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서울 한복판이자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약 1㎞ 떨어진 이태원에서 발생한 10‧29 참사(이태원 참사)는 대한민국이 아직도 각종 재난에서 안전한 나라가 아니라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의사 출신인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참사 당일 소식을 듣자마자 구호를 위해 현장으로 달려갔다. 156명이 사망하고 그에 육박하는 부상자가 발생한 참혹한 현장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이번 참사 과정에서 윤석열 정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면서 윤석열 대통령의 공식적인 대국민 사과를 촉구했다. 신 의원은 "졸속으로 종교단체에 가서 하거나, 회의 발언에서 말하는 것은 사과가 아닌 꼬리 자르기 변명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아울러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문재인 정부에서 구축됐던 재난 관련 시스템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점을 아쉬워하며 "결국 권한이 있는 사람이 책임감을 가지고 현장에서 통솔해야 한다"면서 사회적 공론화를 통한 대대적인 시스템 재정비를 주장했다.
다음은 신 의원과의 일문일답이다.
-2020년 21대 국회에 비례의원으로 입성했다. 이제 2년이 지나 전반전을 마치고 후반전에 돌입했는데 소감이 있다면.
지난 2년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여당 의원으로서 최선을 다하는 의정 활동의 시간이었다. 국민이 부여한 국회의원의 권한이 상당하지만 그럼에도 한계가 있었다. 나름 의료계 전문성을 갖고 왔지만 제가 생각하는 방향대로 뜻을 펼치기는 쉽지 않았고, 여야 팀워크가 중요하다고 느꼈다. 의사 신현영이 국회의원 신현영으로 민주당과 국회 내에서 어느 정도 인정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시간이었다.
-윤석열 정부가 이제 출범 6개월이 됐다. 부정적인 평가가 많지만 코로나19 대응은 좀 괜찮았다는 의견들이 있는 것 같다.
이미 문재인 정부에서 2년간 노하우와 경험이 축적됐다. 윤석열 정부가 '과학 방역'을 이야기했지만, 과연 뭐가 달라졌는지 모르겠다. 지금 한국은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실내 마스크를 유지하고 있는데, 그 과학적 근거가 뭔가? 그나마 긍정적으로 평가 한다면 큰 사고를 안 쳤다는 점이 평가를 받은 것 같다.
코로나19 대응의 수장은 보건복지부 장관과 질병관리청장인데, 복지부 장관은 상당히 오랜 기간 공석으로 있었고, 겨우 인선된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기재부 출신으로 보건의료 분야에 전문성이 떨어진다.
백경란 질병관리청장은 지난 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등의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하기로 여야 합의로 의결했다. 국민의힘 일부 의원은 자진 사퇴 권고까지 했다. 윤석열 정부가 '능력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전 정부 인사들과 너무나 대비된다.
-이번 10‧29 참사와 관련해 야권에서는 대통령, 서울시장, 지역 국회의원, 지역 지자체장 등의 당적이 모조리 바뀌면서 사건이 터진 것 아니냐는 시선이 있는 듯 하다.
희한한 일이다. 책임있는 분들의 역할이 이번 사태에서 보이지 않았다. 예방이나 사후 수습에도 보이지 않는데 참 희한한 일이다. 대통령이 용산으로 집무실을 이전한 것이 영향을 준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지 않나. 용산과 이태원의 이미지가 훼손 됐는데, 제가 속한 국회 보건복지위에서도 이제는 이태원 참사가 아닌 10‧29 참사로 언급해 트라우마를 최소화하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참사와 관련해 민주당 쪽으로 제보나 요청들이 들어오는 것이 있나.
유가족분들의 연락이 오시는 것이 '우리 아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사망에 이르렀는지 궁금하다'이다. 지금 그런 기록들이 제대로 안 남아 있다. 피해자가 현장 그 좁은 골목에서 압사돼 즉사했는지, 심폐소생술(CPR) 과정에서 사망했는지, 이송과정에서 사망했는지, 병원에서 사망했는지 등등이다. 현장의 보전과 기록이 매우 중요한데, 그러한 수습 과정이 너무 졸속 처리된 것 아니냐는 아쉬움이 있다.
