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로 이번엔 양파 대란"...아시아 식량 위기 고조되나

2023-03-01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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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파키스탄·카자흐스탄 모두 양파 가격 상승으로 인한 대란

밀수·수출금지 등장하며 정부 개입

기후 위기 본격화시 식품 가격 폭등 반복될 듯


 

인플레이션 위기에 처한 필리핀의 양파 가격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올해도 세계 식량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는 우려가 대두되고 있다.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밀 가격 폭등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기후 위기로 인한 아시아발 양파 위기다. 양파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채소 중 하나인 만큼 세계가 긴장감에 휩싸였다. 

주요 양파 소비 국가들의 정부도 팔 걷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시장 조사에 나서기도 하고 수출 중단을 지시하기도 했다. 양파 가격의 고공행진이 계속되면 영양실조를 비롯해 세계인들의 건강이 우려된다는 섬뜩한 경고까지 나온다. 

◆ "양파가 고기보다 비싸다"는 말 나오는 필리핀

양파 가격의 오름세가 일부 국가들의 식탁 안보를 위협하는 모습까지 이르렀다. 

지난 24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필리핀과 파키스탄 등 아시아 국가들의 양파 가격은 심각한 수준이다. 이들 국가의 주식에 대부분 양파가 들어간다는 점을 고려하면 밥상 물가 자체가 위협 받는 것이다. 

현재 필리핀에서는 몇 달동안 천정부지로 오른 양파 가격에 "양파가 고기보다 비싸다"는 상황이 익숙해졌다. 지난해 9월 이후 필리핀의 양파 가격은 세계 평균을 크게 웃도는 수준에서 머무르고 있다. 지난 4개월 동안 양파 가격은 4배 이상 뛰었다. 

올해 초 이후 양파 값이 소폭 떨어졌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지난해 말 양파값이 너무 높았던 탓에 내려간 것으로 보일 뿐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일종의 역기저 효과인 셈이다. 지난해 4월 양파 가격은 Kg당 70페소 부근에서 형성됐다. 하지만 양파 가격은 빠르게 올라 12월 말 무려 Kg당 700페소까지 올랐다. 필리핀 요리의 주 재료인 양파가 평소 대비 10배 가까이 오른 것이다. 

올해 가격 하락에도 불구하고 고기보다 비싸다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1월 중순 기준 필리핀의 양파 가격은 550페소였다. 이는 당시 닭고기보다 약 3배, 쇠고기보다 25% 비싼 가격이다. 

양파 가격 상승은 필리핀만의 문제가 아니다. 파키스탄, 카자흐스탄에도 양파 대란이 나타나고 있다. 

올해 1월 파키스탄의 양파 가격은 Kg당 220루피(3500원)를 기록했다. 전년도 Kg당 36.7루피였던 것이 5배가 오른 것이다. 소금 가격은 49.5%, 바나나와 우유 가격은 각각 45.6%, 30.3% 오른 것과 비교하면 501%나 상승한 양파값이 위협적으로 보인다. 이를 두고 인디아투데이는 "물가가 파키스탄 서민의 주머니에 구멍을 내고 있다"고 했다. 그 중심에 양파 가격 상승이 있는 셈이다. 

그 외에도 키르키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자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들에서도 양파 가격 상승으로 인한 물가 상승이 나타났다. 

밀수·수출금지까지 등장..."영양실조 늘어날 듯" UN 우려 표명

양파 대란이 나타나자 각국 정부는 부랴부랴 고육책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식생활에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양파 가격 상승에 국제 기구의 우려는 식지 않고 있다. 

양파 부족은 밀수 증가로 이어질 정도로 혼란이 커졌다. 필리핀에서는 양파 가격 상승에 승무원들이 밀수를 하다가 걸리기도 했다. 올해 1월에도 950만 페소(2억 3000만원) 상당의 양파 밀수가 발견되기도 했다. 

