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 3분의 1 잠겼다" 파키스탄…세계 면화 가격 상승세 지속 전망

2022-09-07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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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만에 폭우 닥치고 면화 농장 절반 물에 잠겨

세계 5위 생산국 파키스탄 홍수에 가격 100 달러 아래 어려울 전망


파키스탄이 말 그대로 '물 폭탄'을 맞았다. 30년 만에 내린 최악의 폭우로 국토 30%가 잠기고 이재민이 3000만명을 넘어섰다. 폭우로 농지도 망가지면서 곡물 시장까지 여파가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파키스탄 농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면화 가격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이 같은 폭우가 앞으로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홍수 피해 잠정치만 14조원, 재건에 5년"
 

지난 8월 30일 파키스탄 남서부 발루치스탄주 자파라바드의 소바트 푸르시가 홍수로 잠겼다 [사진=AFP·연합뉴스]

최근 파키스탄은 홍수로 국가 전체가 황폐해졌다. 파키스탄 정부 당국자들은 이번 홍수가 역사상 최악의 피해를 남겼다고 입을 모은다. 

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아흐산 아크발 파키스탄 개발계획부 장관은 지난 8월 30일 "최근 홍수 관련 피해에 대한 초기 잠정치는 100억 달러(약 14조원)를 훨씬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홍수로 인한 피해를 재건하는 데 5년이 걸릴 수 있다"며 "단기적으로는 심각한 식량 부족에 직면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같은 날 세리 라만 파키스탄 기후 장관도 영국 공영방송 BBC에 “파키스탄 국토 3분의 1이 완전히 물에 잠겼다”며 “국토가 마치 거대한 바다처럼 변했다. 물을 퍼낼 수 있는 마른 땅조차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아크발 장관은 이번 파키스탄 홍수 피해가 2010년보다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파키스탄에서 2010년은 홍수로 역사에 남을 큰 피해를 입은 해로 기억된다. 당시 파키스탄 국민 2000명 이상이 숨지고 국토 5분의 1이 물에 잠겼다. 하지만 이번 홍수로 잠긴 국토는 3분의 1 수준으로 2010년 당시보다 심각하다. 지난 1일 유럽우주국(ESA)이 공개한 코페르니쿠스 위성 사진은 "국토 3분 1이 물에 잠겼다"는 라만 장관 말이 사실임을 보여줬다. 

 

유럽우주국(ESA)은 코페르니쿠스 위성이 지난 8월 30일 촬영한 파키스탄 국토 사진을 지난 1일 공개했다. [사진=AFP·연합뉴스]

인명 피해와 이재민 현황은 훨씬 심각하다. 몬순 우기로 불리는 6월부터 이번 폭우까지 누적 사망자 수는 1314명으로 집계됐다. 이 중 약 3분의 1인 458명은 어린이인 것으로 전해졌다. 파키스탄 당국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가옥 약 150만채가 파손됐고 이재민은 3300만명에 달한다. 3300만명은 파키스탄 인구(약 2억3000명) 중 15%에 달하는 수준이다. 

당장 이재민을 위협하는 것은 수인성 질병이다. 사회 인프라가 마비돼 깨끗한 물이 공급되지 않고 있다. 일부 지역은 화장실마저 없어서 그 틈을 수인성 질병이 파고들고 있다. 파키스탄 남부 신드주에서만 이미 70만명 이상이 수인성 질병에 시달린 것으로 파악됐다. 

전문가들은 대표적인 수인성 질병인 콜레라, 이질, 장티푸스 등이 추가 확산될 것을 우려한다. 홍수 피해 현장을 살펴본 수질개선 국제지원기구 워터에이드의 파키스탄 지국장인 아리프 자바르 칸은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깨끗한 물이 부족하기 때문에 설사와 이질 위험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수인성 질병 확산의 심각성을 근거로 긴급 의료 구호 활동비 1000만 달러를 할당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도 파키스탄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과 질병 모니터링, 통제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세계 면화 가격 상승세 유지 전망

홍수는 농업 비중이 큰 파키스탄 경제를 악화일로로 만들었다. 국제 지원에도 파키스탄 농업이 황폐해지면서 면화 등 세계 곡물시장이 다시 한번 출렁일 것으로 보인다. 

