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취임한 리즈 트러스(47) 영국 총리는 ‘정치적 카멜레온’으로 묘사된다. 외신들은 ‘영국 역사상 세 번째 여성 총리’, ‘최초의 40대 여성 총리’라는 묘사보다 ‘카멜레온'이라는 수식어를 더 많이 썼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는 트러스 총리는 여러 개의 이념적 모자를 썼다고 최근 평했다.
트러스 총리는 영국 옥스퍼드의 한 좌파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민영화, 작은 정부를 골자로 하는 경제 개혁을 이끈 대처 전 총리에 반대하는 시위에 어머니와 함께 참여했다.
옥스퍼드 대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중도 좌파 정당인 자유민주당의 학생회장을 맡아 군주제 폐지 등을 외쳤다.
대학교를 졸업한 뒤 1996년에는 보수당에 입당했다. 정치 신념을 완전히 바꾼 것이다. 과거 트러스 총리는 선거 유세에서 보수당 유권자들에 “우리는 모두 10대 시절에 불행을 겪었다”며 “어떤 이는 섹스, 마약, 로큰롤을 했고, 나는 자유민주당원이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 유부녀였던 트러스 총리가 10살 연상의 보수당 의원과 바람을 피웠다는 폭로는 그의 정치 생활에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나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 2010년에 하원의원으로 선출되며 보수당 국회의원이 됐다. 이후 2014년에 데이비드 캐머런 내각에서 환경부 장관을 맡으며 영국 역사상 최연소 여성 장관이 됐다. 이후 테리사 메이 내각에서 법무부 장관과 최초 여성 재무부 장관을 맡는 등 보수당 3개 내각에서 정부 요직을 두루 거쳤고, 40대에 총리직에 오르게 된다.
트러스 총리의 카멜레온적 면모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보수당 의원이었던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당시 트러스 총리는 영국이 유럽연합(EU)에 잔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그는 브렉시트는 “비현실적 몽상”이라며 “EU 탈퇴는 비극”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6년 후 그는 ‘브렉시트의 치어리더’가 됐다고 포린폴리시는 짚었다. 브렉시트가 통과되자 재빠르게 찬성파로 돌아선 것이다. 타임지는 “트러스 총리는 자신을 ‘무자비한 사람’으로 묘사하곤 하는데, 이야말로 그가 어떻게 보수당에서 상승 가도를 달렸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트러스 총리는 정치적 기회주의자”라며 “본인에게 유리하다면 어떤 입장으로든 신속하게 돌아설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선임 연구원인 벤 유다는 트러스 총리를 ‘대처-레이건식 해결책’을 추구하는 강경파라고 묘사했다. 그는 작은 정부와 시장 경제로 상징되는 '대처리즘'을 추앙하고 대처 전 총리의 의상이나 행동을 따라해 '젊은 마거릿 대처'에 비유되곤 한다. 10년 전 트러스 총리와 함께 일했던 데이비드 로스 전 장관은 회고록에서 "트러스는 놀라울 정도로 야심찼다"라고 회상했다.
트러스 총리가 직면한 문제는 산더미다. 역대급 인플레이션, 다가오는 경기침체, 치솟는 에너지 요금, 생활비 위기가 촉발한 파업 확산 등 그는 이 모든 것을 헤쳐 나가야 한다. 뉴욕타임스(NYT)는 “그는 에너지 위기와 브렉시트 여파로 흔들리는 국가를 통합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단지 보수당 당원 약 16만 명의 투표를 통해 당선됐으며,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유권자 과반의 지지조차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트러스 총리의 감세 정책과 정부 역할 축소 추진 등은 영국의 심각한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부적절하다는 비판도 상당하다고 NYT는 전했다. 인플레이션에 취약한 저소득 가구를 보호해야 하는 상황에서 감세 등은 정부 재정을 갉아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포린폴리시 역시 보수당 당원들 사이에서는 경쟁자인 리시 수낙 전 장관보다 인기가 있었지만, 전체 영국 유권자들의 마음을 잡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그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분석도 많다. 가반 월시 보수당 전 안보 정책 고문은 “사람들은 트러스의 목소리를, 트러스의 열정을 놀리지만, 그들이 깨닫지 못한 것이 있다”며 “그것은 바로 그가 지난 20여 년간 보수당의 중심에 선 매우 똑똑한 정치인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