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인도네시아를 인도와 혼동하는 경우를 우리 주변에서 접할 수 있었다. 그랬기에 인도네시아를 연구하려는 필자에게 이슬람이 아닌 불교에 관해 이야기하는 지인을 만날 수 있었다. 2000년대 접어들어 인도네시아와 교류가 확대됨에 따라 이런 착각은 사라졌지만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발리가 인도네시아에 속한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여전히 가능하다.
인도네시아를 직간접적으로 접해 보았거나 그에 대해 관심을 가진 한국인 사이에서는 공유되는 이미지가 있는 듯하다. 풍부한 잠재력을 가진 기회의 땅으로 인도네시아를 바라보는 시각이 그것이다. 이 시각은 특히 지난 정부 때 신남방정책을 추진하면서 뚜렷하게 표출되었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기회의 땅이라는 이미지가 최근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필자가 인도네시아를 처음 연구한 1990년대 초에도 인도네시아의 잠재력을 거론하는 경우를 자주 접할 수 있었다. 1990년을 전후로 하여 정치적 안정 속에서 급격한 경제성장을 기록했던 인도네시아를 ‘아시아의 네 마리 용’에 빗대 ‘아시아의 호랑이’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인도네시아를 연구하며 자주 현지를 방문했고, 지인들과 식사하면서 자료를 구했다. 만났던 사람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어떠하든 식당에서 음식값을 계산한 쪽은 항상 필자였다. 한국과의 경제적 격차 때문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음식값을 내겠다고 고집하는 지인이 나타났다. 최근 들어 이런 경우는 더욱 빈번해졌을 뿐 아니라 우리 기준으로도 적지 않은 금액을 선뜻 지불하는 상황 역시 발생했다. 인도네시아 사람의 경제적 삶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체감하도록 하는 모습이었다.
또 다른 경험은 한국 방문과 연관된다. 2010년대 중반까지 필자가 알던 인도네시아 사람 중 한국 기관의 초대 없이 한국을 방문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그랬기에 현지에서 만난 사람에게 한국에 놀러 오라는 공수표를 날리는 일에 큰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상황이 급변해서 코로나 이전 몇 년 동안 한국을 방문한 인도네시아 사람과 매년 몇 차례씩 관광지를 돌아다녀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들 중 다수는 현지 소속 기관에서 여행비를 받았지만 일부는 자부담 여행객이었다. 저비용항공사 취항으로 인해 항공료가 낮아졌다 하더라도 체류비를 생각해보면 해외여행의 경제적 부담을 이들이 이전과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은 인도네시아의 꾸준한 경제성장과 연관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5% 이상의 경제성장은 코로나 기간을 제외하고 지속되었다. 15년 이상 이어진 ‘고도’ 성장은 과거 경험해보지 못한 현상으로서 더욱 많은 일반인이 경제성장의 과실을 누리며 라이프스타일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지속적인 고도 성장에 대한 과도한 의미 부여가 적절한 것만은 아니다. 높은 성장을 지속했다고 해보았자 1인당 국민소득은 4000달러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2003년 1000달러, 2008년 2000달러, 2019년 4000달러 돌파라는 국민소득 추이는 여러 평가를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이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지역 간 격차가 고려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2019년 1인당 소득이 가장 높은 자카르타의 소득은 1만9000달러에 달했던 반면 가장 낮은 지역은 2000달러 수준이었다. 지역적 편차에 더해 2억8000만여 명이라는 인구 역시 감안해야 한다. 전체 인구 중 20%라 하더라도 우리 인구보다 많기 때문이다.
기회의 땅으로서 인도네시아의 잠재력이 무엇인지를 여러 각도에서 검토할 수 있다. 요즘 유행하는 ‘챗GPT’에 이를 묻자 풍부한 자연 자원, 인적 자원, 그리고 전략적 위치가 거론되었다. 알기 쉽게 정리한 내용이지만 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 세 측면 모두 오랫동안 인도네시아를 기회의 땅으로 여기도록 만든 요소였기 때문이다.
