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수의 절차탁마] 인문학, 노동을 예술로 꽃피울 수 있다

2022-09-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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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수 건설노동자]

지난 9월 1일 건설회관에선 ‘스마트건설안전 관리체계의 고도화’라는 주제로 한국공학한림원 주최의 포럼이 열렸다. 중대재해법 시행 후 건설산업현안에 대한 시의성 있는 대책을 모색하고 4차산업혁명이라 일컬어지는 스마트시대 건설 안전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보는 시간이었다.
시대가 많이 변하고 발전해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것도 이제는 그저 막노동( 어떤 기술이나 기능이 없어도 힘만 있으면 일할 수 있다는 의미의 노동)이 통용되지 않는 전문인력을 요구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건설현장은 위험하고 거친 노동이기 때문에 사고도 자주 일어나고 사망자수도 타 산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사고와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해 규제법안이 최근에 또 만들어졌다. 기존의 산업안전법보다 규제와 구속력이 더 큰 중대재해처벌법을 시행하고 있지만 건설업주에게는 건설의욕을 떨어뜨리고 근로자들은 간섭만 많아졌다고 불만의 소리가 높다. 실제 이 법안이 시행되고 나서 건설현장에 사고가 줄어들었는가를 보면 효과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현장의 비용증가와 근로자와 사용자 간의 갈등만 더 높아졌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근로안전의 위협증가와 IT기술 접목
우리 사회의 고령화는 산업안전에도 큰 위협요인이 되고 있다. 연령별 건설근로자 비율을 보면 2014년에 40대가 32%, 60대가 14%였다면, 2020년엔 40대가 24%로 줄어든 반면, 60대가 20%로 더 늘어났다. 숙련인력 수급을 보면 2014년엔 수요 72.8만명에 공급이 68.7만명이었다면 2019년 통계엔 수요가 73.5만명에 공급이 59.4만명으로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인력보충을 위해 해외에서 공급되는 외국인노동자가 늘어나고 있지만 숙련도에 문제가 있고 최근 코로나사태로 인해 그마저 용이치 않은 게 현실이다. 이러한 근로자 공급은 건설업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농업을 비롯한 한국 전 산업에 나타나고 있다.

우리 사회는 고령화사회를 넘어 현재는 고령인구가 전체의 14%를 넘는 고령사회로 진입했다. 현재 저출산과 고령화가 맞물려 초고령사회(고령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가 되는 것은 2~3년도 남지 않았으며 2048년께는 세계에서 가장 나이 든 나라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고령화와 숙련공의 저하는 노동현장 사고와 사망사고의 큰 위협요인으로 점점 더 그 위험성은 증가할 것이다.

이런 변화에 우리 사회는 IT기술과 데이터 집적을 통한 AI기술로 인력을 로봇이나 사무자동화로 빠르게 대체해 나가고 있다. 산업재해율이 가장 높은 건설업계는 이에 대한 수요가 가장 크게 일어날 전망이다. 특히 건설업 사고 사망자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다른 대안이 없을 듯하다. 건설업의 사고 사망자수를 줄이기 위해 정부는 그간 법률개정과 새로운 법안의 제정을 여러 번 했다. 최근 5년간 규제강화 위주로 4번의 산재예방대책, 산업안전법, 건설기준진흥법 개정, 중대재해처벌법 제정과 여러 건의 안전방안과 대책을 세웠지만 이러한 지속적인 규제강화에도 불구하고 건설업의 사망자수는 전체 산업의 50%에 해당한다. 이는 건설업 취업자수가 전체 산업인구의 7%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이니 젊은이들이 건설업을 기피하는 것은 당연할지 모른다.

이제 업계에선 건설현장이 인력에 의한 직접 시공에서 탈피해 공장에서 건축에 필요한 내용물을 미리 찍어내어 현장에선 조립만 하는 모듈화 및 자동화를 앞당길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도 대부분의 아파트 건설현장에서는 주차장에 해당하는 지하공간은 공장에서 이미 제작한 기둥이나 판을 조립해서 시공하고 있지만 일부 건설업체는 아파트 전체를 모듈로 조립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위험지역 공정은 로봇을 이용하거나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을 위한 웨어러블 장비연구도 상당히 진척된 것으로 알고 있다.
 
건설현장의 근로자 의식개혁이 중요
건설현장이 어느 정도 노동자를 대신한 로봇화나 사물인터넷을 통한 자동화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현장에선 근로자가 중심적 역할을 하는 것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건설기계의 스마트화에 필요한 기술개발 비용만큼 근로자들의 의식개선을 위한 교육비용에도 투자가 되어야 마땅하다. 우리가 더 안전하고 쾌적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 인간을 위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때로 노동자를 특별한 계층으로 생각하지만 이들도 그 사회의 일원이며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이며 가족이다.

나는 무엇보다 건설 근로자들에게 인문적 교육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막노동자라는 말에는 인문적 내용이 빠져 있다.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직업 윤리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없는 그저 막 사는 노동자로 보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막노동꾼들은 인문적 교육의 혜택을 가장 받지 못한 층이기도 하다. 이들의 성격이 원래 거친 것은 아니며 이들의 작업이 거친 것이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가장 긴요한 주거공간을 만들어 왔고, 도로 항만 등 국가 주요 인프라를 만들어 왔지만, 산업일꾼으로서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했다. 그간의 소외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일원으로서 사회적 진보에 맞게 재교육을 받는 게 부족했고 문화적 혜택이 적었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인문 사각지대에 있었지만 이들이 인문학의 혜택을 받아 이들의 의식이 새롭게 깨어난다면 오히려 이들이 우리 사회의 안전문화를 이끌어갈 주역으로 거듭날 것이다. 그래서 현장에서 안전교육과 더불어 인문학 강의도 포함해 주길 바란다.
 
