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 미·중 기술전쟁 최전방...화웨이 R&D 기지에 가다

2023-04-05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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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 4분의1을 R&D로…美 제재 돌파 원동력

'헬스케어' 활로 모색···1억명 찬 '화웨이 워치'

탄광 등 산업현장에서 빛나는 '5G 기술'

"車 안 만들어도···" 스마트자동차에 4조원 투자

화웨이 연구개발 투자 현황 [사진=아주경제 DB]

우르릉 우르릉. 커다란 진동소리에 귀가 먹먹하다. 중국 최대 통신장비기업 화웨이의 안테나 실험실에서 기지국 안테나가 얼마나 강력한 지진에서도 견디는지 테스트하는 소리다. 바로 옆 밀폐된 대형 유리공간 안에서는 시간당 최고 5600㎜의 거센 장대비에도 끄떡없는 안테나를 만들기 위한 방수 테스트도 진행 중이다.

실험실 한켠에 있는 또 다른 정육면체 모양의 밀실 안에는 거대한 원형 인공물이 설치돼 있다. 초정밀·초미세 광대역 탐침 128개로 이뤄진 것이라고 화웨이는 소개했다. 영화 ‘스타게이트(Star Gate)’에 등장하는 4차원 세계로 가는 문을 닮았다 해서 ‘SG128’ 실험실이라 불리는 이곳은 안테나의 각종 성능을 테스트한다. 화웨이 연구원은 "밀실을 둘러싼 수많은 삼각뿔이 테스트에 방해되는 모든 전자파를 흡수해 최적의 실험 환경을 제공한다"며 테스트 이동 정밀도는 0.1㎜, 회전정밀도 0.01㎜로 업계 최강이라고 설명했다. 
 
​매출 4분의1을 R&D로…美 제재 돌파 원동력
지난달 31일 기자가 찾은 화웨이 '안테나 연구실'에서는 세계 최고 성능의 기지국 안테나를 만들기 위한 각종 연구개발 테스트가 한창이었다. 미국의 제재에도 화웨이가 2015년부터 7년 연속 전 세계 기지국 안테나 제품 시장에서 세계 1위를 유지하는 비결도 연구개발(R&D)에 있다. 
 
화웨이는 최근 발표한 2022년 실적 보고서에서 전체 매출의 25% 이상인 1615억 위안을 R&D에 투입했다고 발표했다. 사상 최대치다. 화웨이가 지난 10년간 R&D에 투입한 액수만 약 1조 위안(약 190조원).  화웨이 회사 전체 직원 수는 20만7000명인데, 이 중 R&D 인력만 11만5000만명(55.4%)에 달한다. 기술전쟁의 최전방에 있는 화웨이는 R&D 투자와 신사업 개척으로 거센 미국의 제재를 뚫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화웨이 선전 본사에서 약 50㎞ 떨어진 둥관 캠퍼스. 유럽의 도시 건축물을 그대로 본떠 지어 ‘유럽의 작은 마을(鷗洲小鎭)’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을 중심으로 화웨이 첨단 R&D 기지가 몰려 있다.
 
'헬스케어' 활로 모색···1억명 손목에 '화웨이 워치'
화웨이는 현재 80개 넘는 기초과학 연구실을 운영하고 있다. 이 중 인근에 위치한 화웨이 스포츠 건강과학 연구실을 찾았다. 중국 국가체육총국·체육과학연구소 등과 협력해 2021년 11월 문을 열었다. 헬스케어는 화웨이가 최근 신사업으로 적극 육성 중인 분야로, 스마트워치와 같은 웨어러블 기기 성능 개발을 위한 연구기지다.
 
총 면적만 4680㎡로, 농구장 약 11개 크기와 맞먹는 면적의 공간을 마치 거대한 실내 운동장처럼 꾸며 놓았다.
 
러닝머신처럼 생긴 보행분석장비에서 한 피실험자가 열심히 걷고 있다. 피실험자의 발바닥이 받는 압력이나 걸음 자세·횟수·폭, 발바닥의 지면 접촉시간·비율 등이 러닝머신에 설치된 7000여개 넘는 센서를 통해 화면에 데이터로 나타난다. 이러한 데이터는 스마트워치 이용자의 보행 움직임을 분석해 코칭해 줄 수 있는 알고리즘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고 안내원은 설명했다.
 
이외에도 피실험자들은 스크린 골프장, 수영장, 농구장, 배드민턴장, 탁구장, 암벽등산, 자전거, 러닝머신 등 설비에서 제각각 운동을 하고 있었다. 사방에 달린 28대 적외선 고속 촬영 카메라는 일반 카메라보다 400배 빠른 속도로 피실험자의 신체는 물론 관절 움직임까지 360도 전방위에서 미세하게 촬영한다. 오픈 후 약 1년 4개월 동안 이곳 실험실에서 수집한 운동 데이터만 약 7만건에 달한다고 한다.
 
