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순 칼럼] '아무나 흔들 수 있는 나라' 대한민국

2023-04-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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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




1993년 우리나라에서 소위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지금까지 7번 정권이 바뀌며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각 정권은 나름 국가전략을 개발하고 이에 기반한 외교안보 정책을 추진해왔다. 그리고 북한 핵위기도 김영삼 정부 첫해 발생한 후 벌써 30년이 지났고 각 정권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의 외교안보 역량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우리의 외교안보 환경은 30년 전보다 나아졌다기보다 오히려 더욱 불안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남북한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험악한 강대강 대치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새로이 형성되는 신냉전 구도 속으로 한반도가 빨려 들어가면서 이 땅에서 전쟁 발발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북핵문제와 관련해서도 한반도의 핵위기가 해결되기는커녕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이제 북한은 소형 핵탄두를 자신이 보유한 다양한 투발수단에 탑재하여 폭발시키는 시험을 진행하고 있어 사실상 핵무기 실전배치가 임박한 형국이다. 바야흐로 우리 안보는 백척간두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역대 정권이 다들 남북한 관계를 개선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자원을 집중 투입하였고 미.중 관계도 잘 관리해보겠다는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두 분야 모두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상황은 악화일로의 길을 가고 있다. 각 정권 초기에는 다들 낙관적인 전망과 국민들의 기대 속에 외교안보 공약과 정책을 발표했다. 그렇지만 결국 각 정권이 제대로 된 성과도 남기지 못한 채 오히려 다음 정권에 더 부담만 남기고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이 잘못되어 국민들을 안심시키기는커녕 모든 국민들이 불안에 떨고 자신의 안위를 각자가 궁리해야 한다는 생각마저 갖게 만들까?
 
물론 큰 원인은 외부에 존재하는데 첫째 미·중간 패권경쟁이 격화되면서 양측에 끼인 우리나라로서는 운신의 폭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북한이 긴 협상과정에도 불구하고 핵을 포기하려는 의사가 처음부터 희박하였다는 데 기인한다.
 
그렇지만 이런 외부적 원인에다 우리 내부적 원인이 가세하여 상황이 더 어렵게 되었다는 게 솔직한 진단이다. 우리 내부에서 외교안보정책을 다루는 핵심세력들이 변화하는 국제정세를 보는 눈과 우리 국가정체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 이런 현상이 초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외교·안보정책을 너무 주관적 판단과 이념적 정향성 위에 두고 추진하였다는 점도 이런 난맥상을 초래한 한 원인이다. 그리고 대외정책을 정권교체 시마다 급선회하는 것도 모자라 한 정권의 집권 중반기에 갑자기 급발진하는 현상을 보인 것도 그 원인의 하나다.
 
먼저 우리는 미·중간의 패권경쟁이 15년여 전부터 본격 태동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애써 무시해왔다. 우리가 미·중 양측으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란 판단하에 전략적 모호성을 국가전략으로 너무 오래 유지해왔다. 게다가 우리가 한때는 미·중 양측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을 수 있는 나라라고 착각하기도 했다. 또한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의 협조를 얻을 수 있다고 여겼다. 게다가 중국의 거대시장에 의존해서 계속 성장해야 하기에 중국에 저자세를 할 수밖에 없고 안보는 미국에 의존해야 하니 미국의 눈치를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략적 모호성이란 전략은 양측을 다 만족시키기보다는 양측으로부터 다 의혹의 눈길을 받게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정권이 바뀔 때마다 더욱 미·중 양국 요구에 순응하는 방식으로 양측과 관계를 무마해보려는 경향을 보였다.

