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간 운영·보존과정 담은 아카이브 기획전 '다다익선: 즐거운 협연'

2022-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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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이정성·폴 개린 등 관련 전문가 7인 구술 인터뷰 공개

백남준 탄생 90주년…내년 2월 2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왼쪽부터 남중희, 백남준, 김원. 1986년 국립현대미술관 방문 모습. [사진=국립현대미술관]

“로톤다(Rotonda·원형건축)가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과 비슷하네요.”

누군가의 지나가는 말 한마디가 대작 ‘다다익선’의 시작이었다.

1984년 고(故) 백남준이 30여년 만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둔 정부는 과천에 국립현대미술관을 건립하고 있었다. 건물이 완공됐을 때 나온 구겐하임과 비슷하다는 말로 비상이 걸렸다. 건물이 아닌 작품에 시선이 머물게 해야 했다. 백남준이 나섰다.

4년 7개월 만의 재가동을 기념해 ‘다다익선’의 설치 배경부터 완공, 현재까지 운영하는 과정에서 축적된 아카이브 200여점과 구술 인터뷰로 구성된 기획전 ‘다다익선: 즐거운 협연’을 오는 2월 26일까지 과천관에서 개최한다. 올해는 백남준 탄생 90주년이다.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던 백남준은 1984년 35년 만에 고국을 방문하며 이후 한국에서의 활동 기반을 넓혀 나갔다.

‘다다익선: 즐거운 협연’은 텅 빈 공간에서 시작해 백남준의 가장 대규모 비디오 설치작품인 ‘다다익선’이 국립현대미술관에 설치되고 현재까지 운영되는 과정을 소장 아카이브 중심으로 보여주는 첫 기획전으로 그간의 연구 성과를 반영하고 있다.

‘즐거운 협연’이라는 부제는 백남준이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며,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이 함께하는 최초”이며, “신구세대 앙팡 테러블들의 즐거운 협연”이라고 설명한 표현에서 착안한 것이다.

이는 음악가, 무용가, 건축가, 엔지니어 등 수많은 협력자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어온 작가의 창작 태도를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의미인 동시에, 국립현대미술관에 ‘다다익선’을 설치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서로 협업했는지를 보여주는 이번 전시의 의도를 반영한다.
 

'다다익선' 건설 공사, 1988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출품작 중 ‘한국으로의 여행 Trip to Korea’(1984)는 백남준이 1984년 김포국제공항에 도착해서 취재진과 팬들에게 인사하고 마중 나온 가족들과 함께 선친을 모신 산소를 찾아가는 여정을 기록한 영상작품으로 그의 한국 활동의 서막이 오르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으로서 의미가 깊다.

이 영상을 시작으로 전시장에는 ‘다다익선’과 관련된 소장자료 200여점과 ‘다다익선’과 관련 있는 인물들, ‘다다익선’을 설계한 건축가 김원, 백남준 작품 테크니션 이정성, 뉴욕에서 영상을 직접 제작한 폴 개린, ‘세계와 손잡고’의 한국 연출을 맡은 KBS PD 박윤행, 예산확보부터 행정을 총괄한 기계기사 남중희, ‘다다익선 모니터 운영요원’으로 오랜 시간 작품을 관리한 안종현, ‘다다익선’ 최초 설치 당시 학예업무를 총괄한 전(前) 학예실장 유준상의 인터뷰를 연관된 아카이브와 함께 상영한다.

영상 속 김원은 “백남준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천재였다”며 “‘행위라는 것은 금방 지나가고 없다’는 말과 함께 즉흥성을 강조했다”고 회상했다.

또한 4채널 영상작품인 ‘다다익선’을 위해 제작된 영상 8점을 처음으로 모두 상영한다. 

영상에서는 동대문, 남대문, 고려청자, 한복 등의 이미지와 파리의 개선문, 파르테논 신전, 뉴욕의 빌딩들이 교차하다가 어우러지고 하나로 추상화되는 장면이 주를 이룬다.

