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수교 30주년 특별 기고] 영화 인생(Lifetimes) 그리고 음수사원(飮水思源)

2022-10-04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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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올해는 1992년 8월 24일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지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삼십이립(三十而立)'이라는 말이 있듯이 한·중 양국 관계의 우호와 협력을 다져야 하는 시기가 됐습니다. 한국과 중국 수교 30주년을 맞아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며 앞으로 뜻을 함께하자는 취지로 각계 저명인사의 깊이 있는 견해가 담긴 글을 본지에 싣게 되었습니다. 지난 30년은 한·중 양국이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나가고 경제 파트너로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는 등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에 적지 않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한국과 중국은 함께 많은 역경을 이겨왔습니다. 한·중 관계는 이제 새로운 기점에 서 있습니다. 

이번 기고 릴레이에는 한·중 수교 과정의 경험담부터 한·중 교류를 위해 현장에서 땀 흘린 여러분들의 이야기까지, 양국 수교 30주년의 역사가 생생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다가오는 30년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가득히 담겨있습니다. ​한국의 북방외교와 중국의 개혁개방 그리고 세계사의 변화에 순응하는 한·중 수교는 우리들의 소중한 역사이기에 독자들에게 이 글이 한·중 관계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윤준필 작가[사진=한·중수교 30주년 기념사업준비위원회]

필자는 국민학교를 입학해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국민학교에서 반공(反共) 대회가 때마다 열렸다. 당시 공산당은 양의 탈을 쓴 늑대로 묘사되었다. 이렇게 대학생이 된 필자는 캠퍼스를 거닐며 자유를 맘껏 누렸다. 한때 영화감독을 꿈꾸었던 필자는 ‘인생(人生)’ 한자로 표기된 낯선 대자보에 끌렸다. 영화 포스터도 붉은색 글씨다 보니 어린 시절 반공(反共)이 떠올랐다. 더위를 피하는 마음으로 서둘러 영화상영장으로 향했다. 그날 이후 필자의 인생이 어떻게 바뀔지도 모른 채.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인생’을 본 후 필자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족의 인생을 통해 ‘희로애락’을 모두 표현했고 나는 공감할 수 있었다. 아니다. 분명 필자가 어린 시절 배운 공산당과 달랐다. 20년 동안 배운 것이 영화 한 편에 와르르 무너졌다. 영화에서 이념과 정치는 보이지 않았고 사람과 감정만 보였다. 

영화 ‘인생’으로 시작해 초한지, 홍루몽, 중국 교환학생, 한중청년국제교류, 한중우의림사업, 공공외교 석사, 양꼬치와 맥주 그리고 첫 직장 금호아시아나그룹까지. 청년 시절은 한·중 관계의 열매를 누리기에 풍요로웠다.

청년 시절 돌이켜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은 ‘음수사원(飮水思源)’이다. 지금 필자의 삶이 있는 이유가 누군가의 수고인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양국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했다. 그들 덕분에 필자가 행복한 청년 시절을 보냈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 세계관이 넓어졌다. 또한 한·중 수교가 이뤄지게 한 양국 지도자와 교류사업 참여한 수많은 기관의 담당자와 활동가 그리고 참가자들이 힘을 기울인 덕분에 지금의 필자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우물물을 마실 때 그 우물을 판 사람을 기억해야 한다. 필자는 여기에 하나를 덧붙이고자 한다. 우물물이 마르지 않도록 우리는 다음 사람을 위해 마중물을 남겨놓아야 한다. 우물을 힘들게 파신 앞선 세대의 수고로 필자는 청년 시절을 행복한 추억으로 채웠다. 이제 40대가 된 필자는 다음 세대를 위해 한국과 중국의 마중물을 남겨놓아야 하지 않을까? 마중물을 없애지 않고 그 우물물을 누구나 마실 수 있도록 말이다.

 “네가 어른이 되면 비행기나 기차를 타고 다닐 거야. 그때가 되면 세상 살기가 지금보다 좋아질 테니까” 영화 인생의 마지막 장면에서 손자와 대화하는 부귀의 대사이다. 부귀의 말처럼 우리는 더 좋은 세상에 살게 되었고, 그때보다 더 나은 한‧중 간의 그 무언가를 새로이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지혜가 우리 한국과 중국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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