그리고 점차 험난해지는 국제정세의 파고 속에서 한반도가 분열되어 있으면 우리 민족은 외세가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전략적 수단이 되는 셈이고 우리는 그들의 대결구도 속에 곤마로 전락하게 되고 만다. 그리고 이 냉전구도에 편입되면 우리 민족은 반도국가로서 지정학적 정체성을 회복하지 못하고 통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지게 된다. 이로 인해 우리가 치러야 할 기회비용은 엄청나게 늘어나게 된다. 남북한 화해·협력 정책이 이런 지정학적이고 전략적 관점에서 추진되기보다는 이념적 정향성에 따라 북한을 너무 믿거나 너무 불신하는 양 극단을 오갔다. 그래서 정책 일관성은커녕 정책 혼선만 불러일으키고 우리 내부갈등만 증폭시켰다.
 
그리고 우리가 대외정책을 다루는 방식도 허술한 점이 많다는 점을 자인해야 한다. 협상에 있어서는 상대의 의도를 정확히 간파하고 이에 대응하는 전략을 치밀하게 작성하여 협상에 임해야 한다. 그런데 정권의 이념적 정향성에 따라 상대를 너무 주관적으로 재단한 선입견을 가지고 달려들 때가 많았다. 또한 상대의 선의를 너무 기대하는 희망적 사고를 가지고 협상에 임하여 우리의 희망과 거리가 먼 결과를 초래하는 서투름도 자주 보였다.
 
그리고 모든 나라들은 상대국을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영향을 미치고 이용한다는 것이 국제정치의 기초상식임에도 우리는 종종 상대가 영원히 우리 편이 되어 우리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믿음 속에 협상을 하기도 하였다. 정확한 진의를 파악하고 우리의 실존적 요구를 전달하는 것까지도 상대에 대한 무례로 여기고 이를 자제하는 억제심리를 우리 스스로 발동하는 게 관행이 되다시피했다.
 
이런 내부적 요인이 가세하면서 우리는 지난 30년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외교·안보정책은 좌우로 가변성의 진폭을 심하게 보여왔다. 그 결과 우리의 정책은 외국으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고 국론도 극명하게 양분화되어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가 아니라 ‘아무나 흔들 수 있는 나라’가 되어버렸다.
 
앞으로 더욱 험난해지는 국제정세 속에서 이런 진폭이 많고 정체성이 결핍된 정책을 계속 구사할 경우 우리는 국제사회에서 더 고립되고 한반도는 전쟁의 가능성 속으로 몽유병 환자처럼 걸어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역사에서 우리가 몇 번의 국난을 당했을 때 우리 선조들도 변화하는 외부정세를 제대로 파악 못하고 내부분열로 인하여 진폭이 심한 정책을 구사하다가 그런 변을 당했다.
 
국가경영도 기업경영과 마찬가지로 기존 투자분이 아까워도 장기적 경기전망이 어두울 때는 부진한 부문은 과감히 손절매하는 용단이 필요하다. 그리고 새로운 사업구도를 만들 때 새로운 상대에게 확실한 신뢰를 심어주는 대신 상대로부터 기회비용을 벌충할 수 있는 이익보장을 확실히 받아내어야 한다.
 
그리고 쉽게 손절매할 수 없는 경우라면 사업구조를 과감히 재조정해야 한다.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거래를 계속할 경우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란 판단이 서면 상대에게 구조조정에 협력하든지 거래중단을 택하든지를 선택하라고 요구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중요한 사업방식 변경은 소유주가 갑자기 혼자서 내릴 것이 아니라 이사회를 통해 깊이 있는 검토를 하고 이사회 구성원 모두의 합의를 바탕으로 정해져야 한다. 국가경영, 특히 외교안보정책은 상대가 있는 위험한 게임이다. 국가경영은 예로부터 작은 생선 굽듯이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고 했는데 5년마다 이를 계속 뒤집어버리면 생선 살이 남아날 수 없다. 어려움을 겪고도 이를 알아채지 못하면 어리석은 자이고 일을 당하고 고치면 보통사람이라 했고 일이 닥치기 전에 미리 예견하고 바꾸면 지혜로운 자라 했다. 우리는 이 셋 중 어디에 속하는가?
 


 이백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 대사 △국회의장 외교특임대사 △주호주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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