건강과학은 화웨이가 미국의 반도체 제재에 따른 스마트폰 사업 부진을 메울 신사업으로 적극 육성하고 있는 분야다. 현재 화웨이의 웨어러블 기기 전 세계 출고량만 1억대다.

지난해 웨어러블 기기·스마트폰 등을 포함한 컨슈머 비즈니스 부문의 매출은 전년 대비 11.9% 하락한 약 2145억 위안이었다. 앞서 2021년 스마트폰 부진으로 사업 매출이 반토막 난 것과 비교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평가다.   
 
탄광 등 산업현장에서 빛나는 '5G 기술'

화웨이 다윈 전시홀. [사진=배인선 기자]

안테나 실험실, 건강과학실험실 등의 연구개발 성과물은 화웨이의 각종 정보통신기술(ICT) 제품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취재진이 방문한 화웨이 선전 본사의 다윈 전시홀. 이름에서부터 다윈의 ‘진화론’을 연상시키게 하는 이곳은 ‘적자생존’ 법칙이 동식물뿐만 아니라 기업의 생존에도 적용됨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미국의 제재에도 살아남기 위해 R&D에 총력을 기울인 화웨이의 첨단 5G 기술 발전 진보를 구현한 이른바 '쇼케이스' 공간이라 할 수 있다. 화웨이는 기밀 유출을 우려해 취재진의 사진 촬영을 금지했다.
 
가이 헨실우드 화웨이 홍보담당 이사는 “화웨이가 연구개발을 통해 만들어낸 다양한 5G 기술 솔루션이 우리의 삶과 일에 어떻게 응용되는지, 기술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고 소개했다.
 
화웨이가 5G 기술을 바탕으로 실현한 산업 인터넷 방면의 성과가 눈에 띈다. 금융·교통·에너지·교육·항만·광산·의료 등 100여종 영역의 5G 기술 솔루션을 개발해 20여개 국가 및 지역에서 이미 체결한 계약건수만 5000건에 달한다고 가이 이사는 말했다.
 
스마트 광산 기술 솔루션을 예로 들어보자. 인명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는 탄광 작업 현장의 모든 장비를 5G망으로 연결해 인공지능(AI)·빅데이터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한 원격 통제 시스템을 설치한다. 사람이 직접 탄광 갱도까지 들어갈 필요 없이 석탄 채굴작업부터 운송까지 친환경적이고 안전한 생산 프로세스를 갖춘 스마트 광산을 구축하는 게 핵심이다.
 
최근 화웨이는 그동안 '캐시카우'였던 컨슈머 비즈니스 부문이 미국의 제재로 부진함에 따라 산업인터넷, 클라우드 등 사업을 포함한 엔터프라이즈 비즈니스를 그룹 핵심 사업으로 적극 밀고 있다. 실제 지난해 엔터프라이즈 비즈니스 부문 매출은 전년 대비 30% 증가한 1332억 위안을 기록했다. 2019년까지만 해도 화웨이 전체 매출의 10% 내외에 불과했던 비중도 지난해에는 20.7%까지 갑절로 늘었다.
 
"車 안 만들어도···" 스마트자동차에 4조원 투자

화웨이 선전 캠퍼스 내에 위치한 플래그십스토어에 전시된 ‘AITO 원제(问界)’ M7. ‘화웨이 자동차’로 알려진 ‘AITO 원제(问界)’ 브랜드는 싸이리스라는 자동차 기업과 공동으로 만든 전기차로, 화웨이가 차량 설계부터 마케팅, 판매 등 모든 과정에 참여했다. [사진=배인선 기자]                          

화웨이가 신사업으로 미는 분야가 또 하나 있다. 스마트자동차 사업이다. 화웨이가 2019년 스마트자동차 사업부 설립 이후 현재까지 투자액만 30억 달러(약 4조원), R&D 인력도 약 7000명 투입했다.
 
핵심은 화웨이가 직접 완성차를 만들지는 않는다는 것. 대신 화웨이는 완성차에 내재되는 스마트자동차 솔루션이나 부품을 만들어 공급하고 있다.

이를 위해 자동차 산업 업스트림부터 다운스트림 기업까지 약 수백개 파트너사와 협력해서 현재까지 스마트 좌석·운전대·엔진·배터리·레이더, 스마트카 클라우드, 라이다, 증강현실(AR) 헤드업 디스플레이(AR HUD) 등 30여종의 스마트 자동차 부품을 출시했다. 현재 화웨이는 창안·베이징자동차 등 완성차 업체와 협력하고 있다. 지난해 화웨이는 스마트자동차 부문에서 약 21억 위안 매출을 거뒀다. 
 
쉬즈쥔 화웨이 순환회장은 최근 실적발표 자리에서 "화웨이의 자동차를 만들지 않겠다는 전략은 변함없다"며 "우리는 자동차 기업이 더 좋은 차를 만드는 데 필요한 스마트 자동차 솔루션·부품 공급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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