필리핀 정부 당국이 꺼낸 카드는 양파 긴급 수입 조치였다. 기존의 자국 내 양파 생산으로 수요를 충당한다는 계획을 포기한 것이다. 계속되는 양파 가격 상승에 여론이 나빠지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은 2만 1060t(톤)의 양파를 수입하는 긴급 계획을 승인했다. 필리핀 농무부 대변인은 "이것은 완벽하지 않은 임시 해결책일 분이다"고 불가피한 대책임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여론의 분노는 식지 않고 있다. 필리핀 농업식품 회의소 회장인 다닐로 파우스토는 "2월부터 4월까지 양파 가격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며 양파 가격이 둔화될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인도 매체 퍼스트포스트는 "필리핀의 양파 가격 상승은 사람들의 식습관을 바꾸도록 강요하고 있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자키스탄 등 중앙아시아에서는 양파 수출금지령이 떨어졌다. 가장 최근에는 키르기스스탄에서 1월부터 4월까지 양파 수출이 공식적으로 금지됐다. 키르기스스탄 정부는 "식량 안보를 보장하고 식품 가격 안정화를 위해 필요성이 부여된다"고 수출금지령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양파 가격 급등으로 당국이 전략적 비축량을 활용하도록 강조했다. 바흐트 술타노프 무역부 장관은 국민들이 혼란에 양파를 자루 단위로 대량 구매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양파 가격 상승에 국제 기구와 전문가들의 시름은 커져만 간다. 이미 빈곤율이 높은 국가에서 양파 가격 상승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양파는 전 세계 요리의 필수품이며 토마토 다음으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야채다. 양파의 연간 생산량은 1억 6000만 톤 가량으로 이는 당근, 순무, 고추 등을 합친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에 저소득층의 영양 불균형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신디 홀먼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충분한 칼로리 섭취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식단의 질은 식량 안보와 영양을 이어주는 중요한 연결고리"라면서 "열악한 식단의 질은 다양한 영양실조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수치 세계연합(UN)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30억 명 이상이 건강한 식단 생활을 영위할 여력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팀 벤턴 신규 리스크 연구책임자는 많은 정부가 밀가루 수입에는 기꺼이 보조금을 주지만 채소 생산 지원에는 인색하다며 그 결과 녹말 곡물, 설탕, 식물성 기름은 너무 많이 생산되는 반면 과일·채소는 필요량의 3분의 1밖에 생산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건강한 식단 문제가 점차 전 세계적으로 정치적 의제가 되고 영양은 각국 정부가 매우 중요하게 고려하는 부분이 될 것"이라며 "이것은 천천히 폭발하는 '영양 시한폭탄'과 같다"고 강조했다.

◆ 기후위기 본격화시 식품 가격 상승 반복 가능성

문제는 이 같은 식품 가격 폭등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남부아시아,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양파 가격 폭등이 일어난 배경에는 기후 위기가 자리잡고 있다. 향후 해수 온도 상승이 지속되면 해당 지역에 자연재해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필리핀의 양파 대란은 기온 상승과 강우량 증가의 영향을 받았다. 지난 8월부터 필리핀은 열대 폭풍이 평소보다 많이 발생해 피해를 입었다. 강우량이 증가해 학교도 폐쇄하고 온라인으로 수업을 전환해야만 할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다. 

파키스탄도 마찬가지다. 파키스탄은 지난해 폭우로 국토의 3분의 1이 잠겼다. 당시 홍수 피해를 복원하는 데만 100억 달러(약 14조원)이 넘게 투입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일각에서는 향후 50년 이상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따를 정도로 큰 피해였다. 

반면 중앙아시아의 경우 기후 변화로 인한 냉해가 발생해 양파 농사와 유통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로 인해 양파 가격 공급이 큰 차질을 빚었다. 

더욱 큰 문제는 이 같은 기후 변화가 앞으로 자주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온도 상승은 기후 위기를 가속화시킨다. 

해수면 온도 상승은 폭우를 유발함과 동시에 폭우시 하천이 쉽게 범람하기 때문에 큰 피해로 이어지곤 한다. 기온이 상승하면 대기가 더 많은 수증기를 함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기가 섭씨 1도 상승할 때마다 대기는 7% 더 많은 물을 저장할 수 있다. 현재 지구촌 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평균 1.2도 가량 높은 상태다. 이런 점 때문에 대기가 과거보다 더 많은 물을 저장하는 동시에 비가 내리는 빈도 수는 줄었다. 대신 한번 비가 내릴 때마다 강우량은 더욱 많아지는 것이다. 

아시아 과학 매체 아시안 사이언티스트지는 "파키스탄부터 필리핀에 이르는 기후 변화는 모든 날씨를 바꿨다. 온도 상승으로 홍수와 산사태가 강해지고 있다"며 "(2019년 10월 발생한) 태풍 하기비스의 경우, 기후 변화로 인해 폭우 확률이 67%나 증가했으며 40억 달러 상당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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