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베트남 보행자 도로는 사람이 없다

2023-03-01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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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보행자가 베트남 하노이의 보도를 걷고 있다. [사진=베트남 환경경제저널 온라인판 캡처]

베트남 보행자 도로(보도)는 사람을 위한 도로일까. 오토바이를 위한 도로일까. 사람들이 전혀 다니지 않는 황폐해진 보도를 보면 종종 드는 생각이다. 

베트남에서 생활하다 보면 보도를 걷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걸 느낀다. 보도는 당연히 사람들의 통행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정작 현지의 상황은 그렇지 못해서다. 무엇보다 보도를 걷다보면 생각보다 종종 놀라는 경우가 많다. 보도가 움푹움푹 패어있거나 튀어나와 있어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도로를 걷다 보면 보도 위 블럭이 갑자기 싱크홀처럼 꺼지거나 한쪽이 푹 들어가 있어 발이 빠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또한 보도블록이 튀어나와 걷다가 걸려 갑자기 넘어지거나, 보도블록 자체가 갈라져 있어 아래 고여있는 물에 바지를 적시기 일쑤다. 베트남에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한국처럼 무작정 보도를 걷다가는 이런 난처한 상황에 자주 처한다. 이에 베트남에 오래 생활한 교민들은 베트남에선 앞보다는 보도가 꺼질 것을 대비해 바닥을 보고 걷기를 항상 강권한다. 

베트남 보도가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크게 지적되는 이유는 바로 오토바이 때문이다. 하노이, 호찌민 등 베트남 대도시의 주요 보도 위에는 매일 같이 오토바이가 달린다. 아침·저녁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고라도 항상 보도에는 오토바이가 달리고 주차돼 있다. 심지어는 자동차도 달린다. 때문에 사람 무게에 맞춰 만든 보도가 수년을 못 견디고 금방 망가지는 것이다. 

최근 베트남의 한 커뮤니티에서는 보도와 관련한 갑론을박도 이어졌다. 하노이의 한 도로에 수명 70년의 내구력을 가진 보도블록이 설치됐는데 불과 2~3년 만에 모두 파손되자 이에 대한 책임 공방을 묻는 상황이었다. 일부에서는 일차적으로 부실공사를 질타하며 건설부에 책임을 물었지만, 대다수 네티즌들은 이를 이용하는 대다수 통행자들이 보도를 주차장으로 쓰거나 이동수단을 통해 활보하는 것도 문제라고 꼽았다.

사실 보도는 당연히 사람들만 다녀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베트남 정부도 국민들도 모두가 이를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편리함과 접근성 때문에 다수가 이를 무시하고 보도를 자동차 도로의 연장선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보행자 도로는 자동차 도로와 마찬가지로 도시의 중요한 인프라 중 하나다. 특히 도시의 미관 측면에서도 잘 정비된 보도 환경은 새로운 랜드마크를 짓는 것에 비견될 만큼 우수한 자원이다. 이런 까닭에 관광활성화를 지향하는 베트남이 관광객의 이동 편의를 돕고 재방문율을 높이는데 보도의 재정비는 아주 중요한 키워드가 될 수도 있다. 

마침 하노이시와 호찌민시는 이와 관련한 관리운영 강화방침을 최근 발표했다. 보도 파손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지자 호찌민시는 도보 위 오토바이 통행을 금지하고 보도를 비추는 CCTV를 50대 이상 설치해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또 하노이시는 시의 구도심 4대 지역 정비 계획에 맞춰 도보를 재정비하고 각종 캠페인과 벌금 강화를 통해 불법설치물 철거 및 도보와 차도를 구분하는 인식확산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논쟁과 베트남 당국의 발표가 새로운 시발점이 될 수 있을까. 베트남 교통문화는 그만큼 바로 일상생활에 직결되면서 누구에게나 미치는 영향이 크다. 이제 베트남에서도 도보의 환경이 점차 개선되면서 이동 수단보다는 걷는 보행자의 권리가 보다 강화되기를 기대해본다. 무엇보다 보행자들이 당연한 자신의 길(보도)을 걸으면서 더 이상 눈살을 찌푸리는 일이 앞으로는 보다 적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보행자 도로로 이동하는 오토바이 [사진=베트남 VTC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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