학기술위원회를 신설하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지난달 5∼13일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심의·의결을 거친 뒤 같은 달 16일 관계기관들에 이 같은 내용의 ‘당·국가기구 개혁 방안’을 통지했다. 이 같은 조치는 시진핑 국가주석 주도 아래 과학기술과 산업정책에 대한 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강화함으로써 기술패권 경쟁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과학기술 자립을 가속화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과학기술부 기능 축소···소관 업무 타 부처 대거 이관
중앙과학기술위원회 신설···당 중앙의 컨트롤타워


그동안 과학기술부가 맡았던 소관 업무들이 공업정보화부, 농업농촌부, 생태환경부를 포함한 타 부처로 대거 이관된다. 대표적인 사례로 국가자주혁신모델구, 국가하이테크산업개발구 등 과학기술원구 건설, 과학기술서비스 지도, 기술시장과 기술중개조직 발전 등 업무를 공업정보화부로 이관하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일부 과학기술부 소속 기관도 타 부처로 이관된다. 중국농촌기술개발센터는 농업농촌부로, 중국생물기술발전센터는 국가위생건강위원회로 넘어간다.
중국 공산당은 과학기술부의 자금 배분 관련 역할도 조정했다. 과학기술부가 개별 과학연구 프로젝트의 심사·관리에 참여하지 않도록 하는 한편 주로 연구기금전문관리기관의 운용관리를 감독하도록 했다. 그 대신 과학연구 프로젝트 전체 실시 상황에 대한 감독·검사, 과학연구 성과의 평가를 강화하도록 규정했다.
과학기술부 기능 축소와 함께 별도의 중앙당 조직으로서 중앙과학기술위원회가 신설된다. 중앙과기위원회는 과학기술 활동에 관한 당중앙위원회의 통일된 지도력을 강화하고, 국가혁신시스템의 건설과 과학기술시스템의 개혁을 집중적·통일적으로 계획·조정·추진하는 컨트롤타워로서 당 중앙의 정책·의사결정기구다. 중앙과기위원회 사무국은 과학기술부가 맡는다.
이 같은 중앙과기위원회 설립은 “과학기술의 자립자강(自立自强)을 촉진하기 위한 당 중앙의 의지와 결심을 나타낸 것”이라고 위하이보(于海波) 베이징사범대학 교수는 설명했다.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회는 존속되며, 공산당 중앙의 중대한 과학기술정책의 결정을 맡아 책임을 지는 한편 중앙과학기술위원회에 대한 보고 의무를 가지게 된다. 국무원 산하 국가과학기술윤리위원회는 중앙과학기술위원회 산하의 학술적인 전문성을 가진 전문가위원회로 바뀐다.
 


국가데이터국 설립···디지털 경제를 효율적으로 추진
 
디지털 경제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산하에 국가데이터국이 새로 설립된다. 국가데이터국은 중앙네트워크보안·정보화위원회에서 디지털 중국건설계획 수립, 공공서비스와 사회 거버넌스 정보화 추진 등 업무를 넘겨받는다. 또한 국가발전개혁위원회에서 디지털 이코노미 발전을 향한 조정과 디지털 인프라 배치 추진 등 업무도 넘겨받는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은 이렇듯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다시 요약하자면 미국은 민주·공화 양당의 정권을 거치면서도 제조혁신을 핵심 국가전략 과제로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나아가 반도체·과학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근거한 거액 보조금 지급을 견인차로 반도체와 배터리를 포함한 주요 제조업 부활을 내세운 신산업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신산업정책을 뒷받침하는 2024회계연도 과학·기술·혁신 R&D 예산안은 제조강국인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에 비해 중국의 과학기술 행정체제 개편은 미국의 기술패권과 관련한 압력에 맞서기 위한 과학기술 자립을 겨냥하고 있다. 과학기술부의 많은 업무를 공업정보화부를 포함한 다른 부처로 넘긴 것은 과학기술을 효율적으로 산업정책에 반영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사령탑 역할을 하는 중앙과학기술위원회는 과학기술 정책과 산업정책의 연계를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는 중국이 왜 과학기술 행정체제를 전폭적으로 개편했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윤 대통령의 방미를 계기로 한국은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 속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미국 중심의 공급망 구축에 협조해야 하는 처지다. 중국은 이러한 미국과 한국의 움직임에 반발하면서 과학기술 자립으로 그 돌파구를 찾고 있다. 이러한 형국에서 생명선을 찾아야 하는 한국은 혁신과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한 제조강국 건설에 미래를 걸어야 한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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