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정치·외교·환경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변수에 휘둘려왔던 여행산업임에도 좀처럼 면역력은 생기지 않았다.
전 세계 하늘길이 막히면서 여행산업 매출은 순식간에 곤두박질치기 시작했고, 급기야 '제로'에 수렴했다.
코로나19 이전 우리나라 여행업계는 호황을 누렸다. 메르스를 비롯해 한·중 간 사드 갈등, 한·일 간 무역 갈등에 이르기까지 업계를 위협하는 변수가 있었지만, 그래도 '시장 다변화'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던 시절이니, 감히 '호시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 장기화에 세계 경제가 위축되자 각국은 굳게 걸어 잠갔던 여행 빗장을 풀기 시작했다. 역병이 확산한 지 3년여 만의 일이다. 강력한 봉쇄 정책을 펼쳤던 일본 정부도 지난달부터 외국인 무비자와 자유여행을 전격 허용했다.
여행수요가 급증하면서 미미했던 여행업계 매출도 껑충 뛰었다.
현재 해외여행 수요가 코로나19 확산 전의 20~30% 수준을 회복했다. 특히 국내 주요 여행사들을 통한 10월 해외여행 수요는 평균 네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을 정도로 가파른 회복세를 보였다.
여행시장은 회복 신호탄을 거침없이 쏘아 올렸지만, 여행업계는 여전히 '악화일로(惡化一路)'를 걷는 형국이다.
여행산업 회복에 큰 걸림돌이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구인난'이다. 코로나19가 창궐하자 몸집을 줄여 버티기에 들어간 국내 여행사들은 시장이 회복하는 현시점에도 여전히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이전 수천명에 달했던 국내 빅2 여행사 직원 수는 현재 절반 이상 감소했다. 다른 여행사 상황도 마찬가지다. 적게는 100명가량 빠져나갔다.
자의로, 또는 타의로 업계를 떠났던 인력은 여행시장이 회복하고 있는 지금에도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신규 입사자도 급감했다. 현장에서는 일할 사람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3년여 만의 매출 상승에 행복한 비명을 질러야 할 업계는 때아닌 인력난에 머리를 싸매고 있다. 여행사 간 인력 확보 경쟁이 매출 경쟁만큼 치열해진 이유다.
업계를 떠난 인력이 여행업으로 회귀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높은 업무강도', 그리고 '낮은 연봉'이 가장 큰 이유다.
얼마 전 만난 여행사 임원 A씨도 이에 공감했다.
A씨는 "여행업이 업무 강도는 센 반면 연봉은 턱없이 낮다. 초봉이 많게는 두 배 이상 차이 난다고 한다. 여행업은 더 이상 매력이 없다고 한다. 그러니 IT업계를 비롯해 스타트업으로 향하는 전문인력을 잡을 방도가 없다"고 토로했다.
'보수적 조직 문화'도 이유 중 하나다.
시대가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만큼 여행 트렌드도 급변하고 있다. 하지만 종합 여행사들 운영정책의 면면을 살펴보면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여행사 한 관계자는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변화'와 '혁신'을 운운하고 있지만, 윗선의 다수는 여전히 과거 운영방식을 고수한다"고 말했다.
조직 문화 자체가 과거에 갇혀 있으니, 부상하는 온라인 여행 플랫폼과의 경쟁력에서도 뒤처질 수밖에 없다.
여행 후발주자인 온라인 여행사(OTA)와 새싹기업(스타트업) 중심의 회사들은 변화를 적극 수용했다. 그리고 혁신했다.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고 다양한 아이템과 이색 기획 상품을 잇달아 내놓으며 활발한 마케팅을 펼쳤다. 트렌드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주저앉지 않고 오히려 앞으로 나아갔다.
종합 여행사들은 비로소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여행사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OTA는 비교대상조차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이 OTA들이 종합여행사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거대 경쟁상대가 될 줄은 몰랐다"고 전했다.
여행하기 좋은 시기, 다수의 내국인이 해외로 향하고 있고, 외국인 여행객이 우리나라를 찾고 있는 지금이다. 변해야 산다. 변화와 혁신은 과거에서 탈피할 때만이 가능하다. 플랫폼 개발보다 선행돼야 할 것은 바로 고인 조직 문화를 바로잡고 직원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것이다.
과거의 영광만 등에 업고 성공할 것이란 생각은 반드시 버려야 한다. 여행업계에 모처럼 훈풍이 불고 있지만, 따스한 바람은 언제든 한파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포스트 코로나'를 외치고 있지만, 사실 코로나는 현재진행형이다. 코로나19로 꽁꽁 걸어 잠갔던 여행빗장만 풀렸을 뿐이다.
당장 훈풍이 분다고 또다시 안주해선 안 된다. 미래를 봐야 한다. 조직부터 변화하고 혁신해야 한다. 변화와 혁신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다. '나'부터 변하면 된다, OTA가 종합여행사의 최대 경쟁상대로 떠오른 근본 원인은 비단 기술력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