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로 당뇨병 치료한다"...3세대 신약 '디지털 치료제' 어디까지 왔나?

2022-09-15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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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헬스케어 VR(가상현실) 기기 체험 모습 [사진=연합뉴스]

'오큘러스' 같은 VR(가상현실) 기기로 질병을 치료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지 않아도 소프트웨어나 디지털기기를 이용해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는 것이다. ‘머리로 먹는 약’ ‘제3의 신약’으로 불리는 디지털 치료제(Digital therapeutics, DT)가 그것이다.
 
디지털 치료제는 보통의 의약품처럼 임상시험을 통한 치료 효과 검증, 규제 당국의 심사, 의사의 처방, 보험 적용을 거치지만, 인공지능, VR, 챗봇, 게임, 애플리케이션 등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무형의 소프트웨어다. 치료제라고 불리지만 사실상 의료기기로 분류된다.
 
◆ 디지털 치료제, 글로벌 시장 올해 5조1900억원 기록...연평균 20% 성장 예상 
국내에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승인한 디지털 치료제가 아직 없지만 미국에서는 FDA(식품의약국) 승인 신약이 대거 나오며 시장이 급성장하는 추세다. 아스트라제네카, 사노피 등 글로벌 빅파마들이 디지털 치료제를 미래 먹거리로 선정하고, 관련 개발사와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15일 국가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의 ‘디지털 치료제 산업 동향 및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디지털 치료제 시장 규모는 올해 38억8000만 달러(약 5조1895억원) 정도다. 하지만 이후 연평균 20.5%씩 성장해 2030년에는 173억4000만 달러(약 23조1922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디지털 치료제 시장 규모는 1억2000만 달러로 세계 시장의 약 30분의1 수준에 불과하지만 향후 꾸준한 성장이 예상된다.
 
2017년 9월 미국 FDA가 페어 테라퓨틱스의 '리셋'을 최초로 허가하면서 디지털 치료제는 시장에 공식 등장했다. 당시 399명을 무작위로 뽑아 대조한 결과, 리셋을 병행해 치료한 환자의 약물중독 치료 효과는 16.1%로, 약물만 쓴 환자(3.2%)보다 5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디지털 치료제는 초기 우울증 치료에 많이 쓰이다 최근에는 당뇨·고혈압 같은 만성질환은 물론 조현병,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금연치료 등 다양한 분야로 확산 중이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증상을 치료하는 디지털 앱 ‘프리스피라’, 만성 불면증 환자를 위한 ‘솜리스트(Somryst)’ 등이 대표적이다. 일본 오츠카제약이 개발한 항정신성 약물인 ‘아피졸’에 전자 센서를 삽입해 환자의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아빌리파이마이사이트’도 유명하다.
 

디지털 치료제 글로벌 시장 규모 [자료=국가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

국내에서도 개발에 참여하는 업체가 늘고 있다. 식약처에 따르면 불면증·불안장애 개선 등 13개 제품이 임상시험계획을 승인받아 임상을 진행 중에 있다. 제약바이오업계에서는 한미약품, SK, 동아제약, 한독 등이 디지털 치료제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기업으로 꼽힌다.
 
먼저 한미약품그룹과 KT는 최근 디지털 치료제 전문기업 ‘디지털팜’에 합작 투자를 결정했다. 디지털팜은 김대진 서울성모병원 교수가 창업한 회사로 알코올, 니코틴 등 중독 관련 분야와 ADHD 분야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한다.
 
SK의 신약 개발 계열사 SK바이오팜도 지난 5월 공동으로 미국 디지털 치료제 기업 ‘칼라헬스’에 투자했다. SK바이오팜은 칼라헬스와 협력을 바탕으로 중추신경계질환에 집중된 신약 개발 역량을 디지털 치료제 분야로 확대하고 있다. 동아쏘시오홀딩스와 한독 역시 각각 디지털 치료제 개발을 위해 메디컬아이피, 웰트에 지분을 투자하고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했다.
 
또한 뉴냅스, 라이프시맨틱스, 에임메드, 웰트, 하이 다섯 곳이 최종 임상인 확증 임상 진행 중이다.
 
학계와 정부에서도 기술개발에 뛰어드는 추세다. 지난해 10월 김재진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중심으로 디지털 치료제 검증을 위한 디지털치료학회가 출범했고 정부도 디지털 치료제 플랫폼 개발을 위해 향후 4년간 정부 140억원, 민간 149억원 등 총 289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관계자는 "디지털 치료제를 포함하는 디지털 헬스케어의 산업 생태계는 소프트웨어 기업, 하드웨어 제조업, 서비스 기업, 정부 부처(제도 규제, 제정)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형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 디지털 치료제 선두주자 '미국', FDA 승인 신약만 20개 달해...국내 상황은?
하지만 미국과 비교하면 아직 국내 시장은 초기 단계다. 미국에서는 현재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약물중독 등 20종에 달하는 디지털 치료제가 FDA의 허가를 받고 환자에게 사용되고 있다.
 
프로스트앤설리번의 시장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 세계에서 디지털 치료제 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미국(41.5%)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과 이미 40% 이상 시장 격차가 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미국에서는 세계 최초로 디지털치료제에 보험코드 부여도 결정됐다. 일반 의약품과 같이 의사 처방 후 약국에서 조제해 청구하는 시스템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보험코드가 부여된 것은 페어 테라퓨틱스의 3개 제품으로 약물 사용 장애(SUD), 오피오이드 사용 장애(OUD), 만성 불면증에 대한 치료제다.
 

디지털 치료제 종류 [자료=KDB미래전략연구소]

해당 제품의 구체적 기전을 보면 ‘리셋(reSET)’은 외래 환자 처방 약물 사용 장애에 대한 디지털 인지행동 요법, ‘리셋 오(reSET-O)’는 OPIOID(아편유사제) 사용 장애에 대한 외래 처방 디지털 인지 행동 요법, ‘솜리스트(Somryst)’는 만성 불면증에 대한 외래 처방 디지털 인지 요법 치료제다. 사용 기간은 모두 12주다.
 
이처럼 미국이 해당 연구 개발에서 앞서갈 수 있는 건 FDA에서 혁신 의료기기에 적합한 법제를 마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FDA는 '21세기 치료 법안(The 21st Century
Cures Act)'에 의거, 디지털 치료제 일부를 규제 대상에서 제외했고, 그 후 혁신 의료기기의 신속한 심사가 가능해졌다. '디지털 헬스 혁신 계획'을 통해 실사용 데이터가 임상시험 결과를 대체하는 ‘선-판매승인, 후-검사’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국내 제도적 상황은 어떨까. 국내에서도 '의료기기산업 육성 및 혁신의료기기 지원법'이 제정되어 ‘단계별 심사 제도’의 도입 등 혁신형 의료기기 기업과 혁신 의료기기의 지정 및 지원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지만 디지털 치료제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은 없는 상황이다.
 
디지털치료학회 관계자는 “최근 5년간 디지털 치료 관련 정부 R&D 투자가 연평균 25% 수준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이런 투자가 반짝 지원에 그치지 말아야 한다”며 “디지털 치료제가 보편화되면 환자들이 자신의 질환을 관리할 수 있게 되고, 의사들도 객관적인 데이터로 효과적 치료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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