‘땅에 지팡이를 꽂아도 몇 년 안에 아름드리 나무가 된다’는 인도네시아 속담이 있다. 인도네시아 자연환경이 얼마나 비옥한지를 비유하는 말이다. 고무, 야자수, 커피, 목재 등 세계 생산량 최상위권에 놓인 인도네시아 농산물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니켈, 석탄, 주석, 구리, 보크사이트 등 생산도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상위권에 속하며 원유와 천연가스 매장량 역시 풍부하다. 인도네시아 인구가 2억8000만여 명으로 세계 4위에 자리매김함은 인적 자원의 풍부함을, 인도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인 말라카 해협이 인도네시아에 위치하고 있음은 지정학적 중요성을 요약한다.
풍부한 자원과 전략적 위치는 인도네시아를 오랫동안 기회의 땅으로 바라보도록 만든 요인이었다. 최근 변화를 체감하면서 이러한 잠재력의 실현 가능성을 보다 낙관적으로 평가하게 되었고, 무엇인가 중요한 변화가 이 기회의 땅에서 전개되고 있지 않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잠재력의 세 측면 중 먼저 거론할 영역은 인적 자원이다. 2010년 이전까지 대학 교육을 받은 인도네시아 사람은 전체 인구 중 10% 미만이었던 반면 최근 대학 진학률은 30%에 근접한다. 이는 소득 증가가 교육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쳤고 인적 자원의 풍부함을 단순한 인구 규모가 아니라 높은 교육을 받은 양질의 노동력으로 전환하여 설명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자원에서 나타난 변화는 자연 자원의 풍부함 그 자체가 아니라 관리 방식이다. 2010년대 이후 인도네시아는 실질적 민주주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절차적 차원의 민주주의를 공고히 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민주화된 정부하에서 자원 민족주의 경향이 강화되었고 1차 가공을 거치지 않은 원자재의 수출을 금지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이 정책은 자연 자원에 부가가치를 추가함으로써 더욱 효율적으로 이를 활용하려는 의도를 지녔다. 국내외적 상황으로 인해 정책 수행이 원활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언론에도 보도된 것처럼 국내 가격 상승을 명분으로 야자유 수출 금지라는 강수를 정부가 둘 수 있게 하는 배경이 되었다. 이 과정을 거치며 자원의 풍부함은 관리되는 자원의 풍부함으로 전환되고 있으며 그 과실이 더욱 많은 사람에게 배분될 기반이 확대되었다.
2010년대 초반 현지의 정책 입안자들 사이에서는 머지않은 미래에 인도네시아가 세계 10대 경제 강국에 진입하리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 뉴스를 들으며 필자는 상당히 냉소적인 태도를 취했다. 우리도 성취하지 못한 수준을 목표로 설정하는 일이 언감생심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가 오류가 아님을 보여줄 근거는 지금도 존재한다. 2022년 세계은행 자료를 보면 1조6000억 달러에 이르는 우리 GDP는 세계 10위권에 해당하는 반면 인도네시아는 15위권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10년 혹은 20년 이후 경제 상황을 예측한 자료에서는 다른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인도네시아 경제는 세계 10위권에 진입하지만 우리는 그보다 두세 단계 아래에 놓이리라는 것이다.
예측은 예측일 뿐, 그것이 실현될 가능성은 별개다. 그럼에도 지난 10여 년 동안 변화를 체감하면서 세계 10대 경제권 진입이라는 인도네시아의 목표는 훨씬 더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기회의 땅이라는 말을 들은 지 30년이 넘었지만 그것이 단순한 수사가 아닐 수 있음을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실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어 인도네시아는 더 이상 동남아시아에 있는 그런저런 나라일 수만은 없다. 우리가 더욱 적극적으로 간여하고 대응해야 하는 전략적 대상으로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이 기회의 땅을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더욱 진지한 관심과 노력이 따라야 할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인류학과 (학사·석사 수료) ▷호주국립대학(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 (박사)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전 강원대 사회과학원 원장 ▷전 한국동남아학회 회장 ▷ Universitas Padjadjaran 객원교수
유익한 정보 감사합니다~~
인도네시아는 인도네시아인들에게만
기회의 땅으로 성장해서 해외자본에 더이상 자신들의 금쪽같은 땅을 이용당하지 않았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