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살림의 건전성을 규율할 재정준칙이 국회의 예산심의 3개월 동안 단 한 번도 논의되지 않은 채 해를 넘기게 됐다. 이에 따라 정기국회 내 입법을 완료해 2024년 예산안부터 준칙을 적용하려는 정부의 목표도 사실상 무산됐다.
26일 기획재정부와 국회에 따르면 국민의힘 박대출 의원이 지난 9월 20일 대표 발의한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현재까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원회에서 단 한 번도 논의되지 않았다.
재정준칙은 나라 살림의 건전성 지표가 일정 수준을 넘지 않도록 관리하는 규범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와 튀르키예만 도입 경험이 없을 정도로 국제적으로 보편화했다.
문재인 정부도 재정준칙 도입을 추진했으나 국회 소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의 재정준칙은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3.0% 이내로 관리하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60%를 초과할 때는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2.0% 이내로 조이는 것이 골자다.
이는 직전 문재인 정부가 제시한 재정준칙보다 강력한 수준이다. 재정준칙의 법적 근거도 기존 안인 시행령보다 격상된 법률(국가재정법)에 담기로 했다.
정부는 재정준칙이 도입된 것으로 가정하고 준칙에 맞게 내년 예산을 편성했지만, 앞으로도 일관성 있게 재정 건전성을 관리하려면 준칙 도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에서 확정된 2023년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58조2000억원, GDP 대비 적자 비율은 2.6%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이는 우리 경제가 올해 2.6%, 내년 2.5% 성장할 것이란 전망에 기초한 것이어서 실제 GDP 대비 적자 비율은 이보다 소폭 높을 전망이다. 정부는 최근 경제 성장률 전망을 올해 2.5%, 내년 1.6%로 하향했다.
내년 국가채무는 1134조4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새로운 경제 전망을 적용하면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50.4%로 절반을 넘어 재정 정상화가 시급한 상황이다.
이미 주요 국제기구들은 한국의 재정준칙 필요성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3(한·중·일) 거시경제조사기구(AMRO)는 지난 16일 "한국은 효과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재정준칙을 통해 재정건전성 제고 노력을 해야 한다"며 "고령화로 인한 장기적 재정위험은 포괄적 접근을 통해 선제대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국제통화기금(IMF)도 우리나라의 재정건전화 노력을 강조하며 국회의 재정준칙 채택을 권고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