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공이산(愚公移山). 열자·탕문(列子·湯問)에 나오는 우리에겐 익숙한 고사성어다. 어떠한 어려움도 두려워하지 않고 굳센 의지로 밀고 나가면 성공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구순의 노인이 자식과 손자 간에 만든 세대를 뛰어넘는 약속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노출빈도가 부쩍 많아진 김정은과 김주애 두 부녀(父女)의 모습을 보고 이 고사성어를 떠올린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북한 매체가 김주애를 그냥 ‘자제분’이라고만 표현하고 있는지라 우리는 아직 그의 정확한 이름조차 모른다. 북한도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한때 김정은을 ‘김정운’으로 잘못 알았던 때가 있었던 것처럼. 더 나아가 북한이 두 부녀의 모습만 보여주기 때문에 김주애 위로나 아래로 오빠나 동생이 있는지도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김주애가 북한 매체를 통해 소개된 것은 지난해 11월 화성 17형 대륙간탄도탄(ICBM) 시험장에서다. 이후 열병식 등 군사 관련 행사장에 아버지 김정은과 함께 등장했다. 최근에는 경제건설의 현장에까지 손수 삽질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김주애만 국한하여 단독 보도된 적은 아직까지 한 번도 없었다. 김주애가 학교에서 공부하는 모습이라든지, 가정에서 지내는 모습 등은 보여주지 않았다. 김주애 우표가 발행되었다고 하나, 모두 김정은과 함께 나온 것이다. 기념우표에는 오로지 “김정은 동지에게 최대의 영광을 드린다”고만 적혀있을 뿐, ‘자제분에게’라고 표시하고 영광을 돌린 것은 없다. 아버지 없는 김주애는 아직 없는 것이라고 할까. 북한 파워엘리트가 김주애에게 극존칭을 사용한 것은 김정은에 대한 대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주애에 대해 ‘존귀하신 자제분’이라는 표현도 절대적 존엄과 ‘결사옹위’의 대상인 김정은의 딸이기 때문이다. 김주애가 아닌 김정은의 다른 자녀들에게는 절대로 사용할 수 없는 표현일지는 아직 장담할 수 없다.
김정은이 김주애를 대동시킴으로써 북한 주민이나 바깥 세계에 보여주려는 것은 무엇일까? 다른 것 다 차치하고 김주애가 오직 후계자로 내정됐음을 알리기 위해서일까? 그럴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해도, 이는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그것이 판명되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버지 김정은은 아직 건재하다. 왕조 시대 ‘세자 책봉’의 의미라고 간주할 수도 있겠지만 김주애 스스로 나라를 통치하는 시간까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이는 북한이 “김일성의 민족”이라고 칭하는 백두혈통의 가계에 과거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보면 이해 가능하다. 거침없는 투쟁과 제거가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김정일의 후계를 놓고도 내부 암투가 있었던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북한을 연구하는 전문가들도 김정남, 김정철, 김정은을 놓고 북한이 후계를 확실하게 드러내기까지는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했다.
북한이 스스로 선택한 길은 ‘자력갱생’이다. 하노이 북·미 회담의 결렬 이후 미국을 단 한시도 믿지 않는다. 지금은 핵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에 직면해 있기도 하다. 북한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스스로를 지키고,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이다. 대를 이어서 이루어내야 할 과제가 자신을 지키고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의 표상으로 김정은은 나이 어린 김주애를 내세웠다. 자신의 마음에 가장 드는 딸이 김주애다. 북한이 당면한 엄혹한 현실에 김주애를 등장시켜 세대 간 약속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핵 무력과 경제건설의 현장에 나란히 섬으로써 북한 젊은이들을 포함, 인민들에게 세대 간의 다짐을 보이는 것이다. 부녀가 함께하는 모습으로 감동을 선사하고, ‘제2의 고난의 행군’에 함께해 당면한 위협과 어려움을 극복할 것을 독려하고 있는 것이다. 외부로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군사적 위협과 공격을 어린 후대의 김주애와 함께 영원히 막아내겠다는 결의를 보이는 것이다. 북한이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대를 이어 가야 할 길이 바로 이 길이기 때문이다. 그 굳센 결의가 바로 김 부녀가 일체가 되어 함께하는 모습이다.
김주애의 등장은 아직까지는 김주애 혼자가 아닌 아버지와 함께하는 데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한다. 북한 지도부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김주애를 등장시킨 것은 북한에 주어진 과제를 해결해 가는 데 효과적일 것이라는 판단이 뒷받침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우공의 이산은 자신이 아닌 사람에게는 어리석은 일로 비칠지 모른다. 그러나 산을 퍼 바다에까지 가 버리려는 우공에게는 결코 어리석은 일이 아니다. 강한 신념이다. 세대를 뛰어넘은 공감과 결속의 신념이다. 인민을 향한 자위의 공감, 같이 잘살아야 한다는 결속의 표상을 김정은과 함께하는 김주애, 이 두 부녀의 모습에서 인식할 수 있다.
김영윤 필자 주요 이력
▷독일 브레멘 대학 세계경제연구소 연구원 ▷통일연구원 북한경제연구센터 소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