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합리적으로 잘 판단하실 것이다. 우리금융은 민영화 의지와 철학을 같이할 수 있는 분이 맡아야 한다” (2013년 4월 기자간담회에서 신재윤 당시 금융위원장 발언)
금융권 최고경영자(CEO) 인선 향방을 둘러싸고 10년 전과 같은 발언이 또다시 금융당국 수장 입을 통해 나왔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금융지주사 등 민간 금융회사 CEO들을 자신들의 뜻대로 '물갈이'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새 정부 출범 반년 만에 정권 차원의 외풍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금융권 전반을 뒤흔들고 있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0일 라임사태와 관련해 문책경고(중징계)를 받은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대해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해당 발언에 대해 “행정처분 당사자가 (거취에 대해)고민 중인 것으로 안다"며 "최근 어려운 경제상황 등 향후 선진금융기관으로 도약할 금융사로서 종합적으로 판단했으면 좋겠다는 의미"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나 금융권에선 이 원장의 발언을 라임 관련 징계에 대한 취소 소송을 내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이자 사실상 손 회장에 대한 사퇴를 종용한 것으로 본다. 현행 규정 상 금융사 임원의 문책경고 이상 중징계가 확정될 경우, 금융회사 취업이 3~5년간 제한된다.
현직 금융권 수장들을 겨냥한 이 원장의 행보는 해당 발언을 시작으로 더욱 거침이 없다. 지난 14일에는 회장 선임권을 쥐고 있는 국내 8개 금융지주 이사회 의장을 일제히 소집해 'CEO 선임'에 있어 투명하고 공정한 선출을 강조하고 나섰다. 이 자리에서 "(금융권 CEO) 물색 과정에서 국민 눈높이에 맞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며 "(기준에 미달하는 CEO에 대해선) 더 타이트하게 금융감독 권한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고 언급하는 등 수위 높은 발언을 이어갔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NH농협금융과 BNK금융 차기 수장 선임을 위한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와 이사회가 열리는 날이기도 했다. 가뜩이나 전 정부 인사로 꼽히는 김지완 BNK금융 회장이 '아들 특혜 의혹'과 관련해 금감원 현장검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임기 5개월여를 남겨두고 중도 사퇴한 상황에서 나온 당국 수장의 발언과 행보가 차기 회장 선임 절차에 들어간 금융지주에 대한 '경고 메시지'로 해석되고 있다.
금융당국 수장의 이 같은 발언은 과거에도 있었기에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는 평가다. 지난 2013년 박근혜 정부 당시 첫 금융당국 수장이던 신재윤 금융위원장은 민영화 전 우리금융 수장이던 이팔성 회장에 대해 "합리적으로 판단하라"고 언급했다. 전 정부(MB) 인사로 분류되며 줄곧 사퇴 거부 의사를 나타냈던 이 회장은 해당 발언이 나온 지 열흘 만에 끝내 사임 의사를 밝혔다. 신 위원장은 이후 KB금융 수장 인선 등에도 간섭하는 발언을 이어가, 금융권 인선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관치금융'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