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찬 피아니스트가 지난해 들려준 라흐마니노프에서는 10대의 질풍노도와 힘이 느껴졌다. 이번에도 힘 있는 ‘황제’를 생각했는데, 2악장이 눈물이 날 정도로 애절하고 너무 슬펐다. 색을 완전히 바꿔서 많이 놀랐다. 모두 설득력이 있어서 천재라는 말 밖에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지난 6월 미국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최연소로 우승한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홍석원 광주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는 자신만의 음악을 들려주는 임윤찬을 천재라고 표현했다.
‘베토벤, 윤이상, 바버’ 앨범에 협연자로 참여한 임윤찬은 28일 서울 서대문구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황제’ 교향곡을 들으며 베토벤이 꿈꾼 유토피아와 그가 바라본 우주를 느꼈다”며 “이 곡을 꼭 광주시향과 함께 연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임윤찬은 지난해 12월 광주시향 송년음악회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하며 광주시향과 인연을 맺었다.
임윤찬은 “지난해 광주시향 단원들이 엄청난 에너지로 연주하는 걸 보고 큰 영향을 받았다”면서 “라흐마니노프가 가장 좋아했던 오케스트라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있었던 것처럼, 내 마음에는 광주시향이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지난 10월 8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열린 공연의 연주 실황을 녹음한 이번 앨범에는 임윤찬과 광주시향이 협연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광주시향이 연주한 윤이상의 ‘광주여 영원히’,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 임윤찬이 앙코르로 연주한 몸포우의 ‘정원의 소녀들’, 스크리아빈 ‘2개의 시곡’ 중 1번, ‘음악 수첩’ 등이 담겼다.
임윤찬은 “사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베토벤 협주곡 중 ‘황제’는 너무 화려하게만 느껴져 애정이 느껴지지 않았다”면서 “그러다 최근 인류에게 코로나라는 큰 시련이 닥치고 나도 매일 방에서만 연습하다 보니 이 곡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홍석원 지휘자는 윤이상의 ‘광주여 영원히’에 대해 "애도, 슬품, 자유를 위한 투쟁이 담긴 곡이다"라며 "광주시향 단원 선생님들 중에는 5·18 민주화운동을 직접 경험하신 분도 계시다. 첫음을 하실 때부터 느낌이 다르다"라고 전했다.
이날 임윤찬은 음악가로서 근본이 되는 일은 뭐가 있을까를 오랜 시간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임윤찬은 “베토벤 소나타 전곡이나 모차르트 소나타·협주곡 전곡 등을 연주하는 게 피아니스트로서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더 나아가 대단한 연주자는 보육원이나 호스피스 병동 등 음악을 듣지 못하는 사정에 놓인 관객에게 찾아가 연주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이어 임윤찬은 “물질적인 나눔도 의미가 있지만, 음악을 기부하는 것은 듣는 이들이 알지 몰랐던 또 다른 우주를 열어주는 일이고 돈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연주자로서 대단한 업적이란 어떤 콩쿠르에 나가서 운 좋게 1등을 하는 게 아니라 이런 분들을 위해 연주하는 것이고, 앞으로 저도 이러한 일들을 하려고 노력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재학 중인 임윤찬은 콩쿠르 우승 이후 휴학을 하고서 연주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최근 임윤찬의 스승인 피아니스트 손민수(한예종 교수)가 내년 가을학기에 미국의 명문 음대인 뉴잉글랜드음악원의 교수로 부임한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추후 유학 계획을 묻는 말에 임윤찬은 “사실 제가 당장 내일이라도 죽거나 다쳐서 피아노를 치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섣불리 계획을 얘기했다가 약속을 지키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아직 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임윤찬은 내달에는 잇따라 반 클라이번 우승 기념 리사이틀을 연다. 12월 6일과 8일엔 각각 통영국제음악당과 대전 카이스트 대강당에서, 10일에는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관객들을 만난다.
10일 공연은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이후 서울에서 갖는 첫 단독 리사이틀이다. 임윤찬은 “공연을 처음 제안받았을 때 콩쿠르 때의 연주곡을 부탁받았다. 좋아하는 곡이지만 너무 힘들게 했던 곡이기 때문에 다시 치는 것은 아니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이어 임윤찬은 “올랜도 기번스의 곡은 어렸을 때 들었을 때 의미 있는 연주회에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첫 곡으로 넣었다“라며 ”바흐의 ‘신포니아’는 글렌 굴드가 연주한 순서대로 연주한다. 글렌 굴드는 바흐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인생의 이야기를 연주를 통해 들려준다. 내가 받은 영감을 한국 관객에게도 들려주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