파키스탄은 전체 인구 중 38.5%가 종사할 정도로 농업 비중이 절대적이다. 농업이 국내총생산(GDP)의 약 20%를 차지한다. 특히 파키스탄 수출 중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면화 산업 피해가 심각할 전망이다. 아크발 개발계획부 장관은 "이번 폭우로 파키스탄 면화 농장 절반이 잠겼다"고 말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면화 농장 면적을 210만헥타르(㏊)로 보고 있다. 앞서 지난 3월 미국 농무부는 파키스탄 농업 사무국과 연결해 올해 파키스탄 면화 생산량을 622만 베일(1베일=약 225㎏)로 예상했다. 이는 지난해 대비 3.7% 증가한 수치였다. 하지만 절반 가까운 면화 농장이 물에 잠기면서 차질이 생기게 됐다. 

세계 면화 시장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매우 크다. 파키스탄은 세계 면화 생산량 중 5%를 차지하는 5번째 면화 생산국이다. 면화 공급량이 줄어들면 면화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 여기에 파키스탄 홍수뿐 아니라 미국 가뭄, 호주와 브라질 폭우, 미국의 중국 신장 위구르 지역 제품 수입 거부 조치 등 복합적인 세계 정세가 어우러져 면화 시장에 혼란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도 면화 시장 불안정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승류 델라웨어대학교 교수는 미국 의류 전문지 저스트 스타일과 인터뷰하면서 "면화는 농산물이기 때문에 최악의 홍수가 닥쳤다는 것은 파키스탄 면화 생산과 수출에 상당한 손실을 의미한다"며 "홍수는 올해 면화 시장에 공급 부족을 악화시켜 향후 몇 개월 동안 면화 가격은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영국 리버풀의 플렉서스 코튼 이사인 피터 에질은 블룸버그에 "파키스탄, 호주, 브라질 등에 폭우로 인해 면화 품질이 저하됐다"고 말했다.

12월 선물 면화 가격은 이달 들어 파운드당 110달러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5월 말 파운드당 150달러를 넘던 가격에서는 내려왔지만 지난 8월 29일만 하더라도 120달러를 넘는 수준이었다. 일반적으로 면화 가격이 파운드당 60~75달러 수준임을 고려하면 평소보다 30~40% 높은 가격이다.

면화 시장 혼란은 의류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걸쳐 가격 상승을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는 면화 시장 혼란을 전하며 "기후변화로 인해 면화 가격이 30%나 폭등했다"며 "올해 초 면화는 2011년 이후 최고 수준에 도달해 전 세계 의류 공급업체 마진을 압박하고 있으며 티셔츠에서 기저귀, 종이, 판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비용이 인상될 위기에 처했다"고 전했다. 
 
"지구 온도 상승으로 대규모 홍수 피해 반복될 것"
 
문제는 파키스탄에 앞으로도 이런 대규모 홍수 피해가 반복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번 파키스탄 폭우는 기후변화로 인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기온 상승으로 빙하와 눈이 녹으면서 폭우 피해가 심해졌다는 것이다. 

7200개 이상의 빙하가 있는 파키스탄은 극지방을 제외하고 빙하가 가장 많은 나라다. 기후변화와 관련된 기온 상승이 본격화하면 해수면 온도가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미시간대학교 디어본 캠퍼스의 울리히 캠프 교수는 "온도가 더 높으면 눈이 비로 변할 수 있으며 비가 내리면 빙하가 녹는 속도는 더 빨라진다"고 분석했다. 

해수면 온도 상승은 폭우를 유발하고 이는 하천 범람으로 이어져 큰 피해를 야기한다. 기온이 상승하면 대기가 더 많은 수중기를 보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기는 섭씨 1도 상승할 때마다 물을 약 7% 더 저장할 수 있다. 현재 지구촌은 산업화 이전보다 약 1.2도 높은 상태다. 이런 점 때문에 대기가 과거보다 더 많은 물을 저장하는 동시에 비가 내리는 빈도는 줄었다. 

파키스탄은 그간 기후변화에 취약한 국가로 언급돼 왔다. 독일 NGO에서 개발한 글로벌 기후 위험 지수에 따르면 파키스탄은 기상이변에 가장 취약한 국가 8위를 기록했다. 

파키스탄에서는 이 같은 기후 위기에 따른 국제 행동을 촉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무스타파 나와즈 코카르 파키스탄 상원의원은 가디언에 기고를 통해 "서구 사회의 관성과 무관심이 드러났다. 파키스탄은 전 세계 탄소 배출량 중 1% 미만을 차지하지만 기후변화와 지구 온난화로 인해 가장 위험한 상황에 처한 국가 중 하나가 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파키스탄은 기후변화에 취약한 국가와 함께 자체 연합을 구성해 어려움을 강조하고 국제사회에 압력을 가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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