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큰 폭으로 올릴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개발도상국들의 비명이 커지고 있다. 이 중에서도 동남아시아 지역은 위기 확산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 중 하나로 꼽힌다. 달러 강세로 통화가 급락하는 가운데, 코로나19 이후 경제회복이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제유가 등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인플레이션(물가상승세) 속도가 가팔라지면서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블룸버그 아시아판은 15일 "디폴트 위험이 높아진 나라가 늘면서 동남아 전역으로 위기가 확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전했다.
우선 라오스가 스리랑카에 이은 다음 아시아 디폴트(채무불이행) 국가가 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식량 공급 감소, 유가 상승 등에서 비롯된 달러 가치 상승이 함께 발생하면서 디폴트 위기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은행은 라오스의 외환보유액을 지난해 12월 기준 13억 달러 정도로 보고 있다. 하지만 현지 금융 전문가들은 이보다 낮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2025년까지 라오스는 매년 국내총수입의 절반 정도를 외부 부채 상환을 위해 써야 한다. 결국 라오스는 조만간 스리랑카와 같은 신세가 될 수도 있다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최근 디폴트를 맞은 스리랑카는 연료, 식품 및 의약품을 수입할 수 없게 되면서 수많은 국민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라오스의 공공부채는 145억 달러에 달했으며 이 중 46% 정도는 중국에 진 빚이다. 그중 일부는 '일대일로'의 일환으로 12월에 가동되기 시작한 59억 달러 규모의 중국-라오스 철도의 30%에 자금을 대기 위한 대출이 있다.
이처럼 경제 상황이 악화하면서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 14일 라오스의 신용등급을 Caa3로 한 단계 낮췄다고 발표했다. 무디스의 아누슈카 샤 부사장 겸 고위 신용담당자는 부실한 지배구조와 매우 높은 부채 부담, 만기 외채를 감당하기 위한 외환보유액 부족을 이유로 라오스의 신용등급을 Caa3로 한 단계 강등했다고 말했다.
Caa3는 디폴트 가능성이 있는 등급으로 그 아래에는 디폴트가 임박한 Ca등급, 두 단계 아래는 디폴트 단계인 C등급이 있다. Caa3 등급인 나라에는 디폴트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에콰도르, 벨리즈와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가 있다.
라오스에 앞서 경제 위기를 맞은 나라는 스리랑카다. 스리랑카 정부는 지난 4월 12일 국제통화기금(IMF)과 구제금융 지원 협상이 마무리될 때까지 대외 부채 상환을 유예한다며 '일시적 디폴트'를 선언했다. 이후 5월 18일부터는 기한 내에 국채 이자를 내지 못하면서 공식적인 디폴트 상태로 접어들었다.
스리랑카와 함께 위기를 맞은 나라는 파키스탄이다. 파키스탄은 지난달 25일부터 국제통화기금(IMF)과 30억 달러(약 3조7800억원) 규모의 구제금융 지원 재개를 위한 협상을 벌이고 있다. 지난 4월 출범한 파키스탄 셰바즈 샤리프 정부는 협상을 성사시키기 위해 휘발유 경유 등의 가격을 20% 올리고 부동산 등에 세금을 더 부과하겠다고도 밝혔다. IMF와 협상에 실패한다면, 파키스탄은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인플레이션 폭풍이 불어닥친 상황에서 스리랑카에 이어 두번째로 디폴트를 선언하는 국가가 된다.
동남아의 대표적 관광국가인 태국에도 위기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물가는 오르는 반면 관광객 수는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태국행 항공 예약 비율은 코로나 이전과 비교해 24% 수준에 그치고 있다. 반면 지난 3월 태국의 물가 상승률은 5.73%로 13년 만에 최악의 상승폭을 기록했다. 게다가 태국은 대표적 에너지 수입국으로 원유 가격 상승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
문제는 연준의 금리 인상이 연말까지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달러는 강세를 이어가는 반면 신흥국 통화의 하락은 계속되면서 글로벌 자금의 이탈도 본격화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연준이 1년 만에 기준금리를 연 3%에서 6%로 배로 끌어올렸던 1994년처럼 신흥국들이 충격적인 경제 위기를 겪는 게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당시 연준의 빠른 기준금리 인상은 멕시코의 심각한 외환위기 중 하나였던 '데킬라 위기'를 불러온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멕시코의 위기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주변국으로도 확산됐었다.