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수리남' 수사검사 "이제는 마약수사 난항...한국판 마약청 설치해야"

2022-09-20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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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준 수사팀, 7년간 조봉행 검거작전..."숱한 난관 뚫어"

"물 같은 히로뽕이니까, 물뽕?"...마약 전문 검사로 '활약'

"우리나라 더 이상 마약청정국 아냐...마약청 설치 필수"

"수리남에서 끌어내야 하는 게 가장 큰 난관이었을 것입니다. ('밀당'이라는 걸 하나요?) 밀당 이뤄지죠. 마약 거래할 때 분위기 잡는 선수가 있어야 할 거 아니에요, 수리남의 하정우처럼."

남미와 유럽을 무대로 시가 1600억원어치 코카인을 밀매해온 마약사범을 구속기소한 2011년 서울중앙지검 강력부 수사팀. 

당시 부장검사 김희준 엘케이비앤파트너스 대표변호사(55·사법연수원 22기)가 이끌었던 강력부는 한국인 출신 '국제마약왕' 조봉행을 7년간 끈질기게 쫓았다. 조봉행은 국내에서 10억원대 사기를 저지른 뒤 수사망이 좁혀오자 수리남으로 도주한다. 수리남 국적을 취득한 조봉행은 약 20년간 수리남 대통령을 비롯해 각종 인적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남미 최대 마약조직인 '칼리카르텔'과도 연계되기에 이른다. 이 사건이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을 통해 재연되며 김 대표의 마약 수사 히스토리와 한국의 마약 실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김희준 법무법인 엘케이비앤파트너스 대표변호사가 지난 19일 엘케이비앤파트너스 회의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 김희준 수사팀, 조봉행 검거 작전과 3가지 난관
실제 조봉행 검거 현장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았다고 말한다. 수리남에 있는 조봉행을 브라질에서 검거해야 하는 것이 김희준 수사팀이 맞닥뜨린 첫 번째 난관이었다. 김 대표는 "수리남은 국제 형사사법 공조조약 체결이 안 돼 국제 협조가 가능한 나라로 이끌어 내야 했다"며 "그래서 브라질에서 거래를 하자고 유도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수사팀은 인터폴 적색수배와 범죄인 인도 과정을 거쳐 결국 조봉행을 상파울루 공항에서 체포했다.

하지만 이내 또 다른 '높은 벽'에 부딪쳤다. 체포 직후 48시간 이내에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는 우리 형사소송법 때문이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 비행기에 태우는 순간부터 체포 시한이 시작된다. 그런데 브라질에서 우리나라까지 데리고 오는 데만 해도 시간이 엄청 가버리는 것"이라며 "조사할 시간이 부족한데 조씨가 범행을 순순히 다 자백을 한 것도 아니다"고 회상했다.

이 사건은 외국인이 외국에서 저지른 범죄라는 점도 수사팀을 곤란하게 했다. 김희준 수사팀은 머리를 맞대고 법리를 고민한 끝에 해답을 찾아낸다. 김 대표는 "원칙적으로 우리나라 사람이 외국에서 우리 법률에 위반되는 범죄를 저지르거나 외국 사람이 우리나라 영토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처벌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외국인이 외국에서 저지른 범죄"라며 "형법 5조에 외국 사람이 외국에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을 두고 있는 범죄들이 있는데, 그 규정을 근거로 우리가 처벌을 했다"고 설명했다.
 
◆ "물 같은 '히로뽕'이니까 물뽕?" 마약 전문 검사로 '활약'
김 대표는 1998년 광주지검 근무 당시 속칭 '물뽕(GHB)'을 최초로 적발해 이를 마약류로 등재한 인물이다. 김 대표는 당시 필로폰(속칭 히로뽕) 밀매 사범이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에 나섰다. 마약 구매자를 가장해 접근했는데 범인들이 개당 4000만원짜리 생수통 두 개를 들고 왔다고 한다. '물 아니냐?'고 묻자 범인은 '요즘은 필로폰을 액체 형태로 만든다'고 답했다. 국과수에 검증을 요청하니 돌아온 답변은 역시나 물. 김 대표는 "마약사범을 잡았는데, 마약 판매한다고 소비자를 기망한 사기범이 될 뻔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한 달 후 미국에서 받아본 감정 결과를 통해 결국 압수한 생수통에 든 액체가 GHB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GHB는 1990년대부터 미국과 유럽 등에서 성범죄용으로 악용돼 '데이트 강간 약물'로 불렸고, 2000년대부터 미국에서 규제약물로 통제된 마약이었다. 브리핑에서 '마약 종류가 무엇이냐'는 기자들 질문에 그는 "물 같은 히로뽕이니까 물뽕?"이라고 답했다고 일화를 소개했다. 2011년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장으로 재직할 당시에는 법령 개정을 건의해 수면마취제로 사용돼온 프로포폴을 마약류로 등재하는 데도 기여했다.
 
◆ "우리나라는 더 이상 마약청정국 아니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마약청정국'이라는 허상에 빠져 있다고 그는 진단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마약류 범죄계수(인구 10만명당 마약사범 수) 31명을 기록했다. 이 숫자가 20명을 넘기면 마약 범죄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위험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반대로 숫자가 20명보다 낮으면 통상 '마약청정국'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는 더 이상 '마약청정국'이라고 부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김희준 법무법인 엘케이비앤파트너스 대표변호사가 19일 엘케이비앤파트너스 회의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그는 "어떻게 공급망을 잘 차단하느냐. 그것이 마약을 근절하는 핵심 포인트다. 아무리 수요가 있다 하더라도 그 공급망을 잘 차단하면 마약 유통을 막을 수가 있는 것"이라며 "그런데 요즘은 SNS나 구글을 통해 젊은 층 사이에 마약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약 10년 전에는 40대가 마약사범으로 적발된 비율이 높았는데 작년에는 그게 20대로 내려갔다"며 "그만큼 마약 연령층이 낮아졌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마약사범을 잡아서 처벌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청소년을 상대로 마약 예방 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마약수사를 전담으로 하는 마약청 설치를 통해 마약에 접근하는 것부터 막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대표는 "어릴 때 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청소년 시기 마약 예방 교육을 철저히 해야 한다"며 "마약범죄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마약청 설치 등 범정부 차원에서 종합대책을 마련해 실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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