◆"尹 '뇌진탕' 발언...상황 제대로 보고받고 지시했는지 의문"
-신 의원이 이태원 현장에서 직접 구호에 나서 화제가 됐는데, 어떻게 갈 생각을 한 것인가.
당일 밤 12시쯤 시민들이 CPR를 하는 영상들이 유튜브에 올라오기 시작하고, '이태원이 복잡하니 우회하시오'라는 재난 안전 문자가 왔다. 그때 이태원에 무슨 일이 났나하고 기사를 검색해보니 '81명이 호흡 곤란'이라는 기사를 봤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믿겨지지 않았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여름 홍수 당시 이성만 의원 중심으로 당 국민안전재난재해대책위원회를 만들었는데, 우선 위원회가 모인 단체 메신저방에 해당 기사를 링크하고, 당 내 비상 알람을 띄웠다.
그리고 중앙응급의료센터 상황실에 바로 전화했다. 국회의원이 간다면 도움이 될지 방해가 될지 모르니, 의사 자격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제가 근무하고 훈련을 받았던 명지병원 재난의료지원팀(DMAT)이 현장에 간다는 것을 확인해 같이 가게 됐다. 구강외과 전문의인 남편도 도움이 될 수 있으니 같이 갔다.
-경찰과 소방청의 대응이 적절하지 않았다는 지적들이 있는데, 실제 현장에선 어땠나.
상당히 미흡했다. 명지병원 DMAT팀이 현장 의료소 천막에 도착했는데, 누구에게 도착을 이야기해야 할지 컨트롤타워가 보이지 않았다. 천막 앞에 미분류 경증 환자들이 돗자리를 뒤집어 쓰고 덜덜 떨고 있었는데, 경찰은 폴리스 라인만 쳐 놨을 뿐 핼러윈 축제 인파들이 왔다갔다하고 CPR 와중에 사진을 찍는 상황을 제대로 통제하지 않았다.
DMAT 팀들이 현장에 들어가려고 하니 경찰이 안 열어줘 진입이 힘들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일반인들은 통제하지 않고 구호팀은 오히려 통제해 발목을 잡은 셈이다. DMAT 팀의 존재와 역할을 경찰이 몰랐다는 것으로 사전에 재난 대응 훈련이 안 된 것이다.
소방청 쪽은 이제 자료가 와서 살펴보고 있다. 다만 소방청 중앙구급상황관리센터와 중앙응급의료센터의 정보가 공유되는데, 소방청 신고가 들어온 것은 10시 15분, 중앙응급의료센터에 공유된 것은 10시 38분이다. 23분의 지체가 확인됐다.
그 사이에 충분히 살 수 있었던 환자들이 있지 않았을까. DMAT 팀이 현장에 갔을 때 이미 사망자인데 CPR를 하는 경우가 있었다. 결국 시스템이 제대로 되지 않았는데 당시 상황에 대한 충분한 검증이 필요하다.
-그럼 시스템을 어떤 식으로 개선하는 것이 좋을까.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1조5000억원을 들여 구축했던 '재난안전통신망'이 작동을 안 했다는 것 아닌가. 여러 부처들이 걸쳐있는 상황에 지방자치단체까지 동시다발적으로 상황이 공유되고, 안전관련 요원들이 연락이 돼야 하는 부분인데, 그런 시스템이 구축됐지만 활용이 안된 것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
결국 권한이 있는 사람이 책임감을 갖고 현장을 통솔해야 한다. 컨트롤타워가 현장을 통제해 일단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분류하고, 산 사람부터 구호를 서두르는 시스템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부족했다. 정부는 여전히 그러한 부분에 대한 파악이 안 됐고 추모 행보만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사건 당일 보고를 받고 7차례에 걸쳐 지시를 했다고 대통령실이 홈페이지에 올렸다. 그런데 막상 윤 대통령은 이태원 현장에 가서 "압사? 뇌진탕 이런 게 있었겠지", "여기서 그렇게 많이 죽었단 말이야?"라고 발언했다.
그 7차례의 지시를 대통령이 했는지 주위 참모들이 했는지 알 수가 없다. 직접 지시한 사람이라면 현장에 와서 그런 이야기를 못할 것이다. 뇌진탕 이야기가 왜 나오나. 복지부 장관에게 '뇌진탕 환자 몇 명이나 나왔나'라고 물어보니 '모른다'고 한다.