또 1986 아시안 게임과 자동차 경주 장면, 샬롯 무어만, 요셉 보이스, 머스 커닝햄, 류이치 사카모토 같은 예술가들의 공연 장면이 삽입되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동서양의 소재가 어우러지고, 국경이 없는 스포츠와 예술이 서로 소통하는 것은 폭력성과 오락성 너머 미디어가 가진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표현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1988년 9월 15일 최초 제막했던 ‘다다익선’은 긴 세월을 살았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다다익선’의 완공 이후 현재까지 34년 동안 작품을 운영해 오면서 발생했던 화재, 모니터 고장 등 운영상의 문제에 국립현대미술관이 어떻게 대처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기록과 연구 성과, 또 최근의 대대적인 보존·복원 과정을 한 편의 기록영상으로 제작해 다소 낯선 미디어아트의 보존 처리 과정을 관람객들에게 쉽게 전달하고자 했다.
 

 '바이 바이 얼리버드', 2022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조금 다름”을 강조했던 백남준의 작품과 삶은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줬다.

특히 백남준의 활동과 구술기록, 연주 등 아카이브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해 작가와 작품이 새롭게 해석되고, 관객과 소통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날치의 음악감독 장영규는 백남준이 직접 연주한 곡을 한국 고전설화의 주인공 심청과 춘향의 심경에 비유한 사운드 설치작품 ‘휘이 댕 으르르르르 어헝’(2022), 영상감독 이미지는 ‘바이 바이 얼리버드’(2022), 조영주는 이원 중계기를 이용한 라이브 퍼포먼스 ‘디어 마이 아티스트’(2022)를 신규 제작하고, 우종덕은 미디어아트의 복원을 주제로 한 미디어설치 작품 ‘다다익선’(2020), 이은주는 백남준의 지인으로서 백남준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포착한 초상사진과 미공개 음원 아카이브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더불어 ‘다다익선’ 재가동을 계기로 전위적인 비디오아트의 영역을 개척한 백남준과 1990년대 한국 현대미술 영향관계를 심도 있게 조망하는 대규모 기획전 ‘백남준 효과’를 오는 11월 9일 과천관에서 개막할 예정이다.

‘백남준 효과’는 작가로서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문화 기획자이자 번역자로서 백남준이 한국 동시대 미술사에 남긴 발자취를 짚어보는 전시로, 백남준의 1990년대 대표작들을 포함하여 총 30여명 작가들의 작품 120여점을 선보일 예정이다.

특히 전시는 백남준이 국립현대미술관과 합작하여 기획한 ‘비디오때 비디오땅’(1992), ‘휘트니 비엔날레’(1993) 전시의 주제들을 차용하여 백남준의 주요 작품과 거장의 영향력 안에서 성장하여 한국 동시대 미술을 이끌었던 이후 세대 작가들의 작업들을 함께 조명하고, 이를 통하여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에서 백남준이 만들어낸 효과를 확인한다.

또한 국내·외 전문가 9명이 참여하는 국제학술심포지엄 ‘나의 백남준’을 11월 18일 과천관 대강당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하고, 재단법인 유중문화재단에서 후원하는 본 심포지엄은 백남준 탄생 90주년을 기념하고, 그의 생애 및 예술 업적을 조명한다.

백남준의 예술작업을 아카이브를 통해 조명하는 ‘백남준에 대한 기억’, 미술사, 재료 및 테크놀로지의 맥락에서 백남준 작품 보존에 대해 탐색하는 ‘미디어아트와 보존’, 백남준 예술의 영향과 후대 예술가의 과제에 대해 생각해보는 ‘백남준의 영향’을 주제로 한 각 세션(모둠)은 백남준 작가를 중심으로 한 다각적 해석 및 이해를 높이기 위한 각 발제자의 발표로 구성된다.

매 세션에 이어 깊이 있는 토론이 진행되며, 이를 통해 국내·외 ‘백남준 연구’의 현재와 미래를 살피는 계기가 될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대강당에서 종일 대면으로 진행하며, 10월 이후 국립현대미술관 누리집에서 사전 예약을 통해 무료로 신청할 수 있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백남준 작가의 생애 및 예술적 업적을 기리는 전시, 국제학술심포지엄 등 백남준 연구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과 환기를 통해 한국미술의 다양성을 전 세계에 전송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은주, '드로잉하는 백남준', 2000 [사진=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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