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수은법 개정 강행, 멀어지는 글로벌 스탠다드

2023-02-0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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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0일 부산항 신선대부두 야적장에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 있다.[사진=연합뉴스]


세계 시장에서 기준으로 통용되는 규범을 뜻하는 '글로벌 스탠더드'는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이후 강조해 온 용어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아랍에미리트(UAE)·스위스 순방 이후 처음 열린 국무회의에서도 "우리나라의 제도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야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제, 노동 등 전 사회 시스템에서 우리 제도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정합시키지 못할 경우 해외 투자는 물론, 국제시장에서 우리 기업의 경쟁력도 약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달 입법예고한 '한국수출입은행 시행령' 개정안을 놓고 수출정책금융기관간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수은법 개정안은 연간 대외채무보증 총금액 한도를 한국무역보험공사(무보)의 연간 보험 인수 금액의 35%에서 50%로 확대하는 내용이 골자다. 대외채무보증은 해외 법인이 국내 물품을 수입하면서 구매 대금을 국내외 금융사로부터 대출받을 경우 그 채무를 보증해 수출·수주를 지원하는 제도다. 

또 개정안은 현재 수출과 연계해야 대외채무보증을 할 수 있는 수은이 현지 통화 금융이 필요한 거래의 경우 대출 연계 없이 대외채무보증을 제공할 수 있는 예외조항을 담고 있다. 

기재부와 수은 측은 이번 개정안을 통해 보증 지원 규모가 연간 10억 달러 이상 증가하며 향후 자금 수요가 늘 것으로 예상되는 방산·원전 분야에서 활용도가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무보 측은 이번 개정안이 불필요한 경쟁을 유발해 국부 유출과 공공기관 효율화에 역행하고 결국 수출 중소기업의 지원 여력도 약화시킬 것이라며 반대하는 입장이다. 무보가 중장기 수주지원 보험료를 통해 얻는 수익으로 수출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만큼 수은의 보증확대로 줄어든 무보의 수익이 중소기업 지원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이유로 우리나라와 같이 2개의 공적수출신용기관(ECA)을 둔 나라 대부분은 기관별로 대출과 보증·보험을 구분해 위험을 분산하고 있다. 

OECD 주요국 중 한 국가에 2개의 ECA를 둔 나라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노르웨이, 스웨덴, 체코, 독일, 헝가리, 일본 정도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의 수은 격인 일본국제협력은행(JBIC)이 보증업무 일부를 맡고 있지만 항공기 수입, 회사채(사무라이본드) 등에서 제한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무보에 해당하는 일본 수출보험기관(NEXI)과 JBIC은 일찍이 1972년 불필요한 경쟁관계를 중단하고 업무영역 다툼에 따른 정책 금융의 비효율성과 상업금융기관의 업무혼선 해소를 위한 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OECD 국가는 아니지만 중국은 2개의 ECA가 모두 대외채무보증을 취급한다. 세계 무역을 주도하기 위한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같이 대규모 자금조달 사업을 위해 정부 지시에 따른 기관간 업무 조정이 허용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급등한 국제 에너지 가격 탓에 무역적자를 기록했지만 6837억 달러라는 역대 최고 수출액을 달성했다. 이 중 중소기업 수출액도 1175억 달러로 2년 연속 역대 최고 실적을 갱신했다. 반면 중소기업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줄면서 수출체력이 약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수출 부진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현재, '수은법 개정안'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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