-그럼 당은 어디까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윤 대통령이나 정치권이 취해야 할 조치가 있다면?
윤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다. 대통령실은 이미 했다고 하지만 우리는 인정할 수 없다. 졸속으로 종교단체에 가서 하거나, 어디 회의 발언은 사과가 아닌 꼬리 자르기 변명밖에 안된다고 생각한다. 예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에서 어떻게 대국민 사과를 했나.
지금 유가족들은 현실을 인정하기 어려운, 경황이 없는 상황이다. 그때 상황을 보면 현장에서 구조에 급급한 것은 이해가 되지만, 그 상황에 대한 기록과 보전이 제대로 안 됐다. 유가족들 입장에선 피해자가 현장에서 사망했는지, 아니면 구조과정에서 사망했는지 등을 제대로 알아야 향후 국가소송 등으로 가더라도 충분한 근거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부분에 있어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전문가들 및 법의학자들과 논의해 이제는 이런 대형 재난 사고가 있을 때 무조건 장례절차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검안 및 부검 시스템을 구축해 피해 규명과 책임 소명 후 충분한 보상까지 갈 수 있는 프로세스가 만들어져야 한다.
◆"안전한 나라 구축에 전문성 다해 노력할 것...'착한 사마리안법' 추진"
-이제 차기 총선을 생각해야 할 것 같은데, 생각하고 있는 지역구가 있나.
비례대표는 분야 대표성을 갖고 국정 활동을 하는 것이기에, 우선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역할을 충실하면 다음 기회를 주실지 여부는 국민들께서 판단하실 것으로 본다. 저는 전반기에 이어 후반기 국회에도 보건복지위에 남아 재난과 감염병 등에서 안전한 나라를 구축하기 위해 제 전문성을 살리는 노력을 다할 것이다.
-1호 법안으로 '질병관리본부의 질병관리청 승격'을 발의했고, 이는 2020년 9월 현실화가 됐다. 또 어떤 법안을 준비하고 있나.
이제 우리나라는 감염병에서 안전한 나라뿐만 아니라 자연‧기후‧사회적 재난 등에 안전한 나라를 위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거기에 보건의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고, 관련 법안들을 만들려고 한다.
예전 제가 KTX에서 흉통 환자를 만나 긴급구호를 한 적이 있었다. 당시 응급의료가 필요한 상황에서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 없이 응급처치 등을 하는 경우 환자가 사망하더라도 형사책임을 면제하는 '착한 사마리아인법'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복지부 장관도 취지에 동의한다고 하니 우선순위 법안으로 가야 된다고 생각한다.
국토교통부 소관 사안이지만, KTX에 응급환자를 대비한 장비가 너무 취약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생체 징후를 측정할 수 있고, 적어도 산소를 공급할 수 있는 기기를 의무 구비할 법안을 같이 발의했다. 앞으로도 재난 상황에서 중요한 인프라와 시스템이 현장에 바로 투입될 수 있도록 풀어가겠다.
-마지막으로 국민들께 한 말씀 부탁드린다.
10‧29 참사로 여전히 우리 국민들께서 충격과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계시다. 우리나라는 정신 건강에 상당히 취약한 나라다. 자살률 1위라는 오명도 있다. 트라우마 치료에 있어 국가의 책임감 있는 돌봄 제공이 필요하다. 우선 치유와 위로의 시간을 충분히 다 같이 가지면서, 이번 참사를 공론화해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재난 등 위험에서 안전한 국가 시스템을 만들 것인지 사회적으로 같이 논의해야 한다.
이번 희생이 단순 희생이나 피해자 보상으로 끝나면 안 된다. 다음에 발생할지도 모르는 재난을 예방하기 위한 충분한 준비와 철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저도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 책임감을 갖고 정말 최선을 다해 의정 활동을 하겠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프로필 = △1980년 서울 출생 △가톨릭관동대학교 대학원 의학과 박사 △명지병원 가정의학과 과장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 △한미 젊은의학자 학술상 수상 △초선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보건복지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