근로자에게 인문학 강의가 필요
근로자에게 인문학 강의가 필요한 이유는 첫째, 생각의 힘을 키워줘야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작업자의 안전 의식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안전 의식이 있어야 안전한 태도와 자세가 나온다, 안전하게 작업하겠다는 안전의식이 우선이다. 건설현장은 정말 위험요소가 많다. 기초공사가 이루어지고 골조가 올라가기 시작하면 현장엔 삐져나온 철근, 튀어 나온 못, 거푸집 더미, 지게차의 운행, 타워크레인의 물자 이동 등이 동시에 이루어지며, 작업자들은 다양한 개인 작업도구와 자재이동을 위해 무리한 힘을 써야 하고 좁은 통로를 이동하려다 보면 부딪치고 넘어질 수 있는 위험한 환경이 많다. 신호수를 배치하고 안내표지를 해놔도 긴장하지 않으면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그런 상황이다. 그런데 현장 경험이 많다고 ‘난 괜찮아’ 하는 엉뚱한 자신감이 안전에 대한 정신무장 해제를 가져온다. 정신무장이 안되면 자세가 달라진다. ‘빨리 빨리’, ‘대충대충’, ‘요령껏’ 이런 태도는 생각하는 힘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다. 생각의 힘을 키워주는 것이 인문학이다.

둘째, 동료에 대한 배려심을 키워야 한다. 사람이 여유가 없으면 남을 위한 배려가 생기지 않는다. 여유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물질적인 요인보다는 정신적인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한다. 예를 들어 내가 지나는 통로에 못이 튀어나왔다고 하자. 자신이 그 못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면, 난 무사히 지나갔으니 괜찮다 해야 할까, 아니면 나같이 다른 사람도 위험해질 수 있으니 그 못을 제거해야겠다 하고 생각하면 망치로 두어 번 두드려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지만 하고 나면 마음속에 뿌듯함이 깃든다. 이걸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늘 불만으로 가득하다.

셋째, 현장에선 언제나 안전보호장구 착용이 몸에 배야 한다. 작업현장 출입을 위해서는 누구나 개인용 안전보호장구를 의무적으로 착용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이 안전장구를 착용하지 않는 사람은 신참 근로자보다는 오히려 경험이 많거나 노련한 근로자가 많다. 보호장구를 착용하지 않는 것이 노련함을 과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안전보호장구는 작업하는 데 불편을 준다. 특히 여름에는 안전띠를 착용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땀이 난다. 하지만 안전장구는 사고에 대한 미연 방지를 위해 그리고 위험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하도록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넷째, 감독관이나 안전요원의 지시를 무시한다. 작업현장에서 감독관이나 안전요원은 사실 근로자를 위해 존재한다. 나의 안전을 위해 나의 불안전한 행동과 위험요소를 지적 해주는 고마운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작업자에게 감독관은 귀찮은 존재로 여기며 피한다. 이들의 지적이 작업자의 경험이나 인격을 무시하는 것이 아님에도 많은 수의 노동자들은 안전에 대한 지적을 싫어한다. 감독관이나 안전요원과 싸우고 척을 지는 것이 불의에 저항하는 투사처럼 보이고 영웅처럼 보이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이것은 건설 현장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노동자에게 인문학 강의가 필요하다. 노동자에게 직업관을 심어주고, 삶과 세계를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고, 일을 통해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제대로 자기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면 그 나라는 문화민국이 되는 것이다. 노동자는 삶의 굴곡, 삶의 진한 면을 표현할 원재료를 보통 사람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다. 절차탁마라는 매우 아름다운 말이 있다. 이 말은 원래 자르고, 갈고, 깎고, 다듬는 노동의 과정을 일컫는 말이다. 노동자의 작업행위 자체를 말하는 것이었지만 지금 이 말에는 노동의 의미가 사라지고 인격도야나 학문수양만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노동자는 이 말에서 소외되었다. 주인이 되지 못한다. 노동을 하면서도 그 노동을 자기것화 하지 못한 것이다. 표현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표현은 배운 사람, 학문적 훈련이 된 사람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소외가 계속되니 결국은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지식인들과 대결을 벌이는 것이다.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노조활동은 더 투쟁적으로 되고 과격해지는 것이다.

단언하건대, 노동자에게 인문적인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현장은 안전을 넘어 노동을 예술로 꽃피울 것이다. 노동자가 작가가 되고, 화가가 되고, 가수가 되고 시인이 된다면 이 나라는 노동의 천국이 되는 것이다. 관념적 이야기나 남의 얘기가 아니라 자신의 삶과 노동을 에세이로 쓰고, 시로 그림으로 음악으로 표현하게 된다면 이 나라 국민의 지적인 풍토나 인문적 깊이가 얼마나 다양하고 풍부해질까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차다.

 

[<그라인딩, 하늘을 날다> 아파트 외벽에 페인트칠을 위해 벽을 갈아내는 견출팀의 그라인딩 작업. 로프에 의지해서 작업하는 매우 위험하고 어려운 작업이지만 보는 이에 따라서는 행위예술일 수도 있다. 작업자의 의식에 따라 그리고 사회에서 어떻게 대우해 주느냐에따라 우리 사회문화는 달라진다. -이두수 그림-]



필자 소개 - 이두수(54)는 5년 전부터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자신이 직접 체험한 노동 현장의 삶과 애환을 그림과 글씨로 표현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건설 노동자로 일하기 전 시민단체인 아프리카아시아난민교육후원회(ADRF)에서 8년간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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