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를 띠고 고개를 끄덕이는 시 주석의 얼굴이 카메라에 잡혔다. 숄츠 총리가 다음과 같이 말할 때였다. “저와 시 주석은 서로 합의했습니다.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며 협박하는 것은 무책임하고(unverantwortlich) 매우 위험하다(brandgefährlich)는 것을요.” 독일의 숄츠 총리가 지난 11월 4일 11시간 동안 중국에 머물며 시 주석 앞에서 했던 말이다. 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신속한 종결을 원하고 있다는 것도 서로 확인했다. 숄츠 총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UN헌장에 기초한 국제법을 위반한 러시아의 ‘침략 전쟁’으로 규정했고, 원자재, 에너지, 식량 등의 위기를 가져왔다고 비판했으며, 국제사회의 평화 질서가 무너진 상황에서 러시아를 견제할 수 있는 중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중국은 이러한 독일의 요청에 적극 동의했다.
숄츠 총리의 이러한 외교적 수사는 미국의 이해관계를 고려한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은 중국으로의 패권 전이에 민감하다. 미국은 트럼프 정부 이후 정치, 경제, 기술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을 고립시키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최근의 IRA 법안의 실행도 중국을 세계경제의 가치사슬(value chain)로부터 탈동조화(decoupling)시키는 전략이다. 이에 대해 중국은 ‘해양비단길’을 개척하고 있다. 숄츠 총리가 중국을 방문하기 전에 중국 국영 해운사인 코스코(COSCO)가 독일 함부르크 항만에 대한 지배 지분 35%를 확보하려고 하자, 미국이 반대하고 나섰다. 그래서 숄츠 내각은 코스코의 지분을 24.9%로 축소했다. 숄츠 총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대변함으로써 중국 방문의 외교적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했던 것이다.
숄츠 총리는 이번 방중으로 국내와 독·중관계를 고려하는 ‘양면 게임(two level game)’을 넘어 미국 및 유럽연합까지 고려하는 ‘다면 게임(multi-level game)’을 시도했는데, 그렇게 고난도의 외교 게임을 시도한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독일의 경제성장 시스템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독일의 경제성장은 미국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보장하는 군사적 안정, 러시아의 저렴한 가스, 중국의 저렴한 원자재(raw material)에 기초했다. 저렴한 에너지와 원자재가 생산성이 높은 독일의 제조업과 결합되었고, 누구나 신뢰하는 ‘메이드 인 저머니’가 세계에 수출될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의 값싼 에너지를 잃어버린 상태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디커플링으로 중국까지 잃어버리면 독일의 제조업은 동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숄츠 총리는 다양한 경제계 인사와 함께 방중에 올랐던 것이다. 중국에 진출해 있는 폭스바겐(Volkswagen), 지멘스(Siemens), 도이치방크(Deutsche Bank), 바스프(BASF), BMW, 아디다스(Adidas), 베이어(Bayer) 등 독일의 제조업, 금융, 화학, 제약, 스포츠 기업의 경제사절단이 중국의 디커플링에 따른 독일의 경제활동 문제를 협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려고 했던 것이다. 나아가 중국으로부터 독일로 수입되는 원자재의 원활한 공급망이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려고 했다. 예컨대, 바이오엔테크(BioNTech)의 코로나 백신이 신속히 중국 당국의 승인을 받아 중국의 코로나 퇴치에 사용될 수 있도록 했고, 중국항공기재그룹이 에어버스의 여객기 140대(약 24조원)를 구매하기로 했다. 특히 에어버스의 수주는 유럽연합 회원국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경제적 이득이었다.
숄츠의 방중은 ‘자국우선주의(Germany first)’ 또는 ‘독재를 용인하는 신호(signal)’라고 회자된다. 하지만 숄츠는 글로벌 위기 상황과 시 주석의 3연임의 시점에서 중국과의 대화가 필요하다고 여겼다. 중국의 고립화와 대만 문제는 독일과 유럽에게 민감한 문제이기도 했다. 숄츠는 실용주의를 실천했다. 그는 중국과 분리를 원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의존도 원하지 않았다. 자국과 유럽의 경제가 돌아가도록 가치사슬의 맥락에서 중국과 협력을 원했다. 그는 자신이 함부르크 시장을 지낼 때부터 알았던 시 주석과의 인연을 활용하여 중국과의 신뢰를 구축하고자 했다. 숄츠의 11시간 다면게임-실용외교는 시 주석의 중국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중국은 독일을 지렛대로 미국의 디커플링으로부터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 셈이다.
숄츠의 방중을 지켜보며 우리나라의 외교를 생각해보았다. 숄츠 총리가 10시간 타고온 비행기가 우리나라에 대기했을 만큼 중국과 우리나라는 지리적으로 가깝다. 우리와 중국의 경제적 상호의존성은 독일과 중국의 상호의존성보다 깊으면 깊었지 그보다 못하지는 않다. 우리와 미국의 군사적, 경제적 관계도 독일과 미국의 관계와 거의 동일한 수준이다. 독일에게 미국과 중국이 필요하듯, 우리에게도 미국과 중국이 필요하다. 하지만 외교의 차이점이 있다. 독일은 국익을 위해 10시간을 날아와 중국을 방문하는데, 중국과 1시간 거리에 있는 우리는 자국을 위해 여전히 미국의 눈치만 본다. 격동의 시기에 외교는 자국의 문제를 해결하는 스마트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외교가 독일에 앞서 베이징으로 날아가지 못했던 아쉬움이 남는다.
숄츠의 방중과 관련해서, 하나 더 생각해 볼 사안이 있다. 숄츠 총리가 중국을 방문할 때 독일의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이 우리나라와 일본을 방문했다는 점이다. 이는 숄츠 총리의 방중에 쏠린 세계 여론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효과도 있었지만 그 역시 철저히 독일의 국익 차원을 반영한 외교였다고 볼 수 있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독일 연방하원 의원, 경제계와 문화계 인사 등 60명과 함께 방한했다. 그는 2박 3일 동안 우리나라에 머무는 동안 삼성 평택 캠퍼스와 기초과학연구원(BIS)을 방문했다. 독일은 차량용 반도체와 관련해서 우리나라의 반도체 생산설비에 관심이 있었고, 탄소중립을 위해 양국의 기초과학 차원에서 협력을 강화하고자 했다. 이처럼 대통령과 총리는 철저히 역할 분담을 하며 실용외교를 극대화했던 것이다.
장준호 필자 주요 이력
△독일 뮌헨대(LMU) 정치학 박사 △미국 UC 샌디에이고 객